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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 다가오는 '목말사회'] 슈퍼·프로맘 요구하는 사회… “난 나쁜 엄마인가요?”

입력 : 2018-02-01 14:44:42 수정 : 2018-02-13 18:5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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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TV프로·육아책 ‘완벽 육아’ 강조 / 여성에게 출산·양육·교육 다 떠넘겨 / 자녀 애착형성 과정 아빠 역할 외면 / 직장맘은 아이와 충분히 못 놀아줘서… / 전업맘은 경제적으로 지원 못해줘서… / 다양한 이유로 “부족한 엄마” 속앓이 / 좋은 어머니 되려고 할수록 더 힘들어 / “내가 못난 탓” 열등감·부담감 버리고 / “부족해도 OK” 엄마가 행복한 육아를
머잖아 우리나라는 젊은이 한 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해야 하는 ‘목말사회’가 됩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생산가능인구는 줄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서 주인공은 ‘출생아 수’, ‘합계출산율 몇명’ 같은 양적 목표였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부모의 삶과 그들의 무게는 ‘아이는 행복’이라는 일방적인 구호에 가려져 있거나 조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세계일보는 창간 29주년을 맞아 저출산·고령화의 새로운 해법을 고민해보는 ‘다가오는 목말사회’를 연재합니다.

#1 “아이에게 TV를 틀어줬다가 깜박 잠이 든 적 있는데 눈을 떴을 때 아이가 TV를 멍하게 보고 있는 걸 보니 너무 미안해지더라고요. 이 시기에 필요한 놀이를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엄마라면 아이에게 희생하고 헌신해야 하지만 자꾸만 쉬고 싶어지는 저는 나쁜 엄마인가 봐요.” 20개월 아이를 돌보는 정하나(가명·33)씨는 한창 움직이기 좋아하는 아이를 쫓아다니느라 바쁘다. 만 36개월까지 엄마가 돌봐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어 앞으로도 한동안 가정 양육을 할 생각이다. 하지만 청소, 요리, 육아를 끝없이 반복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고 가끔씩 마음이 헛헛해진다. 아이에게 필요한 월령별 놀이를 해주고 싶어도 뒷수습을 할 자신이 없어 딸기를 이용한 오감체험 놀이 등은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더 해줘야 하는데, 나는 왜 이럴까’라는 생각이 든다.

# 2 “TV 육아 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이들은 아빠와 좋은 곳에 놀러다니고 각종 육아용품이 구비된 집에서 생활하는 걸 보면 아이에게 미안해져요. 엄마가 전업주부라 우리 애가 경제적으로 부족하게 크는 것 같아서요.” 출산 이후 일을 그만두게 된 김지혜(가명·35)씨는 각종 육아용품이 구비된 TV 프로그램이나 주변에서 좋은 물건을 사용하는 엄마들을 볼 때면 ‘나는 대신 사랑을 듬뿍 줘야지’라며 마음을 다독이지만 전업주부가 된 자신 때문에 아이가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해진다. 김씨는 “아이 발달에 필요해 보이는 게 많은데 초보 엄마가 ‘내가 알아서 키우겠다’며 자신감을 갖기란 쉽지 않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날 엄마들은 ‘수없이 다양한 이유로’ 자녀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지낸다. 일하는 엄마는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해 죄책감에 시달리고, 24시간 반복되는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비취업 엄마는 하루 종일 자녀와 지내지만 질적으로 좋은 양육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책망한다. 하지만 이들은 정말 부족한 엄마, 나쁜 엄마일까? 엄마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너무 많고 기대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닐까?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는 자녀의 양육·교육에 대한 1차적 책임을 어머니에게 부여하고 좋은 어머니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는 ‘모성 이데올로기’가 강하다”며 “역할 기준을 이상적으로 높게 설정해 놓고 이에 못 미치는 ‘부족한 엄마’를 대거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양육 죄책감 부추기는 사회

각종 TV 프로그램과 육아서는 ‘부모교육’을 주제로 여성들에게 ‘프로맘(Pro Mom)’이 될 것을 요구한다. 프로맘이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슈퍼맘(Super Mom)’을 뛰어넘어 아이의 욕구와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발달단계에 맞춰 완벽한 지원을 해주는 전문가적인 어머니를 말한다. ‘안정적인 애착 형성을 위해 엄마가 늘 아이 옆에서 반응해 줘야 한다’, ‘엄마는 아이의 거울이다. 힘들어도 내색하면 안 된다’, ‘아이의 입맛과 건강은 엄마 손에 달렸다’, ‘엄마의 정보력이 아이의 성공을 좌우한다’ 등 엄마가 완벽한 육아를 하면 뛰어난 아이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부모와의 애착 형성에 있어 아빠의 역할을 강조하거나 각 가정의 사정에 맞는 소신 있는 육아를 제안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프로맘의 탄생에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건 1900년대 초반에 태동한 발달심리학이었다. 생의 초기에 이뤄지는 어머니와의 애착이 아이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으로, ‘애착(attachment)이론’의 창시자 존 볼비(John Bowlby)는 “어머니와 안정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유아는 정상적인 발달에 어려움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주양육자를 어머니로 설정하고 아빠와 아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다. 이러한 과학적 분석에 상업주의가 끼어들면서 엄마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발달단계에 맞게 각종 놀이기구와 교구로 자극을 줘야 한다고 수많은 서적과 미디어, 전문가들이 강조한다. 자녀에게 좋은 것을 제공해 주고 싶은 마음을 부추기며 경제적으로도 부담을 주는 것이다.
◆어머니 역할 변화…현재 부담이 최고

자녀 양육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여성에 대해 윗세대와 주변인들은 대체로 “다 그렇게 키운다. 고생을 안 해봐서 엄살이 많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각 시대마다 요구하는 어머니 역할이 달랐고 오늘날의 여성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역할과 책임을 부여받고 있다.

윤택림 한국구술사연구소장의 저서 ‘한국의 모성’(2001)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모성은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변해 왔다.

조선시대 여성은 ‘어머니 역할’보다 ‘며느리 역할’에 훨씬 큰 비중을 두며 살았다. 아들을 낳고 시부모를 공경하는 ‘효부’가 여성으로서 최고의 덕목이었다. 이들은 농업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시가와 그 일가친척을 보살펴야 했기에 어머니 역할에만 전념하기 어려웠다.

희생적이고 강한 어머니상이 등장한 건 6·25전쟁 이후였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들은 굶주리고 헐벗은 사회에서 가족의 생존을 책임져야 했다.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1960∼70년대에는 남성이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은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성별분업이 본격화됐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자녀교육을 계층 상승 통로로 인식하는 부모가 늘며 교육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이때의 중산층 가정에는 대부분 가정부나 가사도우미가 있어 여성의 부담이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다. 핵가족 생활이 정착된 1980∼90년대부터는 여성이 육아와 가사를 모두 맡는 구조가 형성됐고, 고학력 여성이 늘며 양육과 집안일, 경제활동을 모두 수행하는 슈퍼맘이 등장하게 됐다.
◆“부족해도 괜찮아”…내게 맞는 육아가 최고

이제는 많이 배우고 똑똑해진 엄마들을 겨냥해 ‘전문가 같은 어머니’를 강조하는 사회풍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성 혼자 과연 이러한 기준에 맞춰 양육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8명의 여성 전업주부와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엄마들의 심리를 분석한 신송이씨의 연세대 박사학위 논문(2017)에 따르면 아이의 기질과 원가족(부모)으로부터의 상처, 남편의 참여, 사회가 요구하는 엄마의 역할 기준인 모성 이데올로기가 이들의 자녀 양육에 영향을 미쳤다. 아이의 기질 등은 제각각 달랐지만 모성 이데올로기에 의한 영향은 대동소이했다. 이들은 자녀의 영유아 시기에 늘 함께해 줘야 한다는 부담감과 다른 엄마들은 잘하고 있는데 나만 부족한 것 같은 열등감, 아이 발달은 어머니 역할의 결과라는 압박감 등으로 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연구자와 참여자들은 ‘완벽할 필요는 없다’, ‘늘 좋은 엄마가 될 수는 없다’, ‘늘 함께 있다고 좋은 건 아니다’, ‘무조건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하는 건 아니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강점을 지닌 엄마가 되자’ 등 각자의 육아원칙을 세우고 관점 변화를 시도했다. 그 결과 모든 참여자가 마음의 부담을 덜어내고 조금 더 편안하게 육아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반응했다. 신씨는 “우리 사회는 양육 책임을 전적으로 여성에게 지우는 데다 사회적으로 너무 미화된 어머니 역할을 강조하면서 좋은 어머니가 되려고 할수록 자녀 양육의 어려움을 겪게 한다”며 “각자의 사정과 능력에 맞는 육아, 엄마가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양육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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