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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되는 순간부터 생명… 낙태는 살인행위”

입력 : 2017-12-05 20:56:44 수정 : 2017-12-05 20: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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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낙태죄 폐지’ 반대 운동 “낙태를 찬성하는 이들은 여성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낙태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낙태 반대자들은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여성의 인권과 태아의 생명 중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여성의 인권과 태아의 생명 모두를 존중하는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은 과연 무엇일까요?”

천주교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낙태 찬반 논쟁의 요점이다. 한국천주교회가 지난 3일부터 낙태죄 폐지 반대 100만인 서명 운동에 나서면서 해묵은 논쟁에 불을 붙였다. 천주교회는 찬반 논쟁이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세태를 막겠다는 것이다. 천주교회가 낙태 관련 100만인 서명 운동을 벌이는 건 1992년 이후 25년 만이다. 당시 천주교회는 낙태 허용 형법 개정에 반대하며 105만 여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낸 바 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도 지난달 말 ‘낙태죄 법안 폐지 논란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입장’을 발표했다.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이 성명에서 “모든 인간 생명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아버지의 것도 어머니의 것도 아닌 새로운 한 사람의 생명으로 보호돼야 하고 그 존엄성이 존중돼야 한다”면서 “이는 우리의 확고한 믿음이며 우리 교회가 양보할 수 없는 기본적 가르침”이라고 천명했다. 이어 “인간 생명은 결코 다수의 의견으로 생사가 갈릴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천주교회의 낙태죄 폐지 반대 100만인 서명 운동으로 낙태죄 논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한 신부가 신생아를 들어보이며 생명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 주교는 “이제라도 국가는 생명 존중에 대한 구체적이고 효과적이며 명예로운 대책을 강구하는 적극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도 지난달 30일 성명을 내고 “낙태는 살인임을 천명하며 낙태죄 존치에 앞장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렇듯 천주교회의 낙태죄 폐지 반대 캠페인에도, 사회적인 찬반 여론은 팽팽한 분위기다.

30여년 전 실시한 미국 여론조사 조사 결과를 보면, 46%는 낙태가 법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44%는 허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다. 이런 양상은 지난 30여 년간 변하지 않고 있다. 찬반 양쪽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이유는 찬반론자 서로 양측의 의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95년부터 낙태 수술을 법으로 금지했다. 법에서 정해 놓은 사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낙태했을 때는, 낙태 수술을 받은 여성은 물론 낙태 수술을 한 의사까지 처벌됐다. 하지만 2009년 모자보건법 개정으로 낙태 수술을 임신 24주 이내까지만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이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낙태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정체불명의 낙태약이 불법 유통되면서 젊은 여성의 건강마저 위협하는 실정이다. 낙태 대신 아이를 낳은 10대 미혼모도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제각각이다.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는 낙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반면 네덜란드는 1984년부터 임신 24주까지는 낙태를 원하는 여성에게는 허용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의료 보장 제도를 통해 낙태 수술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미국은 주마다 체계가 다르다. 미국은 수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든 개인이 부담하든, 훌륭한 의료진에 의해 수술이 안전하게 이루어지고 사후 조치도 철저하다.

낙태에 대한 견해는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엇갈린다. 낙태 찬성자들은 여성의 가장 필수적인 권리 중 하나가 자신의 신체와 삶을 통제할 권리이며, 그중 하나가 낙태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아이를 낳은 여성이 믿을 수 있는 보육 지원과 일할 기회를 얻는 것 역시 낙태할 권리와 똑같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중립적 여성운동가들은 “낙태죄를 존치한다고 해서 여성들이 낙태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한다.

천주교 소속의 한 성직자는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낙태에 관한 논쟁으로 생명에 대한 존엄성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소중한 기회”라면서 “그러나 생명을 함부로 해치는 것은 현 시대에 등장한 문제다. 성 윤리가 문란해진 현대에 들어 낙태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결국 성문란에 애초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가정연합의 한 원로목사는 “현 시대에 들어 10대들의 낙태 문제는 애초 성윤리 교육이 부재한 가운데 발생한다. 청소년기부터 성을 중요시하는 순결교육이라든지, 혼전 성관계로 인한 낙태가 왜 나쁜지를 가르쳐야 한다”면서 “낙태죄 폐지 찬반 논란으로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 성교육부터 제대로 정립할 대책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그는 “원치 않는 성관계에 뒤따를 임신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면 여성들이 성관계를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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