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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라인은 선이 아니고 도형이며 그것도 삼각형이다. 원도 아니고 네모도 아닌 삼각형인 것은 저승사자와 같은 검찰청사 입구를 꼭짓점으로 표시하기 쉬워서일까. 그래서인지 전직 대통령이나 권력 실세들은 모두 삼각형의 꼭짓점을 기준 삼아 후들거리는 두 발로 선다. 포토라인이 공포스러운 것은 운명의 추락, 인격의 몰락이 연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으로서 자유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포토라인에 서면 유감을 표명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잘잘못을 떠나 국민에게 물의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실망시켜 드려 면목이 없다”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정말 미안하다”고 한 것은 그런 심리와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은 포토라인에 서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연희동 골목에서 “정치적 필요에 의한 것 아니냐”라는 불복 성명서를 발표한 뒤 고향 합천에서 체포돼 곧장 압송된 것이다.

지중해 햇살처럼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앞에 서면 누구라도 정신이 혼미해질 것이다. 최순실이 국정농단의 주역답지 않게 혼비백산한 것도, 차은택이 문화계 황태자라는 명성과 달리 겁먹은 표정으로 울먹인 것은 그 때문일 터. 깜냥도 안 되는 문고리 실세 안봉근은 슬그머니 들어가다 욕을 된통 얻어먹었다. 한 시대의 실세였다면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처럼 “꽃잎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라고 읊을 정도는 돼야 한다. 연기라고 해도 그럴싸하고 나름 여운이 남는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어제 포토라인에서 “숙명이면 받아들이겠다”며 “헤쳐 나가는 것도 제 몫”이라고 말했다. 1년 사이 4번째 피의자로 소환됐으니 체념할 때가 되긴 됐다. 우병우가 그저 “사실대로 밝히겠다”는 식의 단순 모범답안을 말하지 않고 숙명을 언급한 것은 의도적이다. 숙명은 일어날 게 일어난다는 의미이므로 인과관계상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논리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행위의 결과에 벌 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말하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병우의 연기력도 탁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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