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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용칼럼] 박에스더의 생명존엄 정신 되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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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19 21:02:19 수정 : 2017-11-19 23: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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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 여의사 박에스더 / 소외받는 여성들 치유 위해 헌신 / 인명경시 풍조가 만연한 요즈음 / 그녀의 희생정신이 더욱 돋보여 여성의 사회 진출은 개항 이래 한국의 근대 산업화가 진행되고 여성교육이 실시되면서 가능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근대적 의식과 사회경제구조의 변동에 따라 여성의 활동영역이 확산됐다. 특히 교육계와 의료계에서 활동한 여성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직 여성들이었다. 그동안 내외법에 묶여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지 못하고 여성의 활동범위가 가정 내에 한정돼 있다가 그 잠재력이 분출된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11월이면 한국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가 떠오른다. 박에스더는 선교사인 아펜젤러 밑에서 일하며 일찍이 서양사상에 접했던 아버지 덕분에 1886년 5월 31일 한국 근대 최초의 여학교로 설립된 이화학당에 1886년 11월 입학하게 됐다.

본명은 김점동으로 에스더는 세례명이고, 결혼 후 남편 박유산의 성을 따라 박에스더라 불렀다. 유달리 재능이 뛰어났던 박에스더는 영어에 능숙해 보구여관의 의사이자 이화학당의 교사로 취임한 로제타 홀 부인의 통역을 맡게 됐다. 보구여관은 1887년 미국 감리교 선교부에서 파송된 의료 선교사 스크랜튼이 당시 한국 사회에서 소위 남녀유별이라 하여 여성들이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을 인식하고, 여성과 아이만을 따로 치료하기 위해 만든 한국 최초의 여성병원으로 이화학당 구내에 설치됐다.

박에스더는 서양인 의사가 언챙이 수술을 하는 것을 보고 감동해 ‘하나님 사랑은 인간의 마음만 아름답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습도 아름답게 한다’는 믿음으로 의사가 되는 꿈을 키웠다. 1890년부터는 홀부인에게서 본격적인 근대 의학교육을 받고 의료보조원으로 일하며 기초적인 의료기술을 습득했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영산대 석좌교수
1894년 5월 홀 내외가 평양 선교기지 개척 담당자가 돼 평양 유일의 병원인 광혜원을 설립하자 박에스더도 함께 평양으로 동행했다. 당시 청일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기에 홀 내외와 박에스더는 의료 활동으로 수많은 부상자를 간호하며 헌신적인 의료 활동을 펼쳤다. 이후 박에스더는 미국으로 귀국하는 홀부인을 따라 1894년 말 유학길에 올랐다.

1896년 10월 박에스더는 볼티모어여자의과대학(현 존스홉킨스대학)에 입학해 의학을 전공했다. 유학생활 중 아내의 장래를 위해 농장 일을 하며 의학 공부를 뒷바라지하던 남편 박유산이 폐결핵으로 사망했으나 박에스더는 역경을 딛고 1900년 6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한국 여성 최초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00년 11월 귀국한 박에스더는 미국 감리회 여선교부의 정식 파송을 받고 의료 활동을 시작했다. 박에스더는 1903년쯤 콜레라가 유행하자 죽음을 무릅쓰고 평안도와 황해도의 구석진 촌락까지 환자를 찾아다니면서 무료 순회 진료를 했다. 그리고 위생의 무지함을 계몽하기 위해 곳곳에서 강연을 했고, 병들어 신음하는 여성의 건강 증진을 위해 다방면으로 활약했다.

1903년부터 박에스더는 본격적으로 홀 부인이 의료사업을 벌이고 있던 평양의 광혜원으로 옮겨 의료 활동을 펼쳤다. 이 무렵 박에스더는 놀랍게도 10개월 동안 3000명이 넘는 환자를 치료했으며, 그의 훌륭한 외과 수술 실력은 당시 사람들이 귀신이 재주를 부린다고 여길 정도였다. 의사로서 명성을 쌓은 박에스더는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인을 위한 교육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홀 부인이 세운 맹아학교의 교사로도 힘썼다. 또 홀 부인과 함께 장차 한국 의료계를 짊어질 여성 의료 인력의 보급을 위해 간호학교의 설립을 주도했다.

의료사업, 교육사업, 계몽활동, 선교활동, 사회사업 등 다방면으로 활동한 박에스더는 밤낮없는 고된 생활로 얻은 폐결핵으로 1910년 3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비록 짧은 생애를 마감했지만 여성 의료에 최초의 횃불을 밝힌 박에스더의 헌신은 이 땅에서 소외받은 여성을 치유해준 값진 역사적 업적으로 명예의 전당에 길이 새겨져 있다. 요즘처럼 인명경시 풍조와 이기심이 난무한 각박한 세상에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고 따뜻한 인간애를 발휘한 박에스더의 희생정신은 더욱 돋보인다 할 것이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영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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