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이병호, 이병기 전 원장 |
정보기관 수장들 중 말로가 가장 참혹했던 이로 김형욱 전 중정부장이 꼽힌다. 그는 박정희정부 초반 6년3개월간 역대 최장수 중정부장을 지냈다.
퇴임 후 그는 정권의 ‘치부’를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여긴 박 대통령 측에 의해 끊임없이 견제와 감시를 받았다. 유신 선포 후 김 전 부장은 미국에 망명해 의회 등에서 박 대통령한테 불리한 증언을 쏟아냈다. 그는 1979년 미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옮긴 뒤 실종됐는데 박 대통령 지시를 받은 중정 요원들이 그를 납치해 살해했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김재규 전 중정부장은 자신을 임명한 박 대통령을 1979년 10월26일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시해했다. 당시 그는 박 대통령의 신임을 놓고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과 다투는 처지였다. 1980년 5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를 두고 ‘경호실장만 제거하려다 우발적으로 대통령까지 살해한 것’이란 분석과 ‘유신독재 종식을 위해 박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의사가 있었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전 전 대통령 등 신군부 집권 후 중정은 안기부로 바뀌었다. 전두환·노태우정권에서 안기부장을 지낸 인사들은 1995년 김영삼정부가 두 전직 대통령 비자금과 12·12 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수사에 전격 착수하며 줄줄이 철창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이희성·유학성·장세동·안무혁·이현우 전 안기부장이 그들이다.
민주화 후에도 수난은 계속됐다. 김영삼정부의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김대중정부 들어 이른바 ‘북풍’ 등 정치공작을 기획한 혐의로 구속됐다.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문패를 바꿔 단 김대중정부의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은 노무현정부 들어 불법 도청 혐의가 불거져 구속됐다.
이명박정부 시절 4년1개월간 국정원장을 지내 역대 두 번째로 장수한 원세훈 전 원장은 박근혜정부 들어 온라인 댓글 등 정치공작 혐의가 드러나 구속됐다. 박근혜정부는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3명 전원이 문재인정부 들어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그중 2명이 구속됐다.
국정원의 전신에 해당하는 중정이 만들어진 것은 5·16 쿠데타 직후인 1961년 5월20일의 일이다. 자연히 초창기 중정은 정권 실세인 군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이후 11대 유학성 부장까지 약 30년 동안 전직 군인들이 중정부장 또는 안기부장 자리를 독식했다. 박정희정부 시절 검찰총장, 법무장관을 지낸 7대 신직수 중정부장도 군법무관 출신 법조인이란 점에서 법조인보다는 군인으로 분류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군 출신은 차츰 퇴장하고 전직 검사 등 법조인이 정보기관 수장에 기용되는 사례가 늘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임명한 배명인·서동권(검사 출신) 안기부장,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명한 신건(검사 출신) 국정원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고영구(변호사 출신)·김승규(검사 출신) 국정원장,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성호(검사 출신) 국정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보기관 수장에 전직 군인을 앉히는 예전 군사정권 시절 스타일로 되돌아갔다. 그가 임명한 국정원장 3명 중 2명(남재준·이병호)이 군 출신이고 나머지 1명(이병기)은 전직 외교관 출신이었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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