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풍성한 농산물을 생산한 농민들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취지로 1996년 법정기념일로 제정됐다.
농업인의 날은 시대에 따라 수차례 시기가 바뀌었고, 명칭도 여러 차례 변경됐다.
과거 농업국가였던 우리나라는 왕이 직접 농사를 권장하는 권농(勸農)의식을 행할 만큼 농사를 중요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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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권농의 날’인 6월1일 당시 윤보선 대통령이 모내기 도중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
국립민속박물관과 국가기록원 등에 따르면 고려 성종 때(983년)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 왕궁에서는 토지를 관장하는 사신(社神)과 농작의 풍년을 좌우하는 곡식의 신인 직신(稷神)에게 제례(사직제·社稷祭)를 올렸고, 왕이 직접 적전(籍田)을 갈고, 왕비도 누에를 치는 등 모범을 보이는 행사가 열렸다.
기념일 개념으로 잡힌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일제는 조선을 일본의 식량공급지로 만들기 위한 정책(산미증식계획)을 시행하며 당시 모내기철이었던 6월14일을 농사를 권장하는 ‘권농일’로 지정했다. 해방 후에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뜻에서 6월15일로 날짜를 하루 미루고 명칭도 ‘농민의 날’로 변경했다.
이후 모내기 시기가 차츰 빨라짐에 따라 기념일도 점차 앞당겨졌다. 1960년부터 1972년까지는 6월1일로 앞당겼고, 명칭도 다시 ‘권농의 날’로 불리게 됐다. 1973년부터는 ‘어민의 날’, ‘목초의 날’과 통합해 6월 첫째 토요일로 변경됐고, 기념식도 폐지한다. 1984년부터는 5월 넷째 주 화요일로 다시 앞당겼다.
권농의 날은 농촌 일손돕기 장려 등을 목적으로 주로 모내기철에 진행됐다. 실제 이 시기가 되면 전국의 공무원, 국영기업체 직원 등이 대대적인 모내기 봉사활동을 펼쳤다. 윤보선·박정희 대통령은 이날이 되면 직접 모내기를 하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1974년에는 하루에 행사를 끝내는 게 아니라 권역별로 열흘간 행사기간을 열어 대국민 일손돕기 캠페인과 같은 형태로 진행됐다.
1996년에는 추수가 대부분 끝난 시점인 11월11일이 ‘농어업인의 날’로 제정돼 첫 기념식이 열렸다. ‘흙을 벗 삼아 흙과 살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농사 철학을 담아 흙 토(土)자를 파자(破字)한 열 십(十)자와 한 일(一)자, 즉 11이 겹치는 날로 정한 것이다. 11월11일을 농업인의 날로 제정한 원조는 강원도 원주시다. 원주시는 1964년 이날을 농업인의 날로 정한 뒤 올해 54회째 행사를 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0∼11일 세종시 호수공원 일원에서 제22회 농업인의 날 행사를 연다. 10일 정부 세종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는 기념식에는 이낙연 국무총리,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인 설훈 국회의원,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등을 비롯해 농업인 단체장, 소비자 단체장 등 700여명이 참석해 유공자 시상식 등이 진행된다.
이날 금탑산업훈장은 초당산업㈜ 김기운(96) 대표이사가 수상한다. 김 대표는 50여년 간 여의도 3배 면적의 임야에 5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을 뿐 아니라 총 3만4000명을 지역민을 고용한 점 등을 높이 평가받았다. 또 학교설립 및 장학사업, 빈곤층 의료비 지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공헌도 펼쳐왔다. 이와 함께 산업훈장·포장 15명, 대통령 표창 31명 등 총 160여명에게 포상이 수여된다.
농업인의 날 부대행사로 진행되는 ‘농업·농촌문화 한마당’에서는 각종 전시와 공연, 체험프로그램 등이 마련된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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