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76·여)씨는 먼저 세상을 뜬 남편이 남겨 준 약간의 재산을 형편이 어려운 막내아들에게 물려준 뒤 나머지 자식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고 있다. “그동안 해준 게 뭐 있느냐”는 원망의 말부터 집안의 집기를 부수거나 B씨의 몸을 밀치기도 했다. 남은 재산을 모두 처분해 자식들로부터 부양받아야 할 처지이지만 자식들은 명절에도 전화만 할 뿐 찾아오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노인 10명 중 3명이 심각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은 신체·정신·경제적 ‘학대’ 등에 시달리는 경우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3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노인 학대가 우울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조사 대상 노인 1만267명 중 32.4%인 3329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65세 이상에서 75세 미만 노인의 우울 유병률(27.2%)에 비해 75세 이상 노인의 우울 유병률(39.5%)이 높았다.

노인 우울증은 가족보다 이웃과의 접촉에 더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과 거의 왕래를 하지 않는 노인의 우울 유병률은 여성 59.8%, 남성 56.2%로 나타났지만 이웃과도 거의 왕래를 하지 않는 여성의 우울 유병률은 69%로 10%포인트가량 높았다. 우울증뿐 아니라 학대를 경험한 노인들도 상당했다. 전체 노인 중 신체·정서·경제적 학대 및 돌봄·경제적 방임 등 다섯 유형의 학대 중 하나라도 경험한 노인은 9%로, 여성(9.7%)이 남성(8.1%)에 비해 높았다.
실제로 노인 학대 피해자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6년 기준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된 학대 사례 접수 건수는 △2013년 3520건 △2014년 3532건 △2015년 3818건 △2016년 4280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연구를 진행한 정진주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장은 “남성의 경우 경제활동의 주체로 활동했지만 경제적 능력 상실 이후 자산관리나 생활비 제공에서 수동적인 역할로 전락하는 데서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느끼고, 여성은 젊은 시절 가정에서 돌봄 노동을 해온 만큼 마찬가지로 자식들에게 부양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경향이 높다”며 “노인 우울증 및 학대 관련 대책은 노인의 사회적 역할과 그들이 처했던 사회·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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