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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색] 모형인 듯 모형아닌 '실물모형' …애매한 분류로 10%만이 '일감'차지

입력 : 2017-10-30 15:58:07 수정 : 2017-10-30 15: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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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박물관에 전시된 실물모형 사진.

“입찰해도 탈락할 게 뻔한데 어떻게 도전 하나요?”

14년차 중소기업 A사는 주 수익원인 정부사업 입찰을 사실상 포기했다. 수차례 입찰을 시도해봤지만 어차피 따지 못한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A사는 중소기업간 경쟁대상인 ‘실물모형’ 제작사다.

실물모형은 ‘교육을 목적으로 실물과 동일구조로 만들어 놓은 모형이나 견본품’이라 정의된다. 흔히 박물관이나 전시관에 원본 대신 전시된 모형을 생각하면 쉽다. 정부는 모형의 직접생산이 가능한 기업에 실물모형제작 면허를 주고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기업 진입을 막고 있다.

전시관, 박물관, 홍보관 등에서 실물모형이 쓰이기 때문에 대부분 수요는 정부나 공공기관에 있다. 이런 수요를 따져 해당기관이나 조달청은 ‘물품’으로서 실물모형 분야 입찰을 내고 중소기업간 경쟁을 통해 제작사를 선정하고 있다. 하지만 제작사인 A사가 입찰을 따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실물모형의 의미가 더 이상 ‘모형’이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한 박물관에 전시된 실물모형 사진.

◆ 실물모형은 '모형'인가?

이름은 ‘실물모형’이지만 실제로 조달청이나 수요기관이 요구하는 입찰 제안서에는 ‘모형 제작’만이 담기지 않는다. 전시관, 교육관, 홍보관 등 전시시설의 실내인테리어, 조명, 바닥, 모형, 영상, 디지털 전광판, 심지어 카페 같은 부속 시설까지 실물모형으로서 분류되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은 실내모형의 정의가 확대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과거 박물관, 전시관들은 주로 모형물 위주의 전시가 이뤄졌다. 20년 전만해도 일정 공간에 모형을 가져다 놓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실내모형’을 만드는 기업이 ‘물품 분야’로 분류됐고 면허도 ‘생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요즘은 전시의 개념이 확대됐다. 영상, 조명, 건물구조, 인테리어 등 다양한 요소가 전시와 연관된다. 확대된 개념 모두 실물모형으로 묶여 과거 ‘물품’으로 분류되던 정의가 맞지 않는다. 실물모형 제작사는 모형제작뿐 아니라 ‘실내건축공사업(인테리어)’부터 설계, 비디오물,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내용이 담긴 제안서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순전히 모형만을 직접생산하던 소규모 실내모형 업체들은 정부 입찰에서 설자리를 잃었다. 일부 실내모형 업체는 수 천 만원을 주며 외주 업체를 써 제안서를 만들고 있지만 워낙 다양한 분야가 요구되다보니 결국 인력과 자본력을 갖춘 일부 기업에게 경쟁서 밀릴 수밖에 없다. ‘물품’ 분야에서 제안서가 입찰에 실패하면 제작에 든 비용은 모두 날리게 된다.

결국 상당수의 실물조형 회사는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고 입찰을 따낸 규모 있는 기업에 하도급 형태로 들어가 모형물 제작을 맡고 있는 실정이다.

실물모형 제작사인 B업체는 “정부가 입찰 제안서를 준비하라고 주는 시간이 너무 짧아 현실적이지 못하다”라며 제안서의 기간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제안서를 만들 수 있는 기간이 짧아 소수업체만 입찰에 참가하고 있다는 것.

조달청이 운영하는 나라장터에 따르면 실물모형 분야의 공시가 나고 규모에 따라 15~30일 내로 제안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지난 3월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긴급’으로 입찰 공시를 낸 26억상당의 사업은 입찰서를 준비하는데 13일만이 주어졌다.

전시 제안서를 제작하는 디자인 전문 업체 C사는 “수요기관의 요구사항에 따라 다르겠지만 10억 규모 전시 제안서를 만드는 데 통상 30일이 걸린다”며 “현실적이지 못한 준비기간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실험모형 분야는 한 입찰에 5곳 미만의 업체만이 참여하는 경우가 잦았다. 어떤 입찰은 한 업체만이 참여해 유찰을 받고 최종적으로 그 업체가 수의계약을 따내는 경우도 있었다.

◆ 달라진 실물모형 정의...전시기획, 물품 분야가 분류돼야

29일 나라장터에 게시된 최근 3년간 3억 원 이상 규모 실물모형 분야의 협상에 의한 계약(경쟁 입찰) 현황을 보면 한국전시문화산업협동조합에 등록된 실험모형분야 217개사 중 상위 13개사가 전체 1000억원 규모의 입찰 중 80~90%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난해의 경우 한 업체에 무려 3억 원 이상 규모 입찰 중 50%가 집중됐다. 이들 대부분의 회사는 자본금이 많고 ‘모형 제작’보다 전시를 ‘기획’하는 회사에게 기회가 돌아가고 있었다.

예원예술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김혁진 교수는 “‘실물모형’이라는 용어가 잘못된 관행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오늘날 전시 콘텐츠는 표현과 양태가 다양해 정부 입찰 심사를 들어가면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 등의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실물모형보단 문화전시기획에 더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입찰은 아무래도 다양한 인력을 갖추고 계획이 바뀌어도 감당할 수 있는 자본금이 높은 기업이 유리한 구조”라고 말했다.

한국전시문화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실물모형이란 명칭과 함께 물품으로 분류되는 것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데 동의하고 있으며 문화전시 등 분야 변경을 위해 표준사업부에 요청하는 등 절차를 밟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조합에도 전시기획, 실내건축, 모형제작 등 다양한 회사들이 실험모형으로 묶이고 있다”며 “특수 분류로 해서 ‘기획’과 ‘납품’을 구분하는 필요성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달청 측은 “실제 입찰을 올릴 때도 실물모형으로 나가야하나 애매한 경우가 많다”며 “전시 업에 대한 업종분류가 따로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시관, 체험관 등은 인테리어와 모형을 딱 분류하기 쉽지 않다”며 “업종분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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