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씨는 "아직도 비서 일을 하찮게 보는 이들이 많다. 이 업무 자체를 무시하는 것 같다"며 "회사라는 조직은 일이 없으면, 일이 안 되면 그 자리를 절대 그대로 두지 않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남의 직업 깔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C씨는 "우리 사회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냐"며 "다들 먹고 살기 위해 힘들어도 참고 일하는 것이다. 특히 감정노동을 하는 이들은 몸도 마음도 힘들다"고 말했다.
D씨는 "전용비서가 아직도 있는 조직은 공무원, 공기업, 군대 등 일부에 불과하다"며 "최근 대기업들은 회장이나 사장급이 아닌 간부들의 경우 1명이 공동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E씨는 "비서는 왜 여성 위주로 뽑는지 모르겠다. 남성들도 비서일 할 수 있는데 이는 역차별"이라며 "감정노동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 감정노동을 강요해서도 안 되고, 이게 용인되어서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비서직에 종사하는 사회초년생 여성들이 편견에 치우친 처우와 감정노동에 따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숙명여대에 따르면 이 학교 인력개발정책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박지연씨는 최근 학교에 제출한 학위논문 '대기업 신입비서의 감정노동에 관한 연구'에서 대기업 입사 2년 이하 비서 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대 1 심층면접을 토대로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조사에 참가한 비서들은 자신들이 상사의 분노나 변덕을 고스란히 받아내면서도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하는 어려움과 비서직에 대한 오해와 편견 때문에 겪는 괴로움을 털어놓았다.
한 비서는 "상사가 업무 때문에 예민할 땐 자신이 쓰는 연필 끝이 뭉툭하다는 등 사소한 일로 잔소리를 한다"고 토로했다.
다른 비서는 "상사가 법인카드를 잘못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재무팀이 상사가 아닌 내게 '딴지'를 건다"고 하소연했다.
◆비서에게 화 내고 욕설 퍼붓는 '꼰대' 상사들
자신이 물건을 둔 곳을 기억하지 못할 때 비서에게 화를 내고 욕설을 하는 상사도 있었다.
주문 후 제작·배송에 2주가 걸리는 물품을 다음날까지 구매해 놓으라는 부당한 지시도 내려왔다고 비서들은 하소연했다.
지시했던 것을 갑자기 뒤집거나 고위직 방문 시간에 맞춰 커피를 타주기 위해 새벽같이 출근하라고 지시한 사례도 더러 있었다.

상사가 업무와 무관한 개인적인 일을 시키는 '갑질'이나 담당이 아닌 다른 상사가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엄연히 고유한 업무가 있는데도 "임원을 즐겁게 해주라"고 성희롱적인 발언을 일삼거나 "편안하게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으로 비꼬는 사람들도 초년생 비서들이 겪는 스트레스의 한 원인이었다.
◆"슬프거나 화가 나도 겉으로는 웃어야"
조사 참여자들 가운데 비서학과를 졸업하는 등 비서직을 동경해왔던 이들도 많았지만, 이같은 현실 때문에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비서는 "'이렇게까지 해서 이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항상 웃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가면성 우울증'으로 불리는 '스마일마스크증후군'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스마일마스크증후군이란 슬프거나 화가 날 때도 겉으로는 웃게 되는 증상을 말한다.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변비에 시달린다거나 스트레스 때문에 생리주기가 변했다는 호소도 나왔다.
조사대상자 대부분은 비서를 감정노동자로 인식했다. 업무 특성상 비서가 감정노동자가 아니라는 응답자들도 실제로는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인정했다.
박씨는 "신입 비서는 회사에 적응하고 업무를 숙련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대다수는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 감정노동과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며 "편견과 오해를 바로 잡고 업무매뉴얼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 교육·복지 등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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