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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이 건강해야 먹거리 안전… ‘동물 복지’ 첫 발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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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12 20:01:08 수정 : 2017-10-12 2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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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이 미래다 - 그린 라이프] 당국, 축산업 가이드라인 마련 착수 / 살충제 파동 겪으며 자성론 대두 / 선진국과 달리 ‘동물 복지’ 개념 생소 / 공장식 밀집사육, AI·구제역 원인 꼽혀 / 동물 습성 맞춘 친환경사육 필요성 확산 / 농식품부, 환경 개선 팔걷어 / 동물복지 인증농장 120곳뿐… 한우는 0 / 안전식품 수요도 늘어… 당국 지원 검토 / 관리비용·제품 단가 상승 등은 과제로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좁은 우리. 본능이 억제된 채 먹고 자고 배설하고 알을 낳는 기계로 전락한 닭.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무분별하게 쓰이는 약품과 인공사료들. 지난달 발생한 살충제 달걀 사태는 어쩌면 예고된 재앙이었을지 모른다. 동물의 욕구가 철저히 무시된 채 규격화한 사육조건에 동물을 끼워 맞춘 공장식 축산업 환경이 주범이다.

비단 닭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좁은 금속제 우리(스톨)에 갇혀 인공수정된 새끼를 낳고 젖 먹이기를 반복하는 돼지(모돈), 평생 넓은 초원에서 풀 한번 뜯어보지 못하고 사료통만 뒤적이는 소의 모습도 안타깝지만 우리에겐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근래 들어 거의 매년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 등이 발생하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했다. 근본적인 원인이 밀집 사육과 공장형 축산이라는 점이 수차례 지적됐다. 이런 환경에서 정상적인 결과물을 바랐던 것은 인간의 과욕일지 모른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제적인 추세와 더불어 동물복지 축산에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경남 최초로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거창군 위천면 ‘더불어행복한농장’ 대표 김문조씨가 돼지들이 몰려들자 환하게 웃고 있다. 이곳 농장의 돼지는 좁은 케이지가 아닌 왕겨와 톱밥이 깔린 쾌적한 돈사에서 자란다. 동물복지인증차량으로 돼지를 수송하고 도축도 동물복지인증도축장에서 한다. 새끼돼지들의 돈사에는 항상 맘 놓고 먹을 수 있는 넉넉한 급이기, 사탕처럼 빨아먹는 영양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즐겁게 놀 수는 장난감도 마련돼 있다.
거창군 제공
◆가축에도 자유를 ‘허’하라

1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46.8㎏(달걀은 1인당 268개)에 달한다. 1970년(5.2㎏)과 비교하면 약 9배 증가했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국민소득 향상으로 축산물의 수요가 증가했고 축산업은 양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동물복지와 같은 질적 성장은 이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환경오염이나 가축질병 문제는 물론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도 연장선에 있다.

유럽연합(EU) 국가 등을 중심으로 동물복지 개념이 일찍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 사회에서 동물복지는 아직은 다소 생소하다. 최근 동물 학대나 유기 등의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반려동물에게는 점차 이런 개념이 적용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다. 하지만 고기로 섭취하는 닭이나 소, 돼지와 같은 가축에게 어떤 복지 개념을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는가를 놓고 논란이 인다.

국제적으로 동물복지의 기본적 개념으로 통용되는 ‘동물의 5대 자유’(영국 농장동물 복지위원회 제정, 1979년)는 ①배고픔, 영양불량, 갈증으로부터의 자유 ②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③통증, 부상,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④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⑤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다. 우리나라도 이런 개념을 포함해 2011년 8월 동물보호법을 개정했다. 이듬해 3월부터는 가축에도 이러한 부분을 적용해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를 도입했다.
◆습성에 충실해야 ‘동물복지’

동물복지 인증 농장들은 살충제 달걀의 파고를 피했다. 전국 92곳의 동물복지 인증 산란계 농장 중 단 한 곳도 비펜트린이나 피프로닐과 같은 살충제 성분이 발견되지 않았다.

동물복지 인증제도는 높은 수준의 동물복지 기준에 따라 인도적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농장을 국가가 인증하는 제도다. 가축의 본래 습성을 유지하고 생물학적 요구를 충족시키며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기본이다.

산란계의 경우 동물복지 인증을 받으려면 케이지가 아닌 평사에서 닭을 사육해야 한다. 닭들은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습성에 따라 무리생활을 한다. 본능적으로 흙에 몸을 비비거나 발로 흙을 끼얹는 ‘흙목욕’을 하면서 진드기와 같은 해충을 털어낸다. 닭에게 최소한의 사료와 물만 공급하는 강제 털갈이(환우)도 금지된다. 이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적고 면역력도 강해진다. 살충제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동물복지 돼지 농장은 좁은 금속제 우리에 한 마리씩 감금해 사육하는 것 아닌, 여러 마리가 함께 생활하도록 무리사육을 해야 하며 분만을 하는 모돈 역시 좁은 틀이 아니라 운동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토록 하고 있다. 소의 경우 휴식할 수 있는 공간과 운동장을 갖추고 충분한 풀을 제공해야 하는 조건이 붙는다.

문제는 이런 조건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보니 국내 동물복지 농장은 보기 드물 정도로 극히 일부에서만 인증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란계 농장의 경우 1300여곳 중 92곳이 동물복지 인증을 받았다. 젖소의 경우 농가 5200여곳 중 6곳, 돼지는 농가 4500여곳 중 22곳이 전부다. 한우는 한 곳도 없다.

◆동물복지 이제 ‘첫걸음’

동물복지의 필요성은 동물을 향한 인간의 윤리적인 책임 외에도 건강하고 안전한 식품에 관한 소비자의 욕구가 한몫을 하고 있다. 이에 농식품부는 단순히 동물복지 농장에 인증을 해주고 인증마크를 붙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전체 축산업을 환경친화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내년까지 축종별 사육 환경 등의 실태조사를 마치고 동물복지 사육과 관련한 축종별 가이드라인을 만든다.

다양한 유인책들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12월까지 EU 국가 등의 축종별 동물복지 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가려내겠다”며 “축종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동물복지 농가에 축사 신개축 비용 지원이나 보조금 지원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한다”고 말했다.

다만 동물복지 사육장은 케이지식 등 일반적인 사육장보다 2배 이상 비용이 들고 관리 등에도 더 큰 비용이 필요해 축산품의 단가 상승 문제는 넘어야 할 산이다. 동물복지 인증 달걀 가격은 일반 달걀보다 2∼3배 정도 비싸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동물복지가 정착한 유럽은 가격보다 동물복지를 선호하는 문화가 전반적으로 깔려 있어 이제 시작하는 우리와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며 “급진적인 변화는 쉽지 않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개선과 개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구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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