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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군은 바보였나” 중고 시누크 헬기 도입 논란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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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24 06:00:00 수정 : 2017-09-22 20:4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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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소속 CH-47D 수송헬기 2대가 훈련을 위해 지상에서 대기하고 있다. 미 육군 제공
우리가 자동차를 살 때, 구입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공장에서 갓 생산된 따끈따끈한 차량을 사거나 중고차 시장에서 쓸만한 중고차량을 구매하는 것이다. 잘 찾아보면 수많은 중고차량 중에서도 상태가 양호한 자동차를 발견할 수 있다. 생산된 지 15년이 됐지만 10만㎞도 채 달리지 않은 차량처럼 말이다.

무기도 마찬가지다. 실전에 투입된 장비가 아니라면 생산된 지 오래되어도 실제 내구연한까지 수명주기가 많이 남은 무기들이 적지 않다. 이 무기들은 국방예산이 넉넉지 않은 나라들이 주로 구매한다. 미국이나 서유럽 공군이 사용했던 F-16 전투기들이 창정비를 거쳐 제3국에 저가로 팔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해외 주둔 미군이 현지 정부에 장비를 무상인도하거나 매각하기도 한다. 이라크 주둔 미군은 철수 당시 험비와 트럭, 각종 지상장비 부품 등을 현지 정부군에게 매각한 바 있다. 우리 군도 1953년 휴전협정 직후부터 지금까지 미군의 중고 장비들을 무상 혹은 유상으로 도입해 운영해왔다. 그런데 최근 주한미군이 운용했던 중고 CH-47D 시누크 수송헬기 도입을 둘러싸고 졸속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주한미군 CH-47D 수송헬기 편대가 병력을 태우고 훈련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이륙하고 있다. 육군 제공

◆정말 고물 헬기가 군에 들어왔나

주한미군이 사용했던 CH-47D 헬기 도입 문제를 처음 제기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군이 2014년 도입한 중고 CH-47D 헬기 14대는 주한미군이 50년 가까이 운용한 ‘고물 헬기’로 수리부속도 조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무리하게 중고 헬기를 도입한 것은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의 지시 때문이라며 헬기 도입과 부대 창설 등에 투입된 1500억원이 낭비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당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2013년 3월 도입타당성 조사, 4~7월 선행연구, 8월 사업타당성 조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KIDA는 중고 CH-47D 헬기를 2030년까지 사용 가능한 것으로 파악했다. 군 관계자는 부품 조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부품 판매가 2018년 9월부터 중단된다는 통보를 2015년 미국으로부터 받았다”며 “이것은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대외군사판매(FMS)를 통한 판매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상용 구매는 여전히 가능하다”고 밝혔다.

우리 군은 1987년부터 CH-47D 18대와 항속거리가 늘어난 CH-47D LR 6대를 도입해 육군에 배치했다. 공군도 1991년 HH-47D 6대를 도입해 수색구조용으로 쓰고 있다. 2013년 주한미군이 시누크 헬기 시리즈 중 최신형인 CH-47F를 도입하면서 기존에 쓰던 CH-47D 14대를 우리 군이 대당 50억원 안팎의 비용으로 구입, 육군과 공군에 각각 9대와 6대가 배치됐다. 군 당국은 CH-47D에 항법장치와 미사일경보장치 등을 부착해 성능을 향상시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주한미군에서 인도받은 물량은 개량 대상에서 제외돼 “개량도 못할 만큼 고물 헬기를 사왔다”는 논란의 원인을 제공했다. 

정말 그럴까. CH-47D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1982년이다. 주한미군이 시제기를 도입해 운용했다고 쳐도 2013년 기준으로 30여년을 운용한 셈이다. 50년이라는 운용기간을 설정하려면 1960년대 초 시누크 시리즈의 원형인 CH-47A가 미 육군에 납품되는 시점부터 계산해야 한다. 첫 단추부터 틀린 셈이다.

시누크 시리즈의 제작사인 미국 보잉은 2006년 시누크 시리즈의 최신형인 CH-47F를 선보인다. 2007년 7월부터 미 육군에 배치된 CH-47F 헬기는 통합된 디지털 조종 체계를 갖춘 우수한 수송헬기다. 미 육군은 CH-47F를 도입하면서 기존에 운용하던 CH-47D를 F형으로 개조하는 방식으로 도입비용을 줄였다. 일반적으로 항공기를 개량할 때 개량 대상으로 선정되는 기체는 창정비 주기가 도래한 것을 고른다. 따라서 오래 전에 생산된 기체부터 개량을 시작해 기골 보강 등을 진행한다. 그런데 주한미군이 2013년 우리 군에 넘긴 중고 CH-47D는 F형으로 개량되지 않았다. 생산 시기가 상대적으로 늦은 기체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시누크 시리즈의 제품 번호를 추적할 수 있는 사이트를 검색해보면 오래된 기체를 지속적으로 개량해서 사용하는 미 육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최신형인 CH-47F 중 CH-47D를 개량한 것이 있다. 이 기체의 제품번호를 추적하면 1967년에 등록된 CH-47B가 나온다. 말 그대로 50년 가까이 된 기체라는 의미다. 주한미군으로부터 고물 헬기를 샀다는 주장대로라면 미 육군도 고물 헬기를 비싼 돈 들여가며 개량해 쓰는 ‘호구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1960년대 생산돼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 버려진 P-3B 해상초계기를 가져와 개량을 거쳐 P-3CK라는 이름으로 운용하는 우리 해군도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기체를 완전 분해하다시피 하는 창정비와 성능개량을 거친 항공기의 경우 새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품 공급 역시 문제가 없다. CH-47D는 15개국에서 여전히 사용중이다. 미 육군은 CH-47F를 도입하고 있으며 2040~2050년대에도 운용될 가능성이 높다. 제작사인 보잉이 협력업체들을 유지하려면 해외 각국에 판매된 시누크 시리즈에 대한 후속군수지원에 공을 들여야 한다. 그래야 CH-47F 생산에도 차질이 없다.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FMS 방식의 판매가 중단돼 부품구입비가 상승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FMS는 사후 정산 방식이라 정해진 가격이 없다. 일반상업구매(DCS) 방식과 비교할 때 가격 측면에서 FMS가 우위에 있다고 확증할 수 없는 이유다.

항법장치나 미사일경보장치가 제거된 것도 미국 군용 GPS가 장착된 상황에서 별도의 허가가 있어야 인도받을 수 있다. 인도받지 못하더라도 유럽 등 제3국 방산업체에서 유사한 장비를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고, 민수용 GPS를 써도 비행에 문제는 없다. 우리나라만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 미국 행정부 시절 필리핀에 인도된 미 해안경비대 중고 경비함의 경우 대공레이더 등 일부 장비가 제거돼 필리핀정부가 해상작전헬기를 탑재하는 등 성능개량 작업을 자체적으로 진행했다.
우리 군은 F-4 전투기처럼 수십년 동안 사용한 무기들이 적지 않다. 문제를 제기하려면 이 무기들을 제때 교체할 예산부터 배정하는 것이 먼저다.

◆중고 쓰는게 싫다면 예산부터 배정해라

군 당국은 ‘고물 헬기 졸속 도입’ 논란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적절한 지적은 아니라는 반응을 숨기지 않고 있다. 군 관계자는 “헬기 조종사들이 직도입 기체보다 중고 기체를 더 타고 싶어한다”라며 “보잉에서 점검한 결과 기체 상태도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그는 “중고 CH-47D 도입비용으로 신형 CH-47F를 사려면 2~3대도 못 살 것”이라며 예산 부족 문제도 지적했다. 또다른 군 관계자는 “만약 중고 CH-47D에 문제가 있었다면 조종사들이 곳곳에 투서를 뿌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군의 입장에서 중고 CH-47D는 차선이었다. 군은 북한 후방으로 특수부대를 침투시킬 대형 수송헬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돈줄을 쥐고 있던 이명박정부는 군이 첨단 무기를 계속 사들이는 것을 탐탁지 않은 눈길로 보고 있었다. 예산에 제약이 심하다보니 대형 수송헬기 도입은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렸고, 마침 주한미군이 중고 CH-47D 판매를 제의하자 응한 것이다. 
주한미군 CH-47D 헬기 도입 당시 국방부 장관은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다. 김 전 장관은 F-35A 도입 등 주요 현안에 깊숙이 개입한 인물이다. 미 국방부 제공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구매결정이 지나치게 빠르게 결정됐다는 점이다. 우리 군의 소요 결정 이후 국방중기계획에 즉각 반영되는 등 이례적으로 단기간 내 구매가 결정됐다. 주한미군이 제의한 지 이틀 만에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특별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군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이 소요를 검토해보라고 했느냐는 질문에 “ 소요의 필요성을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박근혜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김 전 장관은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F-35A 도입, 국군사이버사령부 정치댓글 등 박근혜정부 당시 논란을 빚었던 국방 주요 현안에 깊숙이 개입한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중고 CH-47D 논란을 놓고 정치권에서 김 전 장관이 추진했던 정책들을 저인망식으로 훑으며 의혹을 찾아내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 군은 무기를 ‘마르고 닳도록’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육군 UH-1H 헬기는 생산된 지 50년이 되어가며 공군 F-4E 전투기도 30~40년이 되어간다. F-5E/F도 30년이 넘었다. 예산 문제로 수명주기가 도래한 장비들을 제때 개량하거나 새 장비로 대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고 무기 도입을 ‘바가지 쓴 것은 아닐까’라고 바라보는 왜곡된 의식도 존재한다. 만약 당시 국방예산이 넉넉했다면 군이 중고 CH-47D를 구매했을까. 최신형인 CH-47F나 V-22를 선택했을 것이다. S-3B 중고 바이킹 초계기 도입 논란 역시 제한된 예산으로는 원하는 수량의 P-8A 초계기를 도입할 수 없고, P-3C도 생산이 중단된 상황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우리 군이 중고 무기를 좋아서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예산이 부족하기에 택하는 차선책이다. 군이 중고 무기 사는 게 싫다면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권과 정부가 군의 행보를 비판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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