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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어머니의 불행한 삶 신화를 쓰는 것처럼 보상해주고 싶었다”

입력 : 2017-09-18 21:12:32 수정 : 2017-09-18 22: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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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번째 소설집 낸 작가 이승우 “환경으로부터의 도피도 작용했을 거 같아요. 나는 고아였고,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고, 아버지란 존재를 피부로 느낀 개념이 없는데, 어느 순간 종교의 영역 안에서 그게 느껴진 거죠. 그 상황 속으로 피신하면서 몰입됐어요.”

“고아였다고요?”

“그랬다고 봐야죠. 사실 되게 복잡해요. 계셨는데 안 계신 거. 아버지인 줄 몰랐으니까. 아버지는 병들었겠죠. 아버지라고 부르질 않았으니까. 어떤 분이 있다는 건 알았지.”

통산 10번째 소설집을 펴낸 소설가 이승우. 국내보다 프랑스에서 더 사랑받은 소설을 쓴 그는 “작가의 서툰 손놀림을 따라 구석진 세상 이치나 주눅 든 진실 같은 것의 흔적을 같이 더듬어 헤아려 보(려)는 이가 독자”라면서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그런 의무를 스스로 짊어지는 이들, 여전히 소설을 쓰는 사람의 여전한 희망을 공유한 이들에게 혈육과도 같은 친밀감을 느낀다”고 썼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태어나는 존재는 처음부터 없었다. 태어나고 보니 나는 누군가의 아들이고 어떤 존재는 나의 아버지였다. 성경에서 그 아버지는 바로 신적 존재이고, 그 절대적 존재는 늘 ‘한낮의 시선’처럼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내려다본다.

소설가 이승우(58)에게 신학대학에 갔던 배경을 물었을 때 그는 ‘고아’란 말을 꺼냈다. 그가 최근 단편들만 모은 열 번째 소설집 ‘모르는 사람들’(문학동네)을 펴냈다. 단편만 모아 열 권씩 펴낸다는 건 대단한 성실성에다 평단의 끊임없는 관심이 충족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업적’이다. 이를 계기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광주 조선대에서 문예창작과 교수로 사는 그를 만나러 KTX로 내려가 수업과 수업 사이 짧은 점심시간, 충장로에서 만났다.

이승우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스스로 ‘고아’라고 언명하는 순간, 짧은 전율이 일었다. 외로운 이들은 누구나 고아의식을 지니고 있을 법도 하지만, 그에게 들어본 고아의 정체는 그가 지금까지 써온 소설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었다.

이승우는 전남 장흥 태생이고 그곳에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 큰아버지 아래 살았다. 장흥 명문가의 소생이었지만, 이후 몰락한 그곳 벽지에서 살다가 중2 때 상경해 서울신학대학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하다 소설가로 들어선 경우다. 그는 성장기 내내 세상과 인간과 불화했다. 분노와 울분이 가득 찬 내면이었다.

‘그러니까 세상에 대한 나의 그와 같은 원한과 적의는 실은 질시와 투기에 다름 아니었던 셈이다. 이것이 아닌 어떤 것, 여기가 아닌 다른 어떤 곳. 아침에는 밤을 기다리고, 밤에는 아침을 기다렸다. 그러나 충족감은 어디서도 오지 않았다.’


이승우가 처음으로 문학상을 받은 ‘생의 이면’에 나오는 이 문장들은 성장기의 상황을 대변한다. ‘생의 이면’은 2000년 프랑스에 번역돼 그곳 평단에서 대단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후 2006년 역시 프랑스에 번역된 ‘식물의 사생활’은 평단은 물론 프랑스 독자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초판은 바로 매진됐고 이후 국내에서보다 프랑스에서 더 많은 인세를 받았다. ‘생의 이면’ ‘식물의 사생활’ 이전에 그를 문단에 내세운 데뷔작은 ‘에리직톤의 초상’이었다. 이 세 작품을 평론가 신형철은 ‘마태복음’을 세 번 읽은 듯하다고 쓴 적도 있다.

“그랬다고 봐야죠. 아버님은 없었고, 사실 되게 복잡해요. 계셨는데 안 계신 거… 아버지인 줄 몰랐으니까. 아버지는 병이 나서… 금치산자였죠. 아무 활동 못하고 갇혀 있다시피 했고, 약간 폭력적이기도 했고, 공부하다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온… 어머니는 시댁 식구들이 가라고 해서 친정에 가고… 어머니 이야기를 다 들어보면 그래요.”

이승우가 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생의 이면’은 이러한 가족사를 배경으로 한 존재가 어떻게 소설을 쓰는 예술가로 지금 서 있는지, 평전 형식으로 추적한 격렬한 장편이다. 자전적인 형식인데 디테일은 다르지만 작가의 내면 서술은 큰 틀에서 실제와 다르지 않다. 어머니는 시집오자마자 이상한 성격의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결혼생활은 파탄에 이르렀으며,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그중 하나가 이승우였다. 쌍둥이 형은 광주로, 이승우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벽촌 장흥의 바닷가에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살다가, 아버지인 줄도 모르는 이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생의 이면’에서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고백한 자서는 이번 열 번째 소설집에 보다 진솔하게 등장한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두 번째 수록 단편 ‘복숭아 향기’가 그것이다. 이 소설 속에서 어머니는 시집오자마자 정신이상의 폭력적인 남편을 맞고 그로 인해 유폐되는 상황에 이른다. 아들이 그 전모를 뒤늦게 파악해나가는 줄거리인데, 그 아들이 쥔 결론은 어머니가 스스로 남편을 가엽게 여겨 처음부터 그 남자의 불행을 껴안은 것으로 귀결된다. 이를 감싸는 신비스러운 배경은 과수원을 가득 채운 복숭아 향기였다. 그 향기가 아니라면 인간 세상의 합리로는 선택할 수 없었던 헌신이었던 셈이다.

“이 단편을 쓸 때 하나의 동기가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삶을 문학적으로, 신화를 쓰는 것처럼 보상해주자, 그런 마음이 있었지요. 디테일은 많이 다르지만 우리 어머니는 실제로 그렇게 시집왔고, 오자마자 남편이 이상해졌고 굉장히 불행한 삶을 살았지요. 어머니에게 내가 문학적으로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을 첫 번째로 쓴 게 이 작품입니다.”

이승우는 이 단편을 필두로 다섯 편쯤 연작으로 쓸 생각이었는데 아직 못 썼다고 했다. 어머니가 이 남편을 선택한 것이 주변의 환경 때문이 아니라 주체적인 선택이었다고 쓴 게 그의 위로다. 그에게 존재하지만 부재했던 아버지, 존재하지만 늘 떨어져 살아야 했던 어머니. 그 사이에서 이승우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존재하는 관념적인 신에게 그 자신을 의탁했던 건 아니었을까. 세속에서 그를 장악한 건 소설이었다. 어머니에 대해 비로소 자유로워진 위안을 전한 이 단편에 이어 이번 소설집 앞머리를 장식한 표제작 ‘모르는 사람들’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소설 속 아버지는 ‘모르는 사람’이다. 어느 세상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막연한 추상의 아버지. 그가 어느날 사라졌다. 십일 년 만에 확인된 그 아버지는 아프리카에서 선교생활을 하다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고, 어머니는 그이가 소속한 회사 모델과 바람을 피우다 실종된 것으로 믿고 싶어 한다. 이승우는 끝내 어머니 편을 들고야 말았다.

“때로는 나를 간섭하고 있는 모든 관계로부터 잠적해버리고 싶은 게 있어요. 그게 남겨진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이건 뭘까 싶겠지만 내 소설에서 아버지는 있어도 없거나 허영에 매몰된 그런 사람들로 많이 그려지는데, 처음에는 아버지의 삶을 긍정한다는 쪽으로 가다가 나중에는 어머니 편을 들어요. 삶에 적극성을 가진 사람을 너무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거죠.”

이번 열 번째 소설집 첫머리 두 편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바치는, 보다 자유로워진 이승우의 부모에 대한 화해의 서사라면 이후 전개되는 단편들은 탄핵 국면 같은 상징적인 사회 상황이 작가의 내면에 미친 반영들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2001년 광주 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살면서부터 그는 소설을 더 열심히 썼다고 했다. 제자들에게 가르칠 것은 작가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내용과 자세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절감했다고 한다. 그는 “내가 좋은 작가를 보여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말했다. 서둘러 오후 3시 수업을 향해 택시를 잡는 이승우와 전남도청 앞에서 헤어졌다.

광주=글·사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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