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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피츠포크부터 유영철까지…DNA 과학수사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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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29 21:06:26 수정 : 2017-08-31 13: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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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1월 영국 나보르의 작은 마을에서 15살 여중생 린다 만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린다는 한적하고 조그마한 들길을 산책하던 중 누군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다음 목이 졸려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이 현장에 남긴 유일한 단서는 여학생의 몸 속에 남긴 정액. 경찰은 정액 분석을 통해 범인의 혈액형이 A형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단서를 찾지 못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같은 15세의 여중생 돈 애쉬워드가 피해자였다. 린다의 시신이 발견된 지점에서 불과 1.6㎞쯤 떨어진 곳에서 돈 역시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채로 발견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찾은 범인의 정액을 과학수사연구소로 보냈고, 범인의 혈액형이 A형임을 확인했다. 경찰은 혈액형이 두 사건 다 A형이라는 점에서 동일범의 소행으로 결론내렸다.
영국인 강간살해범 콜린 피츠포크. 범죄 역사상 처음으로 DNA 감정에 의해 혐의가 입증돼 구속됐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직업이 없고 한때 성추행 혐의로 철창을 드나들었던 불량 청년을 지목했다. 평소 행실이 좋지 않기로 소문이 난 그의 이름은 리처드 버클랜드로 혈액형이 A형이었다. 저명한 유전학자인 알렉 제프리 교수가 버클랜드의 혈액을 채취해 DNA 지문을 분석한 결과 그는 범인이 아닌 것으로 판명나 석방됐다.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경찰은 궁여지책으로 사건이 일어난 나보르 마을에 거주하는 모든 남자들을 대상으로 혈액검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나보르에 사는 5000여명의 남자 전원의 혈액 샘플을 채취해 검사했으나 범인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한 여성이 “콜린 피츠포크라는 남자가 친구에게 부탁해 자기 대신 친구의 혈액 샘플을 제출한 의혹이 있다”고 당국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콜린 피츠포크는 약간 어리석은 친구에게 술을 사주고 용돈도 주면서 ‘나 대신 피검사에 응해 달라’고 부탁했으며 심지어 조작한 신분증까지 그에게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콜린 피츠포크를 붙잡아 피를 뽑고 알렉 제프리 교수에게 DNA 감식을 의뢰한 결과 연쇄 강간살인범의 DNA 지문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콜린 피츠포크는 범죄 역사상 DNA 감식으로 붙잡힌 1호 케이스로 기록됐다. 올해 56세가 된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아 여전히 수감 중이다.

29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DNA 감식으로 진범을 붙잡아 처벌한 사례는 우리나라도 많다. 1992년 3월 다방 여종업원 피살사건은 국내 최초로 용의자에게 감정을 실시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다방 여종업원이 성폭행 후 살해됐는데 그 몸속에서 남성의 DNA가 발견됐다. 대전 동부경찰서에서 수사망을 좁혀 용의자 7명에 대하여 대검찰청에 DNA 분석을 의뢰하였으나 일치자는 나오지 않았다.
한국은 1992년 처음 범죄 용의자를 상대로 DNA 감정을 실시했고 이제는 과학수사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2004년 1월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의 증거 확보는 DNA 감정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범인의 살인 자백이 있었으나 정작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사건이었다. 유영철이 범행 도구로 쓴 해머에서 피해자의 DNA을 찾아내 자백을 보강하는 증거로 활용했다. 결국 유영철은 2005년 6월9일 사형이 확정됐다.

2011년 6월 범인 불상의 절도사건이 발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감정에서 DNA를 검출하지 못한 절도사건이었다. 그런데 증거물인 범인의 운동화에 대한 대검찰청의 재감정을 통해 깔창에서 DNA를 찾아낸 뒤 대검에 있는 DNA 데이터베이스(DB) 검색을 통해 범인을 찾아 사건을 해결했다. 범인은 2011년 12월31일 징역 4년이 확정됐다.

2013년 11월에는 무면허 교통사고 운전자 바꿔치기 사건을 DNA 감정으로 해결했다. 교통사고 가해차량의 동승자가 ‘내가 운전했다’고 허위로 자백한 사건이었다. 가해차량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하여 운전석 에어백에서 사고를 야기한 진범의 DNA를 확보해 사건을 해결했다.

2015년 4월에는 육절기를 이용한 사체훼손 살인사건의 현장 지원을 했다. 이 사건은 육절기를 이용해 피해자 시신을 훼손한 다음 한적한 장소에 유기함으로써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사건이었다. 대검찰청에서 3차례 현장 출동을 통해 육절기의 110개 부분에서 피해자의 DNA를 검출하고 생체조직을 확인해 살인 혐의를 입증했다. 범인은 지난해 12월29일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아직 국민의 기억 속에 생생한 부천 영아학대 사망사건의 현장 지원도 했다. 지난해 3월 생후 2개월이 된 여아가 사망하였으나 사망 원인이 불분명했던 사건이었다. 대검찰청에서 주거지에 대한 현장 정밀감정을 실시하여 피해자의 배냇저고리, 부친의 잠옷, 바지 등에서 다량의 피해자 혈흔을 확인했다. 가해자인 부모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함께 구속 기소됐다.

지난해 4월 무학산 등산객 살인사건을 해결한 것도 DNA 감정의 힘이었다. 경남 창원 무학산에서 등산을 하던 여성이 연락두절되더니 다음날 사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피해자와 같은 기지국에서 통화내역이 확인된 용의자 A씨를 체포해 수사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2회에 걸쳐 증거물 감정을 했으나 DNA 발견에 실패했다. 하지만 대검찰청이 피해자의 등산장갑에서 진범의 DNA를 찾아냄에 따라 A씨는 석방됐다. 이후 경찰은 대검의 DNA DB에서 진범을 확인해 그를 구속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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