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32)씨는 "일부 사람들이 무기계약직 근로자를 일컬어 정규직이 아닌 '중규직'이라는 걸 보면 정말 안타깝다"며 "1998년 IMF 외환위기 이전에는 비정규직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고 전했다.
C(39)씨는 "정규직, 비정규직 의미가 있을까 싶다. 어차피 정규직도 '파리 목숨'"이라면서 "우리나라 특유의 야근문화만 척결해도 실업난 상당 부분 해결된다. 4~5명이 할 일을 2~3명이 도맡아하며 야근하니 업무 전문성 떨어지고, 일자리도 줄어들며, 근로환경도 악화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D(46)씨는 "일본이나 미국 같은 경우 비정규직이 많긴 하지만 그들의 급여가 정규직보다 높은 경우도 많다"며 "애당초 우리나라에 파견법을 만들 때 고용의 지속성이 없다는 이유로 조금 더 높은 급여로 했어야 했는데, 이걸 간과해 저임금 비정규직이 생겼다고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정규직 10명 중 1명은 자신을 비정규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이들의 노동 조건은 비정규직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 조건을 세분해서 보지 않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만 나눠 정책을 시행할 경우 이들이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9일 김기홍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의 '객관적 고용형태와 주관적 고용형태의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노동패널조사 2014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객관적으로는 정규직으로 채용된 근로자임에도 주관적으로 비정규직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10.7%에 달했다.
반면 실제로는 비정규직임에도 정규직으로 인식하는 근로자는 18.7%로 나타났다.
한국노동패널조사는 비농촌지역에 거주하는 한국 가구, 가구원을 대표하는 5000가구 패널을 대상으로 1년에 1번씩 경제활동, 노동시장 이동, 소득활동과 소비를 추적하는 조사다.
◆정규직 10명 중 1명 "나는 비정규직인 것 같다"…왜?
정규직임에도 자신을 비정규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은 이들의 근로조건이 비정규직처럼 열악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자신이 비정규직이라고 생각하는 정규직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7.2시간, 월 평균 임금은 175만4000원으로 실제로 정규직이고 스스로 정규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46.5시간)보다 길고 월평균 임금(290만6000원)은 적었다.
시간당 평균 임금은 비정규직으로 인식하는 정규직이 8900원으로, 스스로 정규직이라고 생각하는 정규직(1만5000원)의 60% 수준에 그쳤다.

자신이 비정규직임에도 정규직으로 생각하는 근로자들의 노동여건은 상대적으로 더 나았다.
이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6.5시간으로 다소 짧았지만, 월평균 임금은 238만3000원으로 더 많았다.
시간당 평균 임금으로 따지면 1만2500원으로 정규직임에도 비정규직으로 인식하는 근로자들보다 높았다.
김 연구원은 "정규직임에도 비정규직으로 인식하는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때문에 시간당 평균 임금이 낮다"며 "비정규직임에도 정규직으로 생각하는 노동자들은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는 전일제 근로자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韓 근로자들 장시간 노동, 저임금…시간당 평균 임금 낮아
임금뿐만 아니라 4대 보험 가입, 퇴직금 등에서도 자신을 비정규직으로 인식하는 정규직의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다.
이들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46%로 스스로를 정규직으로 보는 정규직(94%), 비정규직임에도 정규직으로 생각하는 근로자(78%)에 미치지 못했다.
비정규직으로 인식하는 정규직들의 건강보험 가입률은 50%, 실업보험은 47%, 산재보험은 49%로 절반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에 반해 자신을 정규직으로 생각하는 정규직·비정규직에서 그 비율은 80∼90%대에 이르렀다.
연령별로 보면 비정규직으로 인식하는 정규직은 60대 이상이 9.5%로 가장 높았다. 여성(7.7%)이 남성(6.3%)보다, 학력별로는 고졸(10.2%)과 고졸 미만(9.8%)에서 그 비중이 컸다.
김 연구원은 "저임금, 사회적 안전망에서의 소외, 해고비용 부재 등이 고용형태에 대한 객관·주관적 불일치가 나타난 주요 원인"이라며 "노동 조건 개선이 전반적인 일자리 질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성, 고령자, 저학력자 집단에 대한 취업 지원이 필요하다"며 "노동 조건을 반영해 정규직을 세분화하는 등 정밀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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