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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삽자루의 천민통신] (18) 밥하는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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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18 09:50:57 수정 : 2017-07-18 10: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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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미'는 밥하는 아줌마였다. 밥을 나르는 식당 아줌마였다. 온종일 찬 그릇을 놓고 빈 그릇을 가져가는 일을 했다. 스테인리스 쟁반은 삶의 무게로 묵직했다. 스무 자리가 넘는 식당 홀은 점심에 두 차례 차고 빠졌다. 아무리 바빠도 음식 내가는 순서를 틀리지 않았다. 오는 손님을 반기고 가는 손님의 밥값을 계산해줬다. 식탁 위에 국수 그릇 몇 개, 수육 접시 몇 개, 기둥 사이에 숨겨놓은 소주병까지 헤아려서 몇만몇천원을 달라했다. 암산을 못 믿겠다는 손님들도 있었다. 계산기를 두들겨 주면 이마를 탁 치고 나갔다. 셈에서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온종일 남의 돈을 받고 남의 허기진 배를 챙기고 남의 귀찮은 뒷정리를 하고는 밤이 깊어야 돌아왔다. 입은 옷은 항상 멸치나 돼지 삶은 냄새로 그득했다. 어머니 냄새는 음식 냄새였다. 어머니가 식당을 다니게 된 건 밥 굶을 정도로 가난해 배움이 짧았고, 밥 먹이고 가르쳐야할 자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당 아줌마들은 하루종일 바삐 일하면서도 짬나면 자식 얘기뿐이라고 한다. '애미'들이 쉬지 않고 일했던 건 팔할이 자식 때문이었다. 

밥하는 아줌마들은 으레 밥취급을 당했다. 장사가 시원찮은 날에는 주인이 심술을 부렸다. 음식이 맛이 어떻네 서비스가 어떻네 하며 지적질 참견질이다. 종일 퍼붓는 잔소리에 눈칫밥 신세다. 나이 어린 손님이 간혹 반말을 하기도 한다. 우리집에 너 만한 자식이 있고, 너희집에는 나 정도 늙은 부모가 있을텐데, 아무리 손님이 왕이라지만 식은밥 취급은 너무 했다. 나이 먹었다고 다 점잖지도 않다. 단골이라며 치근덕거리는 꼴을 볼때마다 콩밥을 먹이고 싶다. 이거저거 해달라는게 많은 이도 있다. 목소리가 커야 대접 받는다는 식이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주인에게 따진다. 그런 막가파를 볼 때마다 속은 새까맣게 탄 밥이다. 하는 일이 하찮으면 사람도 하찮게 본다. 식당 문을 나서면 모두가 을일텐데 문턱만 넘어오면 모두 갑이 된다. 손님이 을이고 주인이 병이니 꼼짝없이 정 신세다. '애미'들은 오늘도 버스, 지하철에 몸을 싣고 대접 받지 못하는 일터로 향했다. 이 모진 삶의 현장을 꿋꿋하게 버티는 이유 역시 팔할이 자식 때문이었다. 

밥하는 아줌마들이 뿔났다. 학교 급식실 조리사들이 국자와 집게를 내려놓고 광장에 섰다. 비정규직 완전 철폐와 2만원 수준인 근속수당을 5만원으로 올려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는 교사 대비 80% 수준의 대우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원문은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를 80% 수준까지 줄이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을 학교에서부터 지켜져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악의적인 의역이다. 학생들의 밥을 볼모로 정치투쟁을 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전적으로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10년을 일해도 20년을 일해도 기본급은 최저임금에서 시작한단다. 정규직에 비해 60%의 임금을 받는다고 한다. 근속수당으로 이 격차를 다소 줄여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였다. 밥값한 보람을 반값 대접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광장의 열기는 차분하게 식어갔으며 다행히 급식 차질은 많지 않았다. 일부 학교에서는 삼겹살을 구워 친구들과 오손도손 나눠먹는 풍경도 연출했다. 정작 불난집은 다른 곳이었다. "미친x들" "그냥 밥하는 아줌마"라는 말들이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이어 "간호조무사보다도 못한, 그냥 요양사"라는 말로 불씨가 여기저기로 퍼졌다. 안하니만 못한 사과를 했고 논란은 진행형이다. 밥하는 아줌마들을 더 뿔나게 한 건 같은 여자에게서 느끼는 배신감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위대하듯 밥하는 아줌마들도 위대하다. 찜기, 화덕으로 가뜩이나 진땀나는 급식실에서 위생복, 고무장화로 완전무장한채 버텨야 한다. 조리 시 섭씨 55도까지 올라가지만 제대로된 냉방기구가 없어 여름이면 탈진하는 사람이 속출한단다. 척박한 환경에서 밥먹여야할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들이 주는 음식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 새싹들의 일부는 국회의원이나, 판사, 변호사 등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 나올지도 모른다. 나라의 동량을 기르는 값진 일이다. 차별 받아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문제의 출발점이 일하는 엄마, 식당일하는 엄마, 집안일하는 엄마로 사람을 구분하는 인식의 문제는 아니었으면 한다. 아이를 둔 학부모로서 급식의 질이 형편 없어지고 있는 문제에 분개했다는 것도 변명일 뿐이다. 식판에 놓인 돈까스 두 조각을 따질게 아니라 그 두 조각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밥하는 아줌마들은 살아보겠다고 광장에 섰다. 애들 먹일 급식으로 협박하냐는 손가락질을 당했다. 손가락질한 이들은 언젠가는 같은 처지에 놓일 것이다. 조금의 불편도 못 참는 건 마음이 온전히 자라지 못해서다. 상대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줄 모르는 걸 보면 아직 우리 사회는 성숙과는 거리가 먼 듯 싶다. 

하정호 기자 southcros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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