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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학점 C+로 낮춰 주세요"…대학에 부는 황당한 청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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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04 21:11:14 수정 : 2017-07-04 2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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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김모(20)씨는 최근 1학기 성적표를 받아들고 속이 상했다. 교양 수업 하나의 학점이 B-였기 때문. 김씨의 대학에서는 B- 학점부터는 재수강이 허용되지 않는다. 김씨는 “중간고사와 레포트 과제물 성적이 별로라 기말고사를 보기 전부터 좋은 학점을 기대하진 않았다”면서 “학점 조정 기간 전에 교수님께 메일로 ‘제 학점이 만약 B-라면 차라리 C+나 C0 등 재수강이 가능한 학점으로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도 B-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학부를 졸업하고 로스쿨에 진학할 생각이다. 로스쿨 입학에는 리트(LEET, 법학적성시험)뿐만 아니라 학점도 대단히 중요하다. 이번에 받은 B-는 큰 타격이 될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대부분의 대학교가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에 돌입했다. 기말고사를 치르고 학점이 공개되면 학생들은 학점 조정 기간을 갖는다. 자신의 학점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 교수에게 ‘클레임’을 걸어 자신의 중간-기말 고사 성적, 과제물 성적 등을 확인해 자신의 학점이 왜 그리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예전만 해도 학생들의 ‘클레임’은 성적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 행해졌다.

그러나 취업난 때문에 학점 등의 스펙이 더욱 강조되고, 로스쿨 등의 전문대학원 입학에 학점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면서 학점 조정 기간에 오히려 자신의 학점을 내려달라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재수강을 통해서라도 졸업 평점을 떨어뜨리지 않는 A대의 학점을 받겠다는 것. 다만 대부분의 대학은 재수강을 위한 최대 학점 제한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는 C+는 재수강이 가능하지만, B-는 재수강이 불가한 성적이다. 이러한 재수강 제한 학점이 학생들이 "성적을 내려주세요"라는 기묘한 청탁을 하게 된 배경이다.

김씨처럼 학점 조정 기간에 성적을 내려달라는 청탁을 하지 않기 위해 아예 시험을 치르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 로스쿨 진학을 준비 중이라는 황모(21)씨는 “중간고사 시험 성적이 공개됐는데, 절반 아래 등수였다. 레포트 과제나 기말고사로는 도저히 뒤집을 수 없을 것 같아 ‘자체 종강’을 했다”면서 “최근에 성적을 확인하니 C0가 떴더라. 이번 학기 평점은 망했지만, 재수강할 때 열심히 해서 A대로 올리면 된다. 모든 과정을 다 듣고 B+나 B0가 나와 재수강을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학점을 내려달라는 성화에 교수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올해 1학기에 처음으로 수업을 진행한 시간강사 A씨는 “학교 제도가 상대평가인지라 학점대마다 일정한 비율을 매겨야 한다. 예를 들어 A학점 30%, B학점 40%, C학점 이하 30% 이하 이런 식이다. 그런데 성적을 주고 나니 성적을 내려달라는 내용의 메일이나 전화가 꽤 많이 와서 놀랐다. 내 학부 시절만 해도 B+면 기분이 좋지는 않아도 ‘그래 선방했다’ 이런 분위기였는데, 이제는 B+인 학생들도 ‘차라리 C를 달라’고 할 정도더라”라면서 “나같은 시간강사는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다음학기 수업 진행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런 ‘클레임’을 무시할 수 없어서 학생들에게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고 밝혔다.

대학교들도 학생들의 무분별한 ‘학점 세탁’과 ‘학점 인플레’를 막기 위해 재수강 제도를 개편하고 있다. 재수강 제한 학점 외에도 재수강 횟수에 제한을 두기도 하고, 재수강 시 받을 수 있는 최대학점을 A0나 A- 이하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 대학교 관계자는 “기업에서 학점 인플레가 너무 심해 성적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면서 “학생들이 재수강을 믿고 너무 쉽게 수업을 포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책을 강구 중이다. 대학이 취업학원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수강 제도 강화에 대해 학생들의 불만은 크다. 대학생 박모(21)씨는 “재수강 제도가 학교마다 다르고, 다른 대학에서는 공공연하게 학점 인플레를 용인하는 상황인데, 나만 그런 피해를 보면 취업 시장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블라인드 채용’ 등으로 학벌이나 학점 등의 스펙을 보지 않겠다고는 해도 학생 입장에서는 최대한 좋은 상태로 취업 시장에 나가야 하는 절박한 심정이다. 학생들 중심의 제도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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