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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새롭게 바뀐 한 멀티플렉스(multiplex·복합상영관) 영화관의 비상대피로 안내 영상. 안내 주위에 광고 캐릭터들이 어지럽게 움직이고 있다. 출처=유튜브 |
김씨는 “광고 위에 놓여진 화면 위쪽 대피로 안내에 집중하려 했지만 주위에 만화 캐릭터가 계속 움직여 무슨 말을 전하는지 알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같은달 27일 서울의 영화관에서 만난 이모(24)씨도 “안내화면이 화려해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대피안내보다 무슨 광고인지만 머릿속에 남았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어 "10분간 광고가 이어지는데 안내영상에 굳이 광고를 넣을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영화관은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매회 영화상영 전 피난안내 영상을 상영하도록 돼 있다. 피난안내 영상에는 ‘화재 시 대피할 수 있는 비상구 위치’, ‘비상구 및 출입구까지 피난동선’, ‘소방시설의 사용방법’, ‘피난 및 대처방법’이 포함 돼야 한다. 하지만 안내영상에 대한 시간이나 화면 크기를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아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은 후원하는 업체의 ‘광고’를 삽입해 40초 남짓의 안내영상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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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비상대피로 안내영상에 광고가 담겨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위 영화관 보다 작게 광고가 표시되고 있다. |
뿐만 아니라 특별법은 지난 2015년부터 외국인이 알아볼 수 있도록 피난안내 영상을 ‘한국어 및 하나의 외국어’로 표시하도록 규정했지만, 일부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여전히 한국어로만 된 영상을 사용하고 있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피로 안내의 상업적 이용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며 "외국인을 위한 영어안내의 경우도 2015년 1월 이후에 설립된 영화관만 적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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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울 대학로에서 본 공연 안내 게시판. 11개 극단 중 4곳은 '공연 전 피난 안내를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
공연장의 경우는 피난 및 비상대피로 안내를 하지 않는 곳이 있었다.
서울 대학로에서 소규모 공연을 한다는 이모(23)씨는 “관객에게 따로 대피로 안내를 하지 않는다”면서 “극장을 대관할 때 피난 안내를 하라고 전달받은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공연을 자주 본다는 대학생 김모(24)씨도 “공연 전 대피로 안내를 들은 기억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달 27일 세계일보가 대학로에 위치한 11개 극단에 문의한 결과 그중 4곳은 ‘공연 전 피난안내를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나머지는 극단 자체적으로 할뿐 따로 정해진 형식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주로 출연자들이 공연 전 주의사항을 전하며 비상구를 안내하는 식이였다.
영화관과 달리 공연장은 ‘다중이용업소’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 현행 공연법에는 별도로 피난 안내를 해야한다는 규정이 없어, 어둡고 복잡한 지하에 위치하더라도 상영 전 대피로 안내를 할 의무가 없다. 지난 2015년 서울시는 서울 내 공연장에 공연 시작 전 비상대피로 안내를 권장하는 지침을 하달했지만, 이후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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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내 한 영화관의 비상구 모습. 사진=안승진 기자 |
소방 관계자들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대피로를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불특정다수가 운집하는 시설에서 비상구를 찾지 못하면 대형재난으로 이뤄질 수 있다”면서 “영화관이나 공연장은 어둡고 구조가 복잡한 데다 화재가 나면 관객들이 방향감각을 잃기 때문에 더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사람은 비상시 누군가 움직이면 모두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면서 “사람들이 하나의 비상대피로로 몰리는 병목현상으로 인해 '화재 골든타임(5분)'을 넘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영상을 통해 영화관 대피로를 미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연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이상일 전 새누리당 의원실이 10개의 영화 상영관 1846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화재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모든 관객이 상영관 출구로만 빠져나가려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상영관을 빠져나가는 데만 2분이상이 걸렸고, 골든타임이 지나도록 통로와 계단에는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자칫 대형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전언이다.
이에 국민안전처는 지난해 11월 ‘영화상영관 정부합동점검’을 통해 "피난안내영상물이 상영관의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제작된 곳이 있었다"며 "후원업체의 홍보가 포함돼 관객들의 피난 정보인식에 혼란을 주는 경우가 있다"면서 영화관 측에 개선을 요구했다. 하지만 별다른 개선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안전처 한 관계자는 “안내방송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는 규정이 따로 있지 않아 강요할 수 없는 실정”이라면서 별다른 방도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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