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 사는 50대 주부 A씨는 최근 밤잠을 설치고 있다. 지난달 치매를 앓는 노모가 계신 요양시설에 들렀다가 노모의 몸에 생긴 멍자국을 보고 나서다. 직원들은 “치매 환자들이 땅이나 벽을 스스로 내리치면서 몸에 멍이 생기는 경우가 곧잘 있다”고 설명했지만, 시퍼런 멍자국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폐쇄회로(CC)TV를 보려했지만, “입소자가 생활하는 공간에는 CCTV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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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000건 안팎의 노인학대가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노인 치매환자 등이 생활하는 장기요양시설이 학대 사각지대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CCTV를 설치할 의무가 없는 요양시설에서는 학대나 안전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명확한 책임소재를 찾기 어려운 탓에 노인 가족들의 속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각에선 어린이집처럼 CCTV를 의무화 해야한단 주장이 제기되지만, 인권침해적 요소가 분명한 만큼 반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1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5년 46건에 불과하던 생활시설(요양원 등)에서의 노인학대는 2012년에 200건을 넘어선 뒤 지난해(238건)까지 쭉 200건을 상회했다. 직접적인 폭행뿐만 아니라 옷을 과격하게 입히거나 벗긴다든지 돌봄을 소홀히하는 것 등도 학대로 평가됨을 고려할 때, 드러나지 않은 학대는 더 많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시설 내 학대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남편과 함께 요양원을 운영하는 박모(43·여)씨는 지난해 6월 입소자 A(90·여)씨가 식사 중에 물을 뿜었단 이유로 손바닥으로 입부위를 때리고, 기저귀를 갈면서 몸을 함부로 밀치는 등 폭행을 일삼았던 것이 경찰조사에서 드러났다. 폭행 등 혐의로 기소된 박씨에게 재판부는 “범행에 취약한 중증 노인 환자를 수차례 폭행하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최근 부산에서도 치매를 앓는 97세 할머니가 한밤 중 요양보호사로부터 이불에 뒤집어 씌워진 채 폭행을 당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흉흉한 소식을 접한 입소자 가족들은 “CCTV가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기억력,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이 시설에서 학대나 폭언·폭행 등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가족들이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의사표현 자체가 힘든 치매노인의 경우엔 과거 비슷한 논란이 일었던 어린이집보다 문제가 더욱 심각하단 지적이다.
지방의 한 노인보호기관 관계자는 “학대의심 신고가 들어오더라도 CCTV 영상이 없는 경우엔 ‘학대’ 판정을 내리기 곤란하다”며 “(치매를 앓는) 다른 입소자 진술은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많아 난감한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현행법 상 노인요양시설 CCTV 설치는 자율에 맡기고 있다. 이에 적지 않은 시설에서 ‘입소자의 사생활 침해’, ‘요양보호사의 인격권 침해’ 등 이유로 CCTV를 아예 설치하지 않거나, 설치하더라도 주방 등 공동 공간에만 설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령 CCTV가 있어도 어린이집(30일)처럼 의무보존 기간이 없어, 1주일정도 지나면 새로운 영상이 자동으로 덧씌워지거나 삭제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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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린이집에 설치된 CCTV. 자료사진 |
현장의 시선은 엇갈리고 있다. 서울의 한 요양시설 관계자는 “치매 등 중증 환자들의 자해나 사고 등으로 괜한 오해를 살 바엔 차라리 모두 설치하는 게 낫다”고 말한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시설 종사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것. 또 입소자의 생활 공간까지 공개하는 것은 지나친 사생활 침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복지부 노인정책과 관계자는 “CCTV가 필요할 수는 있지만 만능은 아니다”라며 “어린이집 사례를 드는데, 노인요양시설은 기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일본, 영국 등 대부분 선진국에서도 성인인 입소자들의 사생활 침해를 우려해 이를 법제화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어르신들이 씻고, 옷을 갈아 입는 등 생활시설이란 점을 분명히 고려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국회에서 장기요양시설 내 △CCTV설치 의무화 △60일 이상 영상보관 △목적 외 열람을 제한 등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 법률안이 발의돼 계류 중인데, 이같은 반론에 부딪혀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여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인권침해 우려를 고려해 영상보관과 열람을 엄격히 제한했다”며 “노인학대가 줄지 않는 데다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만큼 (영상을) 잘 관리하는 쪽으로 나가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입소자, 종사자 서로의 안전 위해 최소한은 필요”
일각에서는 꼭 학대문제가 아니더라도 CCTV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시설 내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된 규명이 쉽지 않아서다.
지난 4월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서 70대 노인이 두개골에 금이 간 증상이 나타나고 사흘 뒤 숨졌는데, 중증 치매였던 노인은 생전 자신이 어떻게 다쳤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다른 치매환자와 다툼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CCTV 영상도 없는 데다 가해자로 지목된 환자 역시 치매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경찰로서도 딱히 손 쓸 방법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숭실대 허준수 교수(노인복지학)는 “2008년부터 공동생활가정, 민간요양원 등 민간시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후 정부에서 사실상 시설들을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인권침해적 요소가 분명하지만 종사자와 입소자,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복도나 거실 등 공동공간의 CCTV 설치는 의무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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