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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서양에 ‘백조의 호수’ 동양에 ‘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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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23 00:56:51 수정 : 2017-05-23 01: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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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예술 앞에선 누구나 숙연 / 창작발레 ‘심청’ 새 한류로 부상 / 동양의 ‘효사상·심정문화’ 앙상블 / 세계인에 큰 감동 주며 인정받아 현대를 ‘과학의 시대’라고 말한다면 미래는 ‘예술의 시대’라고 미래학자와 인류학자들은 말한다. 미래문화는 예술의 옷을 입지 않으면 대중을 이끌어갈 수도, 살아남을 수도 없다. 종교와 과학은 싸울 수 있어도 훌륭한 예술 앞에서는 누구나 숙연해지고 평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문화가 근대에서 현대로 옮아가는 중에 가장 괄목하게 민중 혹은 대중 문화예술을 형성하는 지렛대 역할을 한 장르로 판소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본래 열두 바탕(마당)인 판소리는 오늘날 여섯 바탕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타령으로 전한다. 이 중 가장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바탕은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이다. 영화연극을 비롯해서 오페라, 뮤지컬, 발레 등 여기에 신세를 지지 않는 장르가 없다. 이러한 전통의 면면한 흐름 속에 유니버설발레단이 창작발레 ‘심청’으로 문화예술인의 칭송을 받으면서 새로운 한류로 급부상하고 있다.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1986년 초연 이후 그동안 수차례 고치고 보완하여 완성도를 높인 발레 ‘심청’은 발레의 불모지에서 수천억원을 투입한 물심양면의 노력 끝에 건져 올린 ‘연꽃을 타고 솟아오른 심청’과 같은 한국 공연예술계의 쾌거이다. 한국문화의 대표적 상징인 ‘심청’이 서양의 가장 고난도 무용인 발레로 거의 완벽한 성공을 거둔 것은 한국문화의 지평을 넓힌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성공 뒤에 숨은 희생과 땀에 갈채를 보내고 싶다.

심청은 특히 동양의 ‘효(孝)’사상과 가무를 좋아하는 한민족 특유의 ‘심정(心情)문화’가 앙상블을 이루어 세계인에게 한국 혼을 심어줄 작품으로 기대되고 있다. 심청은 ‘효’사상뿐만 아니라 유불선(儒佛仙) 전통 사상이 골고루 스며있어 한국문화의 정수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불교의 보살정신, 샤머니즘의 평화사상이 심층구조를 이루고 있다. 장소적으로도 용궁이라는 바다가 등장하고, 효녀가 자신을 제물로 바쳐 장님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다는 줄거리는 무교의 중심 설화인 바리데기 공주의 ‘딸의 부모구원 사상’과도 연결되는 작품이다.

이제 서양에 ‘백조의 호수’가 있다면 동양에는 ‘심청’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나 싶다. ‘백조의 호수’와 ‘심청’은 여러모로 대조를 이룬다. 백조의 호수가 남녀간의 ‘사랑’을 바탕으로 선과 악의 대립을 그린 가장 서양 기독교적인 것이라면, 심청은 부모와 자식 간의 ‘효’를 바탕으로 딸의 희생과 아버지의 눈뜸을 깨달음으로 승화시킨 가장 동양적인 작품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을 보는 3막 내내 필자는 숨을 멈추고 있었고, 관객도 그러했다. 탄탄한 구성력을 바탕으로 살아있는 무대와 의상, 색채의 조화, 혼을 바쳐 춤추는 무용수의 열연, 총체적인 연출은 한류의 ‘영원한 작품’이 하나 탄생했음을 실감케 했다. 심청은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에 대한 선물임에 틀림없다.

한국발레는 지난 84년 창단된 유니버설발레단에 의해 견인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92년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 예술감독인 올레크 비노그라도프를 초청함으로써 불모지에서 전통을 수립하고, 워싱턴 키로프발레 아카데미 등의 설립을 통해 문훈숙, 강수진 등 세계적인 무용수들을 배출했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 서양 고전발레 작품을 공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창작발레 ‘심청(1986년)’과 ‘춘향(2007년)’을 공연했는데, 특히 ‘심청’은 처음부터 세계무대 진출을 목표로 계속 업그레이드 해왔다.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의 비평을 사로잡았으며, 2001년 뉴욕링컨센터, 워싱턴 케네디센터, LA뮤직센터 등 최고의 극장에서 세계인의 감동과 탄성을 자아냈다. 2011년부터 실시된 월드투어를 통해 ‘심청’은 일본, 대만, 싱가포르, 그리고 중동 오만의 로열오페라하우스 개관 페스티벌에도 초청되어 중동 입성 기록도 세웠다. 심지어 발레의 종주국인 러시아 모스크바와 프랑스 파리에도 초청되어 한국발레 역수출의 성과도 거두었다.

‘심청’은 ‘제3회 예술의전당 예술대상’(2017년 2월 17일)에서 영예의 대상과 공연부문 최우수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문훈숙 단장은 수상소감에서 “‘심청’이 세계인에게 큰 감동을 주며 인정을 받는 이유는 서양문명에서 보기 드문,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과 희생의 관계인 ‘효’를 소재로 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흥부전’을 수년 내에 무대에 올려 ‘판소리 3대 작품’을 발레로 완성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심청=효’ ‘춘향=사랑’에 이어 ‘흥부전=형재애’로 ‘효정(孝情)’의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후천여성시대, 지천(地天)시대를 대표하는 심청은 ‘바다와 여성과 평화’를 풍부하게 상징한다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심청전의 무대는 특히 남북 분단의 경계인 백령도 일대로서 한민족이 하나 되게 하는 심정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되는 바가 더 크다. 유니버설발레단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문화재단의 리틀엔젤스는 지난 98년 순수 민간단체로는 처음 평양공연을 함으로써 남북교류의 장을 연 바 있다.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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