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때 서영제 발탁과 닮아
조직 수호·정권 호위무사 나설지
국민을 위한 검사로 남을지 주목 시계를 거꾸로 돌려 14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지금 검찰의 모습이 노무현정부가 출범한 2003년과 똑 닮아서다.
서울중앙지검 제59대 검사장 윤석열 발탁만큼 파격적이진 않으나 노무현정부가 첫 중앙지검장에 서영제를 기용한 것도 ‘깜짝 인사’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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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사회부 차장 |
호사가들은 새 정부의 검찰 길들이기 일환으로 여겼다.
전 정권에서 잘나간 속칭 ‘정치검사’를 하나둘 제치다 보니 의외의 인물이 어부지리를 봤다는 것이다. 서영제 본인도 2015년 펴낸 회고록 ‘누구를 위한 검사인가’에서 “어떤 연유로 중앙지검장에 발탁됐는지 모른다”고 털어놨다.
그가 검사장 취임사에서 “참여검찰이 되자”고 말한 것은 논란을 일으켰다. ‘검찰마저 노무현의 참여정부 구호에 아첨하고 나섰다’는 악평이 쏟아졌다. 서영제는 이를 악물었다.
“중앙지검장에 임명되고 나서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검찰의 의연한 모습이었다. 안방에서 귀여움을 받는 반려견이 아니라 황야에서 부르짖는 늑대의 근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중앙지검장이 내 검찰 경력에서 마지막 보직이라는 결연한 마음가짐을 가졌다.”(‘누구를 위한 검사인가’ 중에서)
서영제호 중앙지검은 굿모닝시티 뇌물수수 사건으로 집권당 대표 정대철을 구속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대통령과 법무장관의 선처 요구를 묵살하고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감옥에 보냈다. 대통령의 형 노건평은 대우건설 사장에게 인사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 재판에 넘겨겼다. 이는 훗날 노무현이 국회 탄핵을 당하는 빌미가 됐다. 청와대에서 ‘요즘 검찰이 간덩이가 부었다’는 말이 나왔다.
노무현정부 검찰의 신데렐라로 통한 그였으나 중앙지검장을 마친 뒤 행보는 화려하지 못했다.
정권 실세를 기소하고 국보법을 엄격히 적용한 데 대한 서운함의 표시였을까. 2004년 인사에서 서영제는 대전고검장으로 갔다. 사법연수원 후배인 정상명, 안대희가 대전보다 큰 대구·부산고검장에 각각 임명됐다.
중앙지검장 인사관행도 예전으로 회귀했다.
서영제 이후 부산고 졸업생 이종백, 임채진, 안영욱이 3연속 중앙지검장을 석권했다. 노무현정부와 코드가 맞는 PK(부산·경남) 검사들 전성시대였다.
2005년 후배가 검찰총장에 오르자 당시 대구고검장이던 서영제는 “수사는 검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하는 것이고, 사람을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사실을 수사했을 뿐”이란 뼈 있는 퇴임사를 남긴 채 28년 검사 생활을 접었다.
현재 윤석열이 처한 환경은 녹록지 않다.
총장보다 먼저 정해지고 임명 사실도 청와대에서 직접 발표한 그가 검찰 선배들은 몹시 부담스러울 것이다. 앞으로 누가 총장이 되든 ‘문재인정부 검찰의 진짜 실세는 윤석열’이라는 입방아에 시달릴지 모른다. 마침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박형철은 과거 윤석열과 한솥밥을 먹었다. 중앙지검장이 총장을 제치고 청와대와 ‘직거래’를 한다는 오해를 사기 쉬운 구조다.
“(중앙지검장 시절) 청와대 고위간부로부터 한번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필하는 핵심 정치인을 만난다는 게 피차 이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만나기를 원한다면 대통령 재가를 받아오라’는 뜻을 그쪽에 전달했다. 그분은 두 번 다시 전화를 하지 않았다.”(‘누구를 위한 검사인가’ 중에서)
22일 윤석열호 중앙지검이 닻을 올린다.
검찰개혁의 폭풍 속에 차가운 파도가 뱃머리를 흥건히 적시는 험악한 여건이다. 검찰조직의 기득권 수호에 충실한 그저 그런 ‘엘리트 검사’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대통령과 정권의 안녕을 우선시하는 ‘호위무사’로 나설 것인가. 그도 아니면 오직 국민만 바라보는, 국민을 위한 검사로 기록될 것인가. 윤석열이 답할 차례다.
김태훈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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