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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인생의 파도 몰아쳤을 때도 바다는 말없이 품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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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01 21:01:35 수정 : 2017-05-01 21: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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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의 특별전 김영재 사진작가 비바람이 치거나 폭설이 내리면 그는 바닷가를 찾는다. 폭풍에 바닷물이 뒤집히는 기세가 좋고, 눈 쌓인 해변에 찰랑거리는 고요가 맘에 들어서다, 한 기업을 일구면서 살아온 부침의 세월도 그랬다. 카메라를 손에 쥐면서 파도처럼 살았다. 사진작가이자 토털인테리어 건축자재 생산기업 세한프레시젼 김영재(71) 회장에게 카메라는 인생의 파도를 견디게 해준 반려자 같은 존재다. 고비마다 카메라는 위안이 돼 주었다. 카메라를 들고 바다로 향하면 모든 시름이 물거품처럼 꺼진다. 사업이 벼랑 끝에 섰을 때도 카메라를 들고 나서면 모든 것들이 거짓말처럼 정리가 됐다. 활로를 모색하는 아이템들이 렌즈에 이슬 맺히듯 그에게 다가왔다. 한 템포가 그에게 허락되는 시간이었다. 일과 사진은 더 이상 둘이 아니었다. 사진은 그의 삶과 사업에 조미료 같은 구실을 한 셈이다. 그렇게 사진가로 살아온 시간이 그를 세계로 불러냈다. 오는 13일부터 11월 26일까지 이탈리아 베네치아 팔라초 모라와 팔라초 벰보 두 곳에서 열리는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의 특별전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국가관 전시와는 별도로 비엔날레 기간에 베네치아 시내에서 열렸다. 유러피안컬처센터 등이 지원하는 이번 특별전엔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연령대의 세계 각국 작가들이 시간, 공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 작품들이 초대를 받았다.

“바다만 주제로 삼아 작업한 지도 벌써 1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번 출품작은 3m 크기의 대작입니다. 인공구조물이 있는 바다 풍경이지요.”

바다는 그에게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푸르고 아름다운 바다, 감당할 수 없이 성난 바다, 만선의 풍요로운 바다 등 변화무쌍하다.


제 57회 베니스비엔날레의 특별전에 초대받은 김영재 사진작가
“바다는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지만, 제가 만난 바다는 인간의 노동으로 일궈낸 구조물(김 양식장 등)의 조형미가 어우러진 바다입니다. 끝없이 바다에 박힌 말뚝은 대를 이어 일군 삶의 텃밭이자 바다 위에 그린 숭고한 그림이었습니다.”

다양한 바다의 모습은 그에 의해서 단순화되고 정제됐다. 세월과 바다의 공간이 주는 존재감이다. 그동안 그는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의 전시에서 흑백의 한국 바다풍경을 보여주었다. 검은색에서 백색으로 가는 스펙트럼이다. 모든 색을 다 써서 극에 달할 때 흰색이 된다. 바로 조선백자의 모습이다. 광대무변의 색이다. 그의 흑백사진의 포인트다.

“흑백사진은 궁극적으로 흰색으로 향하는 여정이지요. 기쁨도 슬픔도 경계 없이 서로 녹아들어 하나가 되는 세계지요.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펼쳐져 광활한 바다에 이르면 너와 나의 구별조차 없어지는 세계죠. 그런 경지로 이끄는 것이 흑백사진의 미덕이라 생각합니다.”

그의 흑백사진의 또 다른 축은 검은색이다. 물론 흰색을 머금은 블랙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 틴토레토는 색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은 검은색이라 했어요. 제가 흑백사진을 찍으면서 공감하게 된 말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검은색은 색이 아니라고 정의했지만, 그의 팔레트에는 늘 검은색 안료가 있었고 작품 배경 대부분을 검은색으로 채웠지요. 검은색은 다른 색을 제대로 드러내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삶에서도 고통이 있어야 인생의 맛이 드러나는 이치라 할 수 있지요.”


베니스 전시에 출품되는 3m 대작 ‘오후의 휴식’. 이 작품은 인간의 노동으로 일궈낸 김양식장의 조형미가 어우러진 바다를 표현했다.
그의 사진은 검은색 위에 입혀진 흰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련된 옷과 남편의 여읜 여인의 상복이 검은색인 것처럼 블랙은 정반대의 극단도 소화해 내는 색이다.

“사실 우리가 검은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검은 물체에서 나오는 매우 적지만 하얀빛이 있기에 가능하지요.”

블랙은 인류사에서 금기의 대상이자 욕망의 최상으로 역할을 해왔다. 고급 디자인으로 검은색이 환영받는 이유다. 그는 자신의 회사 생산품인 도어핸들과 알루미늄 프레임도어 디자인 색상 결정에 사진작업으로 터득한 감각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디자이너 사진작가라 할 수 있다.

“삶과 예술이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예술은 삶의 의미, 행복이 뭔지 진지하게 통찰케 해주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으로 사진도 찍고 사업을 하니 제 자신부터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 같아요.”

조용히 그가 지난 세월을 회고해 본다. 길은 끝이 없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 길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왔다. 인생, 그 역시 끝을 알 수 없는 길이 아니던가.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어 생각해 보니 그래도 참 열심히도 살아왔다. 젊디젊은 나이에 홀로 상경하여 맨손으로 이룬 사업의 울타리도 이젠 웬만하다. 이것저것 잡기를 다루다 만난 카메라는 인생길에 둘도 없는 동무가 되어 주었다. 산으로 들로 다니며 찍어댄 사진이 ‘장터’라는 소박하고 정겨운 친구도 만나게 해주었다. 그렇게 어언 40여년의 세월이 바람처럼 불어갔다.

“동해안 7번 국도를 오르내리며 만난 또 다른 친구가 ‘바다’였습니다. 화도 잘 내고 성격도 별스러운 그를 내 친구로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다가갔습니다. 태풍 몰아치던 날, 폭설이 휘몰아치던 날, 칠흑같이 깜깜한 밤에도 나의 구애는 계속되었지요.”

어느 날부터인가 그 괴팍하기만 하던 친구는 끊임없이 구애하는 그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했다. 가끔은 좋은 선물을 하나씩 던져 주기도 했다. 이번 베니스 출품작도 그렇게 받은 선물이다.

“이제야 비로소 저는 바다 친구를 잘 이해하고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친구가 된 느낌입니다.”

그가 사진을 하며 카메라의 인연으로 만난 많은 친구가 있다. 산과 들이 있었고 정겨운 장터도 살가운 그의 친구다.

“한 길로 끝없이 달려온 길, 이제 그 길을 또 다른 세상으로 향해 보려 합니다.”

그는 쿠바 등 중남미를 넘어 동남아시아 오지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려 한다. 전시도 지난해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에 이어 베네치아까지 자연스레 이어지고 있다.

“수년 전 쿠바에서 황톳길에 달려가는 마구차를 바라보면서 한참을 넋이 나간 적이 있습니다. 저에게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손짓하는 그 무언가에 빠져들었지요. 저도 모르게 마구차를 향해 마구 달려갔습니다. 존재 너머의 세계를 넌지시 보여주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한적한 어촌에 머물며 사진을 헌팅하기도 했다. 원시밀림의 산을 넘어야 접근할 수 있는 오지였다.

“나이브한 자연이 있는 곳이지요. 언어 이전의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었습니다. 자연과의 진정한 마주함이었지요. 아마도 인간은 언어가 없던 시절엔 자연과 대화가 가능했다고 봅니다. 휴대폰이 생기면서 집 전화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퇴화된 모습을 보면 짐작이 갑니다.”

그는 언어 이전 시대의 풍경을 담으려 한다. 적막한 풍경에서, 비바람이 거센 바다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다.

“지금껏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달려오며 때론 외로움과 사투를 벌어야 했습니다. 온갖 희로애락의 감정이 버무려지면서 블랙아웃이 되기도 했지요. 그 끝에 늘 사진이 있어주었습니다.”

백자 달항아리에 그가 얼굴을 비춰 본다. 흡사 한밤에 중천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긴 모습이다. 동화책을 읽는 어린아이처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빠져든 얼굴이다.

그는 모든 색이 빛으로 환원되는, 존재의 세계가 열리는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그러곤 환하게 웃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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