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일명 ‘아이돌 덕후(마니아)’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그는 퇴근 뒤 혹은 주말이면 남자 아이돌 그룹 엑소(EXO)를 쫓아다닌다. 콘서트부터 팬미팅 등 각종 공개 행사는 모두 챙긴다. 좋아하는 멤버의 개인사도 줄줄이 꿰고 있다. 그는 엑소 관련 얘기를 잘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한 번 말문이 트이니 에피소드가 줄을 이었다. 그가 엑소를 따라다닌 지는 4년이 넘었다. 취업 준비 중이던 2013년 어느날 우연히 엑소 노래를 들었는데 멜로디가 마음에 들어 뮤직비디오를 찾아봤다. 자연스레 팬이 됐고 콘서트에 한두 번 다녔다. 현장에서 추억을 남기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덕후 생활이 어느새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그가 메고 온 가방은 겉보기에도 묵직했다. 열어보니 간이 의자, 고급 카메라와 렌즈 등이 나왔다. 이날은 없었으나 종종 4단 사다리를 들고 다닌다고 했다. 요즘은 차를 사 트렁크에 넣고 다니지만 뚜벅이 시절에는 사다리를 들고 지하철을 탔다. 그는 콘서트마다 엑소가 잘 보이는 자리를 선점해 다양한 사진을 찍고 트위터에 올린다. 지난해에는 찍은 사진을 모아서 전시회도 열었다. 독특한 사진을 모아 컵이나 부채를 만들어 다른 팬들에게 판다. 수익금으로 멤버 생일날 지하철이나 버스에 광고를 하거나 선물을 전달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주변에 이런 활동을 철저히 비공개한다. 당일치기로 해외에 자주 나갔다 오는데 엑소만 보고 돌아왔다고 하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기 때문이다. “그 나이 들어서도 연예인을 따라다니냐”는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이들을 위축시킨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들만의 용어로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를 한다. 겉으로는 다른 사람들처럼 연예인에 관심없는 척한다는 뜻이다.
최형창 기자 |
최형창 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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