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그 질서 안에 가두지 않았던 영국
한발 떨어져 실리 최대한 챙기는 전통 견지
지난 1000년 영국과 유럽 갈등·협력 역사 추적

유럽 대륙이 전화에 휩싸이면 영국은 예외 없이 전쟁에 뛰어들어 판도를 결정짓곤 했다. 영국은 자국 뜻대로 유럽의 질서를 바로잡곤 했지만, 그 질서 안에 자신을 가두지는 않았다. 화폐만 해도 독자적이다. 유로존 국가들이 사용하는 유로화가 아닌 파운드화를 사용하고 있다. 대륙에서 한발 떨어져 섬나라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전통적인 정책 때문이다. 유럽 입장에서는 이기적 행동으로 비쳤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선택한 것도 예외적인 국외자로 남겠다는 종래의 전통 때문이었다. 궁금한 것은 전쟁 시기도 아닌 지금 고립주의 카드를 꺼내든 배경이다. 갖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유럽 대륙의 향후 상황 전개에 비춰 볼 때 지금 나가는게 이익이라는 판단이 주효했다.
이 같은 영국의 자국 이기주의의 배경은 무엇이고, 왜 생겼을까. 현재 유럽연합(EU)은 범위를 확장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애초 영국은 EU 확대를 원치 않았다. 영국의 반대에도 EU는 동유럽으로 확장해 나갔고, 군사기구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또한 과거 동유럽 블록을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유럽 전체를 하나로 통합해 나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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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브렉시트야말로 전 세계를 집어삼킬 고립주의 열풍의 시발점”이라고 단언한다. 영국과 미국이 주도한 자국 우선 고립주의는 보호무역주의로 이어질 게 분명해 보인다. |
영국은 과거에도 역선택을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19에서 20세기 중반까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만큼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리며 국제경찰 역할을 했다. 그러나 2차 대전 종전 이후 태도를 바꿨다. 국력의 쇠락도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냉전으로 늘어나는 군사비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국제경찰’ 역할을 미국에 맡기고 한발 물러섰다. 자유 진영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국 이익을 선택했다.
EU의 전신인 EEC(유럽경제공동체) 가입도 손익 계산 끝에 거의 막판에 합류한 전력이 있다. 물론 프랑스의 반발로 늦어진 점이 없지 않다.
이런 전력에 비춰 볼 때 영국의 브렉시트는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전면에 나서 힘에 부친다는 판단이 서면 뒤로 빠지곤 했다. 공동의 이익보다는 한발 물러서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유럽 확대에 따른 갈등 확산과 자주권 훼손 등 불이익이 더 많다고 봤다.
문제는 브렉시트가 영국과 EU만의 쟁점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전 세계 고립주의의 확산을 부채질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고립주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는 국익 최우선으로 고립주의를 앞세운다. 되도록 국제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전 세계로 확산할 것이다.
영국이 빠진 EU에서 그런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선을 앞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에선 자국 우선주의 또는 고립 정책을 내세운 후보자들이 득세하고 있다. EU 자체가 해체되거나 연대가 느슨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저자는 “브렉시트야말로 전 세계를 집어삼킬 고립주의 열풍의 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단언한다.
영국과 미국이 주도한 자국 우선 고립주의는 보호무역주의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이미 트럼프 정부는 무역장벽을 강화하고 있다. 앞서 2000년대 들어 세계 각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국만 해도 FTA 체결 국가나 경제협력을 맺은 나라는 실로 다양하다. 21세기는 그야말로 자유무역의 세기라고 점쳐온 점에 미뤄 볼 때 영·미의 독자노선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영국이 왜 브렉시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면서 향후 전망을 우려하고 있다. 국제무역에 사활을 걸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적지않다. 지금 추세는 진영논리인 좌파냐 우파냐 또는 진보냐 보수냐의 개념을 뛰어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유민주주의가 만든 시스템은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근대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영국과 미국 두 나라가 자유민주주의를 정말로 포기했는지는 두고볼 일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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