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아찔한 풍경은 특정 대학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음주로 인한 성추행과 폭행, 안전사고 등은 OT 때마다 불거지는 연례행사라는 지적을 받습니다. 물론 이는 특정 학생만의 잘못이 아니고, 이를 사전에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대학들의 책임도 큽니다.
OT는 학교생활의 기초 정보를 제공하고, 선·후배 간 소통의 장을 마련해준다는 측면에서 순기능도 있습니다. 하지만 OT가 흥청망청 술판으로 전락하고, 성희롱과 성추행의 경연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술이 '젊음의 패기'라는 것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술을 강요하는 일은 낯선 환경과 조우하는 신입생들을 향한 일종의 폭력입니다.
일각에서는 OT 자체를 아예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학교 안에서도 충분히 진행할 수 있는 OT를 굳이 지금처럼 외부에서 할 필요가 있냐는 지적입니다. 최근 일부 대학들은 '음주 없는 OT'라는 기치를 내세우면서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이제 OT 문화도 바꿔나가야 합니다. 기존 폭음과 추태로 얼룩진 OT가 아니라 새내기들의 진정한 배움터가 될 수 있도록 정부와 대학, 학생 모두 합심해 성숙한 문화를 가꿔나가야 할 때입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 업체가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건전 음주 캠페인’을 펼쳐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해마다 3월이 되면 각 대학에서는 OT가 열리는데, 이에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음주로 인한 안전사고와 성추행, 폭행 등은 OT 때마다 터져 나오는 '단골 메뉴'다.
지난달 22일 강원 고성의 한 콘도에서는 OT에 참가한 수도권 모 대학 신입생이 만취 상태에서 손가락 3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날 새벽까지 술을 마신 뒤 만취 생태로 엘리베이터 기계실에 올라갔다 화를 당한 것이다.
지난해 2월 서울의 한 대학은 학교 외부에서 진행하는 신입생 OT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대학 밖에서 치러진 OT 때 상급생들이 성추행 소지가 큰 게임을 신입생들에게 강요했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심사숙고 끝에 내놓은 방침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를 비웃기라도 하듯 올해는 학교 내 OT 준비 과정에서 성추행 의혹이 불거져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OT를 기획하는 회의를 마친 뒤 술자리에서 대학 2학년생이 동급생을 성추행했다는 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뜨자 대학 측은 OT 일정을 아예 취소하고 이번 사건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지난해 3월에는 대전의 한 대학 신입생이 OT에서 술을 마신 뒤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음주 폐해에 대한 인식 저조…한번의 폭음으로도 치명적인 손상 입을 수 있어
전문가들은 이처럼 새학기마다 음주로 인해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는 것과 관련해 그 폐해에 대한 인식이 우리 사회에는 일천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몸은 단 한번의 폭음으로도 매우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게 전문가들의 우려이다.
특히 췌장 세포는 알코올에 유난히 취약한데, 한번의 폭음으로도 췌장염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 결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음주 여파에 따른 즉각적인 손상은 우리 뇌에서도 발생한다. 흔히 '필름이 끊긴다'고 이르는 현상인 '블랙아웃'이 일어나면 평소 자신이 억제하고 있었던 공격적인 성향이나 분도 등이 표출돼 예상치 못했던 행동을 저지르는 일도 있다.
이런 현상이 장기 거듭되면 알코올성 치매를 야기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주문이다.
◆대학생 10명중 7명 "학내 음주문화 문제 있다"…무질서한 캠퍼스 음주환경 자성의 목소리
그렇다면 대학생들은 학내 음주문화에 대해 어떤 인식을 보였을까.
세계적인 고급 주류기업 디아지오코리아가 전국 대학생 2400명을 대상으로 ‘2017 캠퍼스 음주 문화 실태’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0.5%가 문제를 제기하고, 무질서한 음주 환경을 반성하는 목소리를 냈다.
신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OT나 동아리 행사 등에서 불건전한 음주 문화로 몸살을 앓는 대학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해마다 대학생들의 음주 관련 악습이 반복해 불거지면서 이를 근절하고자 대학마다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 캠퍼스 내 음주 문화 개선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실제 대한보건협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최근 10년간 새학기 음주 관련 사고로 목숨을 잃은 대학생은 23명에 이른다.
이번 설문조사는 학생들의 문제 인식 대비 자발적인 개선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도 보여준다. 캠퍼스 음주 문화의 문제를 제기한 1692명의 응답자 가운데 ‘적극 바꾸고 싶다’며 개선 의지를 뚜렷이 밝힌 대학생은 20.3%에 그쳤으며, 33.5%는 '잘못된 음주 습관을 바꿀 생각은 있지만 실행이 어렵다'고 응답했다.
이에 반해 40.9%는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다'고 답했고, 5.3%는 ‘잘못된 것은 알지만 바꿀 생각이 없다”고 밝혀 전체의 46%가량은 능동적인 개선 의지가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건전한 음주문화 교육 필요성 ↑…관련 인프라 '태부족'
이들 대학생은 음주 문화 개선이 어려운 이유로 주로 외부 환경적인 요인을 꼽았다. 캠퍼스 음주 문화의 문제를 제기한 1692명의 응답자 중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 때문에 음주 습관의 개선이 어렵다'고 응답한 이는 35.8%로 가장 많았으며, 술과 관련된 실수에 관대한 문화를 꼽은 비율이 14.5%로 뒤를 이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 따르면 '나로서기'(나로서+홀로서기)가 20대의 대표적 키워드로 꼽힐 정도로 개인 의견을 적극 드러내는 세대임에도 여전히 술과 관련해서는 주변의 관계나 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 박진수 소장은 "'나로서기'가 올해 20대 마이크로트렌드(특정 집단에서만 발생하는 트렌드)의 대표적 키워드로 꼽힐 정도로, 내게 주는 효용을 중심으로 나에게 집중하는 세대지만, 여전히 음주와 관련해서는 주변 동료·그룹과의 관계나 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김모(24)씨는 “음주를 즐기는 자리의 규모가 커지면서 불편한 문화로 변질되는 것은 시류를 거스르는 악습”이라며 “술을 강요하는 윗사람의 문화는 점차 아래로 답습되기 때문에 윗사람부터 바뀌어야 근본적 변화가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모(22·여)씨도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부정확한 술자리 상식보다 음주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며 "각 미디어에서 실태만 고발할 게 아니라, 건전한 음주 문화 정착을 위한 구체적인 방향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조길수 디아지오코리아 대표는 "대부분의 학생이 건전한 음주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관련 인프라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라며 "우리는 앞으로도 '쿨드링커 캠페인'을 중심으로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의 건전한 주류 문화를 조성하는 등 '기업시민'으로서 책무를 충실하게 수행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美 대학교 1학년부터 음주교육 의무적으로 수강…교내·외 바람직한 음주문화 교육·정책 필요
선진국에 비해 관대한 술문화도 문제로 지적된다.
미국에서 유학을 경험한 직장인 백모(27·여)씨는 "미국에서는 21세가 되어서야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다"며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식적인 행사에 주류 반입 자체가 힘들고, (유학 시절) 대학교 1학년 때 안전음주교육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했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고교를 갓 졸업한 새내기들을 데리고 공식적인 술자리를 많이 갖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음주를 부추기는 느낌이 드는 이러한 행위가 옳은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백씨는 또 "음주교육이 수반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까지 든다"며 "대학 신입생에 대한 제대로 된 음주문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문형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학생도 스스로 음주 문화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상황"이라며 "성인으로서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사회생활의 준비를 하는 중요한 시기임을 고려해 각 대학의 운영주체를 비롯한 관련 단체와 기업들이 적극 나서 대학생들의 바람직한 음주문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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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경북의 한 대학 학생회관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쓰일 소주와 맥주 등을 담은 상자가 가득 쌓여 있다. |
앞서 한 대학생의 제언처럼 언론에서도 실태 고발은 물론이고 구체적인 방향 설정을 통해 사회 전반적으로 음주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가는 풍토를 조성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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