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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해요"… 방학 빼앗긴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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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24 21:04:53 수정 : 2017-02-24 21: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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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시간에 쫓기고 부모들은 교육비에 신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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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안에 다 먹어야 해요. 학원에 지각하면 학원에서 엄마한테 문자를 보내거든요.”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한 편의점에서 만난 ‘예비 고등학생’ 김영진(16)군은 초조하게 시계를 보며 컵라면 면발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삼각 김밥은 먹을 시간이 없어 코트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김군은 뜨거운 라면 국물을 연신 후후 불어대며 “그냥 빵을 먹을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김군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간다. 밥 한 끼를 제대로 먹을 시간도 없다. 아침 일찍 영어 학원을 시작으로 수학·과학 학원에서 공부하다 보면 어느덧 깜깜한 밤이 된다. 김군은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집에 못 간 적도 많다”며 “중간에 잠깐 쉬는 시간에는 비어 있는 강의실에서 간식을 먹거나 다음에 갈 학원 숙제를 한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는 김군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사교육 열기가 뜨거운 서울 강남·양천 일대에선 ‘방학’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건물 앞에 노란 학원 버스가 줄지어 서 있고, 식당과 편의점은 끼니를 때우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특히 상급학교 진학을 앞둔 ‘예비 중·고등학생’들은 어느 때보다 힘겨운 방학을 보내고 있다. 입학 전 겨울 방학이 향후 3년간 학교 생활을 결정한다는 말에 선행학습을 받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수능을 비롯한 각종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으려면 선행 학습이 필수라는 생각이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 굳어지면서다.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방학 동안만이라도 놀고 쉬며 진로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같은 초·중·고등학생의 높은 사교육 참여율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21일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국 사교육 참여율은 68.8%를 기록했다. 학생별로는 초등학생이 80.7%로 가장 많았고, △중학생 69.4%, △고등학생 50.2% 순이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유모(16)양은 “학원에 쫓겨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고 털어놨다. 유양은 빽빽하게 찬 학원 스케줄을 하루도 빠짐없이 소화하고 있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다. 토요일에는 국어 학원, 일요일에는 논술 학원에 간다. 유양은 “차라리 방학이 끝났으면 좋겠다”며 “방학보다 학교를 다니는 때가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했다.

이과에 진학할 예정인 유양은 걱정이 많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 과정 수학을 이미 끝낸 친구들이 꽤 있다는 것.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으려면 남들보다 한발 앞서 진도를 끝내고 심화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자신은 한참 늦었다는 설명이다.

‘예비 중학생’에게도 방학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양천구 목동에 사는 최모(13)군은 수학·영어 학원은 물론, 체육 등 예체능 과목도 사교육을 받고 있다. 최군의 목표는 자립형 사립고(자사고) 진학이다. 그는 “특목고에 진학하려면 중학교 내신 성적부터 챙겨야 한다”며 “평균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는 방학 때 예체능 과목도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학생들이 학원 수업에 쫓기며 사는 동안,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부담에 신음하고 있다.

예비 고등학생 자녀를 둔 이모(47·여)씨는 “겨울 방학 동안 학원비가 학기 중에 비해 2배로 들어간다”며 “방학 때 고등학교 과정을 훑으려면 200만원이 넘는 것은 기본”이라고 했다. 이씨는 “그렇다고 학원에 보내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강남 일대에서는 생활비를 은행 대출로 부담하면서까지 한 달에 400만~500만원을 자녀 사교육비에 지출하는 가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교육 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문은옥 연구위원은 “인생의 성공 기준으로 학벌이 꼽히면서 사교육 시장이 과열되고 있다”며 “학부모와 아이들 모두 성적에만 매달리다 보니 학습의 의미, 자신의 꿈과 같은 중요한 것을 생각할 틈이 없다”고 진단했다.

성균관대 구정우(사회학) 교수도 “인적 자원을 중요시하다 보니 사교육에 대한 집착이 커지고 사교육업계 시장이 발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유엔 아동권리협약(CRC)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아이들의 놀 권리·쉴 권리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며 “학생들이 방학을 인성 개발과 휴식을 취하는 데 보내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becreative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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