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종현의 아메리카 인사이드] 트럼프와 독서, TV 시청, 그리고 트위터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박종현의 아메리카 인사이드

입력 : 2017-02-14 11:20:43 수정 : 2017-02-14 11:20:43

인쇄 메일 url 공유 - +

.
미국 백악관은 구중궁궐이 아니다. 워싱턴DC 도심 빌딩 사이에 자리해 대중에게 노출돼 있다. 대통령과 시민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감이 크지 않다. 시장방문 등 민생탐방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를 그려내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대통령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인다. 미국 대통령은 스스럼없이 골프를 치기도 하고,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공식 업무가 없을 때에는 책을 펴들고 사색의 시간도 가진다. 이는 역대 미국 대통령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지난 1월 퇴임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기 막판까지 보여준 모습이 이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그럴까. 지금까지 드러난 모습으로는 ‘그렇지 않다’에 무게중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간이 나면 독서를 하기보다는 TV를 시청하거나 트위터에 글을 남기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다. 다수의 정치평론가와 언론이 그리 전하고 있다. TV 시청, 독서를 대하는 모습에서 ‘트위터 광’ 트럼프 대통령을 분석해 본다.

① 아침·저녁 개인 일정은? “케이블 TV 시청과 트위터 관리”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백악관 개인 응접실에 평면 TV를 새로 들였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면 MSNBC방송 프로그램 ‘모닝 조’를 시청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침 일찍 시청하는 ‘모닝 조’는 그의 새로운 하루를 알리는 기준이나 마찬가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닝 조’ 외에도 평일엔 폭스뉴스의 ‘폭스와 친구들’을 자주 보고, 일요일엔 NBC방송의 ‘미트 더 프레스’와 CBS방송의 ‘60분’에 채널을 자주 고정한다.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에 대한 충성도가 그만큼 높다.



후보 시절 MSNBC방송 프로그램 ‘모닝 조’에 출연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아침과 저녁에 특정 TV 프로그램을 시청한 뒤에 방송에서 다뤄진 내용에 대해 곧잘 트위터에 올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오전 7시 무렵 트위터에서 “법원이 고장난 동안(2월 3∼11일) 미국에 입국한 난민의 72%가 (입국 금지 대상 국가인) 7개국의 난민이었다”고 주장했다. 글을 올리기 직전인 오전 6시 25분 폭스뉴스에서 소개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주장이었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6일 ‘모닝 조’에서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선임고문을 최고 실세로 언급한 대목이 나오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 프로그램에서 사용한 용어를 사용하며 트위터에서 관련 내용을 반박했다. 오전 7시가 9분 그가 올린 글은 이랬다. “결정권자는 나다. 이는 대체로 축적된 자료에 기반한 것이며 모두가 이를 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처럼 지난달 20일 취임 이후 거의 매일 아침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그가 ‘모닝(아침) 트윗’을 날리지 않은 날은 13일이 취임 이후 처음이었다. TV 시청은 아침은 물론 저녁의 주요 일과로 보인다는 게 뉴욕타임스 등의 보도이다.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와 막내 아들 배런이 뉴욕의 트럼프타워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혼자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TV 시청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는 분석이 많다. 국정방향을 결정해야 할 대통령이 실시간 TV 프로그램을 보고 반응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가 나온다. 실시간 케이블TV 프로그램은 시청률을 높이려면 아무래도 자극적인 경향이 있는데, 이런 프로그램에 노출되다 보면 국정최고 책임자 자신이 즉흥적이고 공격적인 습관에 물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 접근도 단편적이어서, 종합적인 정보 파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② 트럼프 대통령, “독서는 시간 낭비, 보고서는 요약본 위주로”

이번에는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Axios)에 보도된 내용을 보자. 잠시 사족 하나. 이 매체는 지난 2월 초 ‘트럼프 효과, 삼성이 미국에 공장 지을 듯’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던 신생 언론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고마워요 삼성!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는 기사를 링크하며 삼성의 미국 투자를 기정사실화하는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악시오스의 보도 내용에 따르면 당선자 시절 그는 뉴욕타임스와 뉴욕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을 자주 들춰보았다고 한다. 물론 대충 주요 기사를 살펴보는 형식으로 신문을 봤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서에 대한 생각은 어떠할까.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창립자 짐 벤더하이와 마이크 알렌이 당선자 신분의 트럼프에게 물었다. 그들은 트럼프에게 어떤 책들을 읽고 있는지를 묻고,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트럼프가 책을 추천하지 않자, 이번에는 특정 도서를 가리키며 질문했다. 이들은 웨스트조지아대 명예교수인 존 펄링의 저서 ‘아담스와 제퍼슨’을 가리키며 물었다. 대화 진행은 이랬다. “추천할 만한 책인가.→아니, 추천하지 않겠다.” 추천도서를 말해달라고 계속 부탁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추천할 만한 책이 있나→책은 많다. 난 책 읽기 좋아하는데 요즘엔 시간이 없다. ‘CNN 북(book)’에서 나온 책들도 있다.” 그가 말한 책은 CNN방송이 지난해 대선과정을 개괄적으로 정리한 책 ‘전례없는 일, 모든 것을 바꾼 선거’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때 성경을 최고의 책으로 꼽았지만, 일반적인 양서를 추천하지는 못한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추천한 책이 ‘트럼피즘’에 대한 책이라는 점이다. 아웃사이더 후보였던 트럼프의 등장과 당선을 주요 내용으로 해서 사실상 자신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을 추천한 것이다.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거짓 언론’이라고 비난했던 CNN에서 출간한 책을 읽고 있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나마 그는 트위터에서 곧잘 자랑했던 자신의 저서 ‘거래의 기술’도 추천하지 않기는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되기 전이나 대선출마를 선언하기 전에도 독서를 좋아한 것 같지는 않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7월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의 자서전이나 평전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가 접하는 인쇄매체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잡지와 비서진이 스크랩한 대선 관련 기사가 전부였다는 게 신문의 보도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풍부한 자료를 접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그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트럼프가 후보 시절 정유업체 관계자들을 만났을 때이다. 한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중국의 경제적인 위협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냈던 때를 회고한 그의 발언은 이랬다.“그 기업인이 내게 보고서를 제출한다고 했던 적이 있다, 100쪽 정도 되는 보고서를 준다고 하더라. 내가 말했다. 긴 보고서를 말고, 내 편의 좀 봐달라고. 3쪽 자리 요약본을 달라고 했다.” 자료 파악에 들어가는 시간은 낭비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한 발언이었다. 그는 “나는 매우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대선 이후 자신에 관한 책 4종이 출간됐을 때에도 트럼프는 그런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③전직 대통령들과 비교하면 지적 호기심도 약해

그렇다면 저술 활동은 어때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거래의 기술’ 등 여러 권의 책을 내놓았다. 바쁜 그가 직접 저술하지는 않았어도 구술은 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추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책들은 대체로 ‘백만장자처럼 생각하라’거나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나’에 방점을 두고 있다.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그가 내놓을 책은 어떤 내용을 담을지도 궁금하다. 아마도 세계와 상대했던 경험을 녹여 ‘거래의 기술’을 개정하거나 ‘거래의 기술’ 버전 2.0 정도의 책도 출간이 가능할 것이다.



그는 대통령 취임식을 하루 앞둔 지난달 19일 트위터에 “내 겨울 백악관인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트럼프 소유의 리조트) ‘마라라고’에서 취임연설문을 쓰고 있다. 3주 전부터. 금요일(1월 20일)에 보자”고 밝혔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사를 대부분 작성했다고 밝혔지만, 언론은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선임고문이 연설문의 상당 부문을 담당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나는 상식을 지녔고, 기업 경영 능력으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그러면서 “그들(전문가들)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며 전문가들의 식견마저 부정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일부 전직 대통령은 학문적 성향도 보였다.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은 뉴저지 주지사로 당선되기 전에 프린스턴대 총장이었으며, 드와이트 아이젠아워 전 대통령은 콜롬비아대 총장이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외교정책에 관한 글을 썼으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시카고대에서 법학을 가르쳤다. 학문적 취향이 대통령직 수행 성공 여부와 비례관계는 아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사고방식은 학문적 취향이 도드라졌던 이들과 차이가 난다.

복잡한 이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판단은 대통령의 기본 자질의 하나이다. 독서가 정책 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상식이다. 대통령학 권위자인 데이비드 그린버그 럿거스대 교수는 정책 결정과 관련해서, 역대 미국 대통령을 두 부류로 나눈다. 그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조지 HW 부시, 지미 카터,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정책적인 결정을 내리기 전에 광범위한 자료를 섭렵하는 부류에 포함된다. 반면 조지 W 부시, 로널드 레이건, 드와이트 아이젠아워 전 대통령은 구두보고와 짧은 메모를 통한 이슈 파악을 선호했다. 아메리카대학의 알랜 니히트만 교수는 “린든 존슨과 워런 하딩 전 대통령은 전문가들을 아예 비웃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정도가 심하다”며 “그는 역사적인 기준점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아마 특정 이슈에 대해 그가 이리저리 변하는 것을 지켜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폭넓은 상식과 깊은 사색이 없으면 즉흥적인 반응으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④ 시민단체, “트럼프 대통령, 책 좀 읽으시지.”

워싱턴포스트는 13일 트럼프 대통령이 TV에 몰두하고, 독서를 등한시한다며 재미있는 내용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좌관들은 그가 TV 시청에 빼앗기는 시간을 줄이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그나마 낮 시간에는 효과가 있지만 밤에는 소용이 없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취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 업무를 끝낸 뒤에는 오히려 전화를 끄고 CNN를 시청한다고 전했다. 그가 ‘거짓 뉴스’라고 공박하는 채널의 방송을 시청하는 것이다.

국정현안을 챙기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접하는 것은 필요하다. TV 시청도 방편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이라면 TV 시청보다는 독서나 자신만의 사색의 시간을 더 가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전임자들도 그랬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독서를 즐겼으며, 일부 스포츠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TV는 잘 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도 저녁엔 고전 영화를 감상하거나 휴식을 취했다.

마침 시민단체 ‘책 읽는 사람이 곧 지도자(Readers are Leaders)’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백악관을 책으로 뒤덮자’는 운동을 전개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독서를 통해 건강한 상식과 지식을 쌓으라는 취지의 운동이다. 고대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남긴 말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답을 줄 수 있을까.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

워싱턴=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김민 ‘매력적인 미소’
  • 김민 ‘매력적인 미소’
  • 아린 '상큼 발랄'
  • 강한나 '깜찍한 볼하트'
  • 지수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