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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심리학] ③ 바야흐로 ‘거짓의 시대’…거짓말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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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29 17:14:20 수정 : 2017-01-29 17: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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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시대’ 거짓말의 심리학

“당신은 뚱뚱하고 들창코인데다 두꺼비를 닮아서 키스하고 싶지 않네요”

거짓말이 없는 세상은 평화로울까. 릭키 제바이스 감독·주연의 영화 ‘거짓말의 발명’(2009)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 양로원 직원은 방문객에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노인을 버리러 왔냐”고 묻고, 사람들은 지나가다 본 아기에게 “얼굴이 정말 못생겼네요”라고 악담을 퍼붓는다. 거짓말이 없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거짓말을 하는 주인공 마크 벨리슨이 겪는 일들을 그린 이 영화가 묘한 여운을 남기는 건, 우리가 진실에 목말라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거짓말의 발명' 속 한 장면.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각종 의혹에 대해 “거짓말로 쌓아올린 산”이라고 반박한 박근혜 대통령의 말마따나 바야흐로 ‘거짓의 시대’가 도래한 듯 하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등이 위증 혐의로 검찰에 무더기 고발당하는 등 ‘거짓말’이 연일 화제다. 워낙 거짓말이 넘치다 보니 사람들은 법원과 검찰에서 나오는 수많은 증언들을 귀기울여 듣고 기억해두기도 한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을 가까이 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학계에서는 인간의 언어가 진실이 아닌 거짓말을 하기 위해 발달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또 대개 사람들은 스스로를 진실된 사람이라고 소개하곤 하지만 누구나 일주일에 평균 10번 이상, 1년에 500번 이상 거짓말을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거짓말이 인간의 삶과 밀착해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

인간의 무의식적 반응 등을 연구하는 인지심리학에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때의 징후들을 포착해내는 연구들이 적잖게 이뤄졌다. 인간이 거짓을 지어낼 때 의지와 무관하게 자율신경계가 자극되는데, 이때 변화하는 호흡이나 맥박 등 생체리듬을 주목하면 거짓을 가려낼 수 있단 것이다.

이른바 ‘피노키오 효과(Pinocchio Effect)’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소설 속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지진 않지만, 코를 자꾸 만질 수 있다고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거짓말을 하면 카테콜아민(Catecholamine)이란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로 인해 콧속 조직이 팽창하고 혈압이 상승해 코끝 신경조직이 가려워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르윈스키 스캔들 당시 성추문과 관련 연방 대배심에서 분당 평균 26번이나 코를 만졌다는 기록이 있다.

거짓말 탐지기.
이처럼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무의식적인 반응을 기록하는 ‘폴리그래프’(polygraph)의 일종으로 ‘거짓말 탐지기’가 만들어졌다. 현대적인 의미의 거짓말 탐지기는 ‘찰스 몰턴’이란 필명으로 ‘원더우먼’을 그리기도 한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마스턴이 혈압 변화를 이용해 1915년 처음 고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짓말을 하면 생기는 불안한 심리와 정서가 호흡과 심장박동, 혈압, 안구운동 등 생리적 지표로 나타난다는 접근이다.

진실과 거짓을 명확하게 가려내려는 인간의 의지는 거짓말탐지기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20세기 후반들어서는 자율신경계 뿐만 아니라 뇌활동을 분석해 거짓말을 가려내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는데, 정교해진 거짓말 탐지기는 각종 범죄 수사에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거짓말 탐지기는 2013년 8340건, 2013년 8460건, 2015년 8540건 등 해마다 8000건 이상 수사에 활용됐다.

자기를 속이는 ‘진짜 거짓말’을 하면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에서 극중 인물이 거짓말 탐지기 수사를 받고 있는 모습.
‘자기는 자기를 속일 수 없다’는 믿음은 거짓말 탐지기의 전성시대를 열기도 했다. 2차세계 대전 시기 미국 테네시주의 핵개발 시설에서는 1만8000명의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아야했고, 1980년대 미국에서는 거짓말 탐지 담당하는 5000여명의 기사들이 연간 200만건의 거짓말 검사를 수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대다수 나라에서 거짓말 탐지기는 참고 자료로만 쓰이는 등 증거능력을 쉽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당사자가 ‘거짓말’과 ‘거짓 기억’을 구분해내지 못할 경우 거짓말을 가려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스스로를 속이는 경우’엔 사실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스퍼라자 감독의 영화 ‘서스피션’(1995)에서는 피의자가 연습을 통해 거짓말탐지기를 속이는데 성공하며 무죄판결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이태원 살인사건’의 아더 존 패터슨(37)이 1997년 당시 수사망을 교묘히 빠져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거짓말 탐지기의 역할이 컸다.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중필(당시 22세)씨를 살해한 현장에 있던 에드워드 리와 패터슨은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검찰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진실반응을 보인 패터슨과 달리 거짓반응을 보인 리를 살인죄로 기소한 바 있다.

진실과 거짓이 섞이면

“우리들의 주관적인 차원 저편에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 니체의 말에서 보듯 ‘진실이 손에 닿을 수 있을까’란 의문은 늘 인류를 따라다닌 명제였다. 거짓이 산처럼 쌓이고 있는 시대에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도 ‘진실’에 대한 인류의 오랜 믿음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거짓말에 대한 집요한 탐구는 사실 진실에 대한 탐구를 이르는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거짓말 탐지 수사 베테랑인 필립 휴스턴 등 3인은 저서 ‘거짓말의 심리학’(2012)에서 여러 가지 거짓말 탐지와 관련한 수사 기법을 소개했다. 특히 ‘진실이 거짓을 은폐하는 역설’에 주목할 것을 강조했는데, 대개 거짓말을 하는 경우 완벽하게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내기보다는 적당한 진실을 말하면서 거짓을 숨긴다는 것이다. 또 문제시되는 사안과는 상관없는 진실들을 내뱉는 점도 꼬집는다. 거짓을 숨기기 위해 진실을 털어놓는 것만큼 좋은 가면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진실은 가려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집요하게 파고든다면 ‘거짓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라며 “작정하고 속이는 사람도 분명 가려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짓을 저지른 사람들을 접하면서도 절망하거나 침울해하지 않는 이유는 (…) 인간의 나쁜 모습보다 좋은 모습을 더 많이 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진실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거짓을 가려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단 의미일 수 있다. 그렇다면 ‘거짓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에 대한 믿음 아닐까. 진실에 대한 갈증이 풀리고 ‘진실의 발명’이란 영화가 등장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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