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현상’의 서막을 미국 전역에 알린 2015년 8월 6일 공화당 대선 경선 1차 TV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게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이 나왔다. TV토론의 공동진행을 맡은 폭스뉴스의 앵커 메긴 켈리(사진)의 물음에 트럼프 후보는 “로지 오도널(레즈비언 코미디언)에게만 그랬다”며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다. 켈리는 즉각 “다른 사람에게도 한 것 같다”며 “당신 트위터를 보면 여성들 외모에 관한 경멸적인 언급들이 있다”고 결정타를 날렸다. 거침없는 발언으로 경쟁자들을 몰아세우던 트럼프 후보는 못내 기분이 상한 듯했다. 토론이 끝난 뒤 그는 트위터에 켈리를 ‘빔보(섹시하지만 머리가 빈 여자)’라고 비하했다. 이어 언론 인터뷰에서는 “켈리의 눈에서 피가 나는 것을 봤는데, 아마 다른 곳에서도 피가 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켈리가 월경 때문에 예민해져 자신을 공격했다는 취지로 한 주장이라고 언론은 해석했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후보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2016년 3월 폭스뉴스가 주관한 TV토론을 보이콧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트럼프 후보는 그러다가 사실상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지난해 5월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켈리를 만나 그간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켈리에게 “(다른 사람이 쓴 트위터 글을) 리트윗한 것”이라며 “(내가) 그렇게 말했냐”고 되물었다. 켈리가 “여러 번”이라고 답하자, 트럼프는 “그래,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후에도 트럼프가 여성 비하와 언론인 비난 발언을 이어가자 켈리의 사례가 언론에서 자주 언급됐다. 켈리는 지난해 7월엔 폭스뉴스의 회장이었던 로저 에일스가 “‘잠자리를 하면 승진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폭로하며 그의 불명예 퇴진을 이끌었다. 이후 켈리는 폭스뉴스와 계약이 끝나면 다른 방송사로 옮길 것이라고 공표했다. 공언대로 켈리는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6일 방송이 마지막 저녁 방송”이라며 폭스뉴스와 계약이 만료되는 7월부터 NBC에서 활동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폭스뉴스는 켈리를 붙잡기 위해 연봉 2000만달러(약 241억원)를 제안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켈리 영입에는 CNN과 ABC도 한때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뉴스는 켈리의 이적은 연봉 때문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폭스뉴스는 “켈리는 3살, 5살, 7살 아이를 두고 있다”며 “심야의 살인적인 스케줄이 이번 (NBC로의) 결정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켈리도 페이스북에 새로운 도전 소식을 알리며 “힘든 결정이었지만, 매일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세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를 원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켈리는 NBC로부터 평일 오전 뉴스 프로그램과 일요일 저녁 뉴스 앵커자리를 보장받았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자신의 설명처럼 켈리는 평일 저녁에는 소설가인 남편, 어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여건을 구비하게 됐다. 사업가로 일하다가 소설가로 전업한 남편과는 2008년 재혼했다. 마취 전문의였던 첫번째 남편과는 2006년 이혼하며 5년 결혼 생활을 끝냈다. 1970년 뉴욕주에서 태어난 켈리는 시러큐스대와 알바니 로스쿨을 졸업한 뒤 한동안 변호사로 일했다. 2003년 워싱턴의 지역방송사에 입사한 뒤 2004년 폭스뉴스로 이직해 기자와 앵커로 활동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켈리 파일’은 폭스뉴스에서 두 번째로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이었다.
워싱턴=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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