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역자의 사전적 뜻은 ‘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한 사람’이다. 박 대통령은 옷 색깔이나 액세서리 같은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외교안보 정책과 주요 연설문, 중앙부처 인사 같은 중요한 문제까지 스스로 힘으로 생각해 결정하지 못했다. 비선에게 물어봐야만 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오랜 세월 이를 들키지 않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김동진 정치부 차장 |
중앙 일간지와 지방지, 각종 방송사, 전문지 등에서 1300명의 기자가 국회를 출입한다. 그 많은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씨가 자신의 아바타 박근혜를 통해 정국을 좌지우지했다. 수많은 허점과 이상징후가 있었는데도 언론은 철저한 검증의 칼을 들이대지 못했다.
정치인 박근혜는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 필요할 때마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오만의 극치” 등의 짧은 몇 마디 단어만 내뱉었다. 한때 박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전여옥 전 의원은 이 같은 발언들이 사고가 깊지 못해서 나온 ‘베이비 토크’일 뿐이라고 폭로한 바 있다. 그런데도 언론은 대통령의 발언 뒤에 엄청난 고뇌와 사유가 깔려 있는 것처럼 포장해주기 바빴다.
박 대통령은 특히 청와대 입성 후 지금까지 제대로 된 기자회견 한 번 하지 않고도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청와대 기자단이 미리 질문 순서와 내용을 정해 알려주면, 박 대통령은 참모들이 적어준 모범답안을 수험생처럼 달달 외워 답변했다. 기자단은 박 대통령을 위해 질의응답을 생략해주는 친절도 아끼지 않았다. 기자들 스스로 권력견제 수단 중 하나인 기자회견 자리를 대통령 알현을 위한 의전행사로 격하시킨 셈이다.
박 대통령은 29일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도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몇몇 기자들이 “질문을 한 번도 안 받으면 어떡하느냐”고 외쳤지만 박 대통령은 끝내 질문을 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뒤늦게라도 질의응답을 요구한 것은 다행이지만 “박 대통령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 있을 때는 입을 닫다가 궁지에 몰리니까 항의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 사회가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황당한 권력이 두 번 다시 탄생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다. 대통령이 전 세계적인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린 현 상황에 대해 한국 언론도 분명히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나를 포함해 대한민국 모든 언론 종사자들의 뼈를 깎는 각성이 필요한 때이다.
김동진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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