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민지(31·여)씨에겐 매일 퇴근 후 아파트 앞에 새로 생긴 인형 뽑기방에서 1회에 1000원, 최대 5000원을 넣고 인형 뽑기를 하다 가는 것이 삶의 낙이다. 돈을 들여 인형 한 개조차 뽑지 못할 때가 많지만 인형을 뽑는 동안만큼은 딴 걱정 없이 오로지 단순행위에만 몰두해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한다. 인형을 뽑기 위해선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 스릴도 만점이다. 어쩌다 원하는 인형을 집게 되면 다음날을 위한 ‘행운의 징표’라도 얻은 듯 반갑고,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이 저마다 잔뜩 집중한 표정으로 뽑기를 즐기고 있는 것을 옆에서 구경하는 것 역시 재미가 쏠쏠하다는 평가다.
신촌·건대입구 등 대학가 상권, 원룸 촌에서부터 늘기 시작한 ‘인형 뽑기방’들이 최근에는 직장인들의 회식 상권은 물론 명동 중심 상권에까지 속속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인터넷 검색어 상위권엔 ‘인형 뽑기 비결’과 ‘인형 뽑기 노하우’ 등이 연일 오르며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인형 뽑기 열풍 뒤에 장기불황 국면에서 늘어난 ‘혼놀족’ 증가세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캐릭터 인형의 인기, 키덜트 문화 확산 등을 꼽고 있다.

20일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뽑기방이라는 명칭이 들어간 게임제공업소는 지난 3분기 말 기준 전국적으로 150곳 가까이 이른다. 집계되지 않은 뽑기방까지 포함하면 족히 수천 곳은 될 것으로 관련 업계에서는 예측하고 있다. 손님으로 초중고생들도 많이 찾지만 2~30대는 물론 4~50대 이상의 중장년층들도 눈에 띈다.
관련업계와 트렌드 분석 전문기관들은 최근 뽑기방 급증세에 장기 불황의 여파가 컸다는 지적을 한다. 불황이 지속되면 적은 돈으로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업종이 유행하는데 뽑기방에서도 한 번에 1000~2000원의 적은 돈만 넣으면 잠시나마 원하는 인형을 뽑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짧은 시간 혼자만의 놀이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사라졌던 ‘코인노래방’들이 도심 곳곳에 다시 생겨나고 있는 것도 같은 원리다. 코인노래방은 혼자 노래방을 찾는 이들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1~4곡 당 요금을 부과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또한 과거 ‘갈매기살’ 고깃집 열풍, 외국 과자 판매점 열풍, ‘봉구비어’ 같은 소규모 맥줏집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물론 ‘키덜트’(유년 시절 즐기던 장난감 등에 향수를 느껴 이를 다시 찾는 성인) 문화가 확산한 영향 역시 크다는 분석 역시 나온다. 무엇보다 최근 카카오프렌즈 등 각종 캐릭터 상품들의 인기세도 인형 뽑기 열풍에 불을 붙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 |
. |
예전에 인형 등 캐릭터 용품들은 어린이 상품으로만 여겨진 채 일부 키덜트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모바일 쇼셜미디어(SNS)상에서 자신의 감정을 대신해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카카오톡의 카카오프렌즈 등 캐릭터 인형들에 대해서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평가다.
이경희 창업전략연구소장은 “최근 인건비와 임대료는 계속 오르는데 불황은 장기화되다 보니 뽑기방 같은 창업·유지 비용이 저렴한 창업이 늘고 있다”며 “젊은 계층은 저렴한 가격으로 데이트도 즐기고, 인형도 뽑을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다만 “인형뽑기방과 같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갑자기 사라지는 업종이 너무 많다”며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 창업자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라윤 기자 ry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