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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훈의 스포츠+] 유니폼 32번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 이전 최고스타

입력 : 2016-11-12 07:13:00 수정 : 2016-11-11 14: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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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훈의 스포츠+] 전설의 유니폼 넘버, 32번의 주인공…①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 이전의 최고스타

◇얼마나 잘했으면 '마술'이라는 별칭이 붙었을까

매직 존슨(1959년 8월 14일생)의 본명은 '어빈 존슨 주니어'이다.

15살때 벌써 마술과도 같은 농구 실력을 선보여 지역신문기자가 '마술과 같이 농구를 잘하는 선수'라는 뜻에서 붙인 수식어가 그의 이름이 돼 버렸다. 

고향인 미시건 주 랜싱의 에버렛 고교 2학년 시절 트리플 더블(36득점 18리바운드 16어시스트)를 기록한 그를 본 랜싱 지역신문 '랜신 스테이트 저널'의 프레드 스테이블리 주니어 기자가 '매직 존슨'라며 그를 극찬했다.

이후 매직은 오직 존슨만의 고유명사가 됐다.

매직 존슨은 신기에 가까운 드리블과 동료를 쳐다보지 않고 패스를 연결, 감탄을 자아냈다.

'노 룩 패스(No Look Pass)'와 더블 클러치 뒤 연결하는 패스 등은 천하 일품이었다.

어떻게 저런 패스가 나올 수 있을까라고 모든 이들이 궁금증을 던졌을 때 매직 존슨은 은퇴후 "동료들의 연습 장면을 꾸준히 지켜보고 습관을 완벽히 파악했다. 척하면 삼척일 만큼 그들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보지 않고 패스할 수 있었다"고 비법을 공개했다.

뒤통수에 눈이 달려 있었던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으로 일궈낸 결과였다.

◇파워 포워드로도 손색 없었던 206cm의 포인트 가드

매직 존슨은 학창시절부터 스스로 경기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포지션인 포인트 가드에 큰 매력을 느꼈다.

고교시절 미국 전역에 이름을 떨친 스타였던 그는 내로라하는 학교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미시건 주립대학으로 진로를 정한 이유는 고향학교라는 점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포인트 가드로 뛰게 해주겠다"라는 주드 해스코트 감독의 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매직 존슨의 키는 206cm로 센터 다음가는 위치인 파워 포워드로 제격이다.

하지만 매직 존슨은 화려한 개인기를 마음껏 구사할 수 있는 포인트 가드를 고집,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자세를 낮춰 드리블해야 하는 포인트가드는 큰 키의 매직 존슨에겐 상당히 부담이었다.

그 결과 선수생활 내내 무릎과 허리이상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마이클 조던 이전의 농구스타

매직 존슨은 마이클 조던이 등장하기 전 미NBA 최고 인기스타 자리를 차지했다.

조던이 포인트 가드로 뛰면서 돌파, 패싱력을 선보였다면 매직 존슨은 화려한 개인기와 패싱, 덩크슛으로 재미를 선물했다.

농구팬들이 승패보다 선수 개인 플레이를 더 보고 싶어했던 선수들은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닥터 J로 유명한 줄리어스 어빙 정도였다.

이들 모두 사람이라면 해내기 힘든, 상상하기 어려운 묘기와 슛, 드리블, 대역전극을 연출해 냈기 때문이다.

매직 존슨이 이끈 LA 레이커스는 조던의 시카고 불스에 앞서 1980년대 NBA무대를 평정(5차례 우승)했다.

◇기록들

매직 존슨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마이클 조던 등과 더불어 드림팀을 구성해 관중들에게 화려한 쇼를 선 보이며 가볍게 우승했다.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1979년) * NBA우승 5회(1980, 82, 85, 87,88년)

*파이널 MVP 3회(1980, 82, 87년) *올스타 12회

*시즌 MVP 3회(1987,89,1990년) *올스타 게임 MVP 2회(1990, 92년)

*전미대학선수권 우승(1979년) *32번 영구결번(LA레이커스)

*통산 1만7707득점 *통산 1만141어시스트(역대 5위)

*경기당 11.1어시스트(역대 1위) *통산 6559리바운드 *명예의 전당 멤버 *올림픽 금(1992년)

◇에이즈 고백

매직 존슨은 1991년 11월 7일 기자회견을 통해 '에이즈(HIV)'감염 사실을 알리면서 은퇴를 선언,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만 해도 '에이즈에 걸리면 사망' '스쳐도 감염' 등 터무니 없는 사실이 진실인 것처럼 돌아다닐 때였다.

이런 고백도 매직 존슨의 인기를 흔들지 못했다.

1991-92 시즌 올스타 득표에서 서부 가드 중 2위 서부 전체 4위의 득표를 했다.

매직존슨은 반년 가까이 쉬었지만 올스타전에 나서 결정적인 3점슛과 함께 올스타전 MVP에 뽑혔다.

또 은퇴했음에도 프로선수들에게 올림픽 참가를 처음 허용한 1992바르셀로나 올림픽 미국 대표팀 멤버(드림팀 1기)로 뽑혀 변함없는 실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에이즈에 대한 편견으로 코트로 돌아오지 못하고 맴돌다가 95-96 시즌 중반 현역에 복귀, 반시즌 활약한 뒤 완전히 옷을 벗었다.

◇류현진을 스카우트 한 구단주이자 성공한 사업가

매직존슨은 은퇴후 농구 못지 않게 사업가고 대성공,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미국 전역에 극장, 스타벅스 체인, 버거킨 체인, 피티니스 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또 LA레이커스 부사장으로 팀 경영에 참여했으며 2012년 30년지기인 스탠 카스텐과 컨소시엄을 이뤄 메이저리그 LA 다저스를 인수했다.

매직존슨은 2012년 12월 류현진 입단식에 참석, 우리에게 얼굴을 선보인 바 있다.

또 매직존슨은 미국 여자 프로농구 리그인 WNBA의 LA 스파크스의 구단주이며 미국 여자축구 전설인 미아 햄, 유튜브 창립자 채드 헐리 등과 컨소시엄을 2017년 MLS에 참가할 LA의 신생 축구 구단 창단 작업에 한창이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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