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푼이 아쉬웠던 가난한 농가에선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만 마치면 중학교 진학보다는 돈벌이에 나서는 일을 당연히 여겼다. 당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은 대부분 구두 가게, 양복점, 사진관, 중국음식점, 이발소 등에 취업했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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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공직기강비서관과 감사원 사무총장, 경남과학기술대 총장 등을 역임하며 평생 공직자로 살아 온 김조원 건국대 석좌교수가 회계학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대학이 단순히 지식만 전달할 것이 아니라 학생을 위한 컨설팅 제도 등 케어(돌봄)시스템을 대폭 강화해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을 보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재문 기자 |
5남매 중 맏이인 그는 부모님의 무거운 짐을 하루빨리 덜어 주기 위해 공무원이 되기로 일찌감치 마음을 먹었다.
고교 3학년 때 경남도 지방행정직 5급 ‘을’(현 9급)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지만 발령이 나지 않았다.
부득이 대학에 들어가 성적 장학금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공직진출 기회는 머지않아 찾아왔다. 21세였던 대학 3학년 재학 중 행정고시에 ‘소년 급제’해 공직자의 길에 들어섰다. 김 교수는 “당시엔 모두 힘든 때라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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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대 유격훈련장에서 포즈를 취한 김 교수. 그는 육군 중위로 전역했다. |
그는 감사 업무의 원칙을 정했다고 한다. 개인의 잘잘못을 따지고, 부정, 비리를 파헤치는 일보다 제도와 정책개선 감사에 역점을 두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조선시대 사간원과 사헌부 관리 자손치고 잘된 사람이 없다’는 동료 공무원의 조언이 감사관으로서의 직무수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사람이 다치지 않는 감사를 한 것이다.
그의 첫 출장감사는 한국전력의 발전소 건설 계획 점검이었다. 1980년대엔 원자력, 석탄, 수력이 경쟁적으로 전력을 개발해 발전소가 넘쳤다고 한다. 현장에 가 보니 전력수요 예측 기능이 없어 발전소가 남는지 모자라는지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김 교수는 “감사를 계기로 한전이 전력수요예측 시스템을 새로이 구축하고 발전소 건설 계획 관련 조직과 기능을 크게 보강한 것은 보람이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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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 2학년 때 기숙사 옥상에서 친구와 자리를 함께한 김 교수(가운데). |
그는 노무현정부에서 대통령 공직기강비서관을 하며 대통령이 갖고 있는 중앙부처 5급 이상 공무원에 대한 인사권을 소속 장관에게 넘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이는 그의 소신과 철학이 돼버렸다. 비서관에 임명된 후 얼마 안 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당부한 내용을 생생히 기억한다.
노 전 대통령은 “김 비서관, 내가 뭘 하려는지 알아요”라고 물었고, 그의 답변은 “모릅니다”였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권한을 줄일 거요. 인사권에서 권한이 나오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인사권을 당신(공직비서관실)에게 주겠어요”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고 한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인사검증 결과를 보고하면 노 전 대통령은 한번도 가타부타하지 않고 수용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인사권 이양 발언을 계기로 그는 장관이 인사권을 행사해야 소관 부처를 책임지고 실질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한다. 현행 국가공무원법 제32조에는 행정기관 소속 5급 이상 공무원 및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일반직공무원은 소속 장관의 제청으로 인사혁신처장과 협의를 거친 후에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용하도록 돼 있다. 그는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05년 그의 청와대 비서관 발탁과 함께 노무현정부는 장관 인사청문회를 실시했다. 청와대의 인사검증 대상이 많아졌고,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소임은 어느 때보다 막중해졌다.
그는 인사검증을 하며 고의로 위법을 저지른 공무원은 철저히 배제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그런 공직자는 공무를 맡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공무원 본인과 아들이 병역을 회피할 목적의 국적 세탁과 위장전입에 따른 부동산 투기, 의도적인 탈세는 모두 고의에 따른 위법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고 밝혔다. 이외에 성 추행, 성 매매 혐의 등 풍기문란과 뇌물수수, 음주운전 여부도 검증 리스트에 포함했다. 그는 “고위공무원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례가 있으면 승진 기회에서 1회 불이익을 줬다”고 했다. 공직사회에서는 음주운전 금지 문화가 형성됐고, 이런 분위기는 대리기사 활성화에 한몫했다는 평가다.

인사 검증에서 낙마한 사람들의 항의는 말도 못할 정도였고, 일부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가능하면 해 뜰 때 집을 나와 해 지기 전 귀가했다”고 술회했다. 그가 어느 정도로 몸가짐을 조심하고 주변관리를 철저히 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김 교수의 말은 이어졌다. 그는 “국정운영을 하며 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하고, 그중에서도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책임은 엄청나다”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특히 최고결정권자는 2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며 “실무(업무) 능력과 충실한 공인의식이 전제조건”이라고 설파했다. 그는 “최고 결정권자는 자신이 하는 일이 하느님보다 더 공적이라는 사명감으로 철저히 무장해야 한다”며 “능력 없는 사람이 공인의식만 갖고 열심히 하면 만인이 괴롭다. 너무너무 피해가 크다”고 지적했다. 실무와 판단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공인의식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실무능력이 없으면 무능한 지도자란 뜻이다.
그는 “정치에 협상이 필수이고, 상대 마음을 파악할 능력과 설득 등이 굉장히 중요하듯 행정에도 훈련된 테크노크라트(technocrat·기술관료)가 절실하다”고 했다. 관료도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2006년 청와대 비서관에서 친정인 감사원 사무총장으로 금의환향한 그는 2008년 3월 사무총장 퇴임식 날 낙향해 버렸다. 서울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그의 손에는 가방 한 개가 들려 있었다.
약관에 고시에 합격해 지방대학 출신, 배경과 돈이 없는 ‘촌놈’이 직업 관료로서 직무에 충실했고,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감사원 사무총장 자리에까지 오르는 데 3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린 것이다. 일하고 싶은 의욕이 충만했는데도 51세의 나이에 정권교체로 공직을 그만둔 그는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고향 가는 버스에 몸을 실은 그는 만감이 교차했다. 어머니는 예고없이 홀로 찾아온 아들을 보고 “갑자기 왜 왔느냐”며 걱정하는 눈치였다. 아버지는 자식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듯 아무 말이 없었다고 한다. 다음날부터 농사일을 거들었고, 차츰 들일이 익숙해질 무렵, 진주산업대에서 총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와 뜻하지 않게 그는 대학에 몸담게 됐다. 김 교수는 산업대를 일반대학으로 전환하고, 교명을 경남과학기술대로 바꾸는 등 대학을 변모시켰다.
2012년 대학총장 4년 임기를 마친 그는 이듬해부터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건국대에서 석좌교수 자격으로 후학 양성에 전념하고 있다. 김 교수는 회계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교단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학생에게 전달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이메일이나 개별 상담을 통해 학생의 고민, 직업선택과 진로 상담, 입사 면접 방법 등 졸업 후 필요한 상식을 두루 지도하고 있다.
그는 대학총장을 하며 한국의 대학교육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파악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교육은 고등학교까지는 (학생을 위한) 케어(돌봄)시스템이 잘 돼 있다”며 “그러나 대학에 그런 제도가 없는 점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어 “흔히 대학생이니까 어련히 알아서 잘 할 것으로 짐작을 하겠지만 어른의 지속적인 케어가 요구된다”고 했다. 그는 “각 대학마다 학생을 위한 컨설팅 기능이 굉장히 부족한데 이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자녀가 1∼2명에 불과해 모든 걸 부모가 케어하다 보니 대학생의 독자적인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대학 당국은 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단순히 학문 전수뿐 아니라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으로 보살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의 강의를 듣는 학생은 90여명이다. 김 교수의 수업을 듣기 위해 한두 학기를 기다려 수강신청을 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김 교수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학생들과 생활하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하다”며 “사회에도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활짝 웃었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
●김조원은
△1957년 경남 진양 출생 △진주고, 영남대 행정학과 졸, 성균관대 대학원 경영학과 졸, 미국 인디애나대 대학원 행정학과 졸, 경영학 박사(건국대) △행정고시 합격(22회) △총무처, 교통부 행정사무관 △감사원 사무관, 서기관, 제5국 제6과장, 제6국 제4과장, 제7국 제1과장, 제4국 제3과장, 제1국 제1과장 △감사원 국가전략사업평가단장 △대통령 공직기강비서관 △감사원 사무총장 △영남대 행정대학원 석좌교수 △진주산업대 총장, 경남과학기술대 총장 △건국대 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현) △(사)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 이사(현) △더불어민주당 당무감사원장(현)
△1957년 경남 진양 출생 △진주고, 영남대 행정학과 졸, 성균관대 대학원 경영학과 졸, 미국 인디애나대 대학원 행정학과 졸, 경영학 박사(건국대) △행정고시 합격(22회) △총무처, 교통부 행정사무관 △감사원 사무관, 서기관, 제5국 제6과장, 제6국 제4과장, 제7국 제1과장, 제4국 제3과장, 제1국 제1과장 △감사원 국가전략사업평가단장 △대통령 공직기강비서관 △감사원 사무총장 △영남대 행정대학원 석좌교수 △진주산업대 총장, 경남과학기술대 총장 △건국대 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현) △(사)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 이사(현) △더불어민주당 당무감사원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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