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산 타율 3할8리, 포수마스크 끼고 396개 홈런(총 427개) 등 역대 공격랭킹 1위 포수, 약물로 4수끝에 명예의 전당
마이크 피아자(1968년 9월 8일생)는 수비 부담이 많은 캐처 중 공격력면에서 으뜸가는 스타이다.
1988년 아버지와 절친한 토미 라소다 감독<사진 왼쪽>의 추천으로 겨우 프로무대에 데뷔, 눈치밥을 먹다가 1992년 9월 1일 메이저리그 첫경기에 나선 이래 2007년 9월 30일 마지막 경기에 나설 동안 16시즌 동안 1912경기에 출전 2121개의 안타를 때려 통산 타율 0.308, 1335타점을 기록했다.
안타 중 홈런이 427개이며 캐처로서 때린 것만 396개에 달한다.
캐처 중 최다 홈런 기록이다.
사상 최고 캐처라는 요기 베라(2120경기, 2150안타, 타율 0.285, 홈런 358개, 1430타점), 자니 벤치(2158경기, 2048안타, 타율 0.267, 홈런 389개, 1376타점)는 물론이고 칼튼 피스크(2499경기, 2356안타, 타율 0.269, 홈런 376개, 1330타점)보다 타격면에선 월등하다.
하지만 요기 베라와 자니 벤치가 한번만에, 칼큰 피스크가 두번 시도끝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것과 달리 피아자는 4수만인 지난 1월 6일 365표(득표율 83%)를 얻어 캔 그리피 주니어(득표율 99.32%)와 함께 명예의 전당 멤버가 됐다.
피아자가 힘들게 입성한 것은 '약물 복용'의혹 때문이다.
피아자는 2013년 2월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근육 강화제인 안드로스텐다이온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안드로스텐다이온은 '빅맥' 마크 맥과이어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바로 그 약물이다.
피아자는 MLB 사무국에서 금지약물로 분류하기 시작한 2004년 이전에 복용을 중단했다고 슬쩍 '죄 없음'을 주장했지만 '약물복용 선수'딱지가 따라 다녔다.
◇전체 1390순위로 간신히 프로행, 그 것도 재벌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 덕분에 낙하산타고
마이크 피아자의 아버지 빈스 피아자는 부동산과 중고차 사업으로 억만장자 대열에 오른 인물이다.
메이저리거를 꿈꿨으나 집안 사정으로 16살때 포기한 빈스 피아자는 LA다저스 감독으로 유명했던 토미 라소다와 같은 이탈리아계로 절친사이.
빈스 피아자는 자신이 못다한 꿈을 아들이 이어주길 바랬으며 5명의 아들 중 차남인 피아자를 선택, 5살때부터 야구선수의 길로 인도했다.
마이크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집 뒷마당에 야구장 크기의 훈련장을 마련했으며 비싼 피칭머신까지 비치해 타격훈련을 도왔다.
또 아들이 12살 되던해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타자인 테드 윌리엄스를 초청, 개인교습까지 시켰다.
이런 열성에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를 눈여겨 본 프로관계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는 마이크 피아자가 학창시절 이렇다할 성적을 못낸데다 투수가 되겠다며 고집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빈스 피아자는 절친인 라소다 당시 LA다저스 감독을 찾아가 2년제 대학에 진학한 아들을 드래프트때 뽑아 달라고 간청했다.
라소다 감독은 마이크가 힘이 있고 어깨가 좋다다는 사실을 알고 포지션을 1루수에서 캐처로 변경하면 "스카우트 관계자에게 말을 한번 해 보겠다"고 했다.
라소다 감독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스카우트 담당자는 차마 그들 눈에 동네선수감도 아닌 마이크 피아자를 선뜻 뽑지 못했다.
다저스 스카우트 관계자는 62라운드에 들어서야 마이크 피아자를 선택했다.
전체 1395명 중 1390위로 그야말로 마지못해 드래프트 명단에 집어 넣은 것이다.
◇한 때 팀 이탈, 호된 꾸지람에 이틀만에 복귀후 대스타로
입단후 마이크 피아자는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캐처 훈련을 받았다.
이후 플로리다주 베로비치의 팀 훈련캠프에서 싱글A 소속으로 훈련에 들어갔지만 '장래가 암울하다'고 판단, 다른 길을 찾겠다며 팀을 이탈했다.
이를 안 라소다 감독이 혼쭐을 내고 아버지의 질책에 이틀만에 팀에 복귀, 진짜 선수가 될 결심을 했다.
그러던 중 1992년 9월 1일 시카고 컵스와의 홈경기를 통해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가졌다.
이때만 해도 토미 라소다의 낙하산이라는 수군거림이 있었다.
하지만 그해 9월 12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지역 라이벌전에서 홈런을 터뜨리며 스타탄생을 알렸다.
루키시즌인 1993년 피아자는 149경기에 출전해 타율 0.318, 35홈런, 112타점의 놀라운 기록으로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차지하면서 아버지와 라소다 감독을 감동시켰다.
◇박찬호 도우미로 우리에겐 이름 알려져
마이크 피아자는 박찬호가 선발로 처음 나선 1997년 LA다저스 주전 포수로 활약, 우리에게 이름을 알렸다.
고집센 피아자로 인해 박찬호가 마음 고생했다는 후문이 있을 만큼 호흡은 맞지 않았다.
마이크 피아자는 1997년 타율 0.362, 40홈런, 124타점을 올리며 내셔널리그 MVP 투표 2위에 오르는 등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하지만 전력 보강을 노린 LA다저스가 1998년 5월 15일 피아자와 토드 젤르를 2대5 트레이드 희생물로 삼아 플로리다 말린스로 보내 버렸다.
플로리다는 일주일 뒤 피아자를 뉴욕 메츠로 넘기는 대신 3명의 선수를 받는 1대 3 트레이드를 실시했다.
피아자는 2000시즌 뉴욕메츠를 월드리시즈에 올려 놓는 등 2005시즌까지 뉴욕 메츠에서 중심타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마이크 피아자는 토미 라소다 LA다저스 감독과 특수한 관계지이지만 자신을 팔아버린 일을 잊지 못하고 명예의 전당 헌액식 때 뉴욕 메츠 모자를 보란듯이 쓰고 나타났다.
◇마이크 피아자의 기록들
▲올스타 12회 ▲실버 슬러거 10회
▲내셔널리그 올해의 신인(1993년) ▲명예의 전당 입회(2016년)
▲영구결번(뉴욕 메츠)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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