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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제주 이주민들의 삶과 공간 엿보기

입력 : 2016-10-28 18:08:59 수정 : 2016-10-28 18: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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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 있는 사람이 제주에 오고 살다 보니 또 다른 재주를 발견했다"는 서귀포 남원 정착 샐리와 이메다 부부. 사진=최태민

‘올레’ ‘이효리’ ‘환상의 섬’ ‘혼저옵서예’ ‘세계자연유산’ 등등.

제주도를 나타내는 여러 표현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엔 ‘삶의 로망’으로 유행하는 듯하다. "모든 걸 훌훌 버리고 푸른 밤 별빛 아래"로 가고 싶을 때 생각나는 곳이 이곳이다. 제주도민 입장에선 ‘외지인’일 수밖에 없는 이들은 10월 현재 66만명에 달한다.

기자 주변에도 많다. 일단 아내가 서귀포에서 나고 자랐다. 가끔 "신문사에서 잘리면 내가 ‘비바리(해녀) 정신’으로 먹여 살릴테니 하고 싶은대로 해"라고 응원해주는 고마운 친구다. 대학 동기는 수년 전 제주시 근처에 터를 잡았다. 그가 가끔 페이스북에 올리는 저녁놀 사진은 늘 부럽고 신비롭다. 정치블로거 아이엠피터(임병도)나 백영민씨처럼, 제주 이주 후 더욱 세상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분들도 있다.
교사의 길을 접고 귤농사를 짓고 있는 정의준씨 농장. 사진=최태민

각설하고, 이 기사는 ‘또 하나’의 제주 관련 책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제목이 ‘제주에 살다’(박지혜 지음, 우드플래닛 펴냄)이다. 지은이도 기자다. 주택 전문 월간잡지에서 지난 7년 간 취재기자로 일하다 얼마 전 프리랜서로 나섰다고 한다. 제주에 살고 있는 대표적인 ‘이주민’ 열한 커플을 인터뷰한 기사를 모았다. 짐작컨대, 박 기자가 책에서 일관되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건축의 미 ▲삶의 자세 ▲정착 꿀팁 3가지인 것 같다.

‘제주에 살다’의 부제는 ‘제주에 내려와 집 짓고 사는 사람들의 푸른 랩소디’다. 크게 ‘새로 짓다’와 ‘고쳐 짓다’로 나눠 11쌍의 ‘굴러들어온 돌들’을 소개한다. 첫 번째 카테고리에선 도예가·출판쟁이, 바느질 작가, 예술문화기획자, 바다보석 디자이너, 젊은 감귤 농사꾼 부부의 제주 정착기를 풀어낸다. 두 번째 장의 주인공은 공학자·사업가, 목가구디자이너 2명, 일식요리사, 가구컬렉터, 건축가 여섯 커플이다.
20년 서울 압구정동 미술학원 원장 생활을 접고 제주 애월에 정착한 신중선씨가 신샘공방에서 목가구를 만들고 있다. 사진=최태민

각 커플에 관한 소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진행된다. 대체로 살고 있는 집 이야기, 제주에 정착한 사연, 귀촌을 꿈꾸는 ‘후배’에게 일러주고 싶은 준비사항이다.

지은이는 ‘주택전문기자’스럽게 집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예를 들어 광고제작자에서 문화예술기획자로 변신한 최한정씨의 ‘일과 생활, 앞으로의 꿈’ 이야기는 ‘바당의 뜨락 밤의 연주회’ ‘제주는 얼마나 더 커질까’ ‘우린 이민이라 말해요’ ‘자연유산의 마을 해녀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는 바다와 하늘의 집’ 식의 소제목을 달아 풀어낸다. 맨 마지막엔 ‘제주 이주 예정자를 위한 TIP’이 달렸다.

그래서 책은 읽는 이에 따라 그 공감 혹은 감동의 지점이 다르다. 건축업계 종사자들은 설계 원칙이나 집의 모양에 관심을 기울일테고, 낯익은 곳에서 낯선 곳으로의 떠남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두세 번째 이야기를 주목하면 된다. 또 이들이 어떤 연유로 제주를 선택했고 무슨 심신의 고통을 겪었으며 변화무쌍한 일상에서도 자신들을 든든하게 붙잡아주는 힘이 무엇인지를 듣노라면 절로 삶의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제주 이주민들이 만든 제주 전역 수십개의 벼룩시장은 아직은 낯선 제2의 고향에 대한 정보와 애환을 나누는 장이다. 사진=최태민

특히 다른이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도심에 있었을 때보다 육아는 한결 쉬워졌다"(서진권·주미선), "요리사에게 ‘한 접시’는 자신의 세계에 집중하는 시간이고 세상과 교유하는 장치"(정선영·이인규), "한 고비 넘기고 나니 가족을 넘어 그저 한 사람으로 봐지더라고요. 옆에 있는 사람이 새로운 길을 가면 저도 몰랐던 길을 새롭게 알게 되는 재미도 있는 거니까요"(이기관의 아내).

외지인이 바라 본 ‘제주의 속살’도 흥미롭다. 제주도를 들렀을 때 ‘귤꽃’ 향을 맡아본 적 있는지. 귤꽃은 5월초 약 1주일간 피는 데 라벤더향과 같은 달달한 향기가 난다. 지은이는 "그 어느 조향사가 맡은 향수보다 더 향수같은 냄새"라고 표현했다. 공감한다. 이 밖에 ‘샤머니즘의 섬’ 제주만의 정서와 대문·부엌에 반영된 삶의 지혜와 같은 향토적 정보, 멀게는 4·3사건부터 최근의 ‘부동산 광풍’에 관한 토박이들의 외지인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의 근원도 짐작할 수 있다.
6년 전 한라산 기슭 아름드리 구실잣밤나무에 홀딱 반해 제주에 내려온 '슬로리 우드워킹 스튜디오'의 이양선씨가 포즈를 취해달라는 요구에 수줍게 웃고 있다. 사진=최태민

"누구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지은이는 샤를 보들레르를 인용하며 "제주도 역시나 그 순둥이 같고 황홀한 대자연의 풍광 이면에 다듬어지지 않은 돌의 표면과 같은 날카로움이 있다"고 말한다. 제주도를 단순히 구경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진심을 다해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마음자세만 가진다면 애초 꿈꿨던 ‘사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일 게다. 책 값은 1만6800원, 하지만 읽고 나면 절대 후회하진 않는다.
'제주에 살다' 표지.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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