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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화가 단원과 혜원, 조선판 포르노그라피의 원류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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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15 11:19:06 수정 : 2016-10-15 11: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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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시작한 특별전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에는 ‘야사시한’(?) 상상을 자극하는 그림이 출품됐다. 혜원 신윤복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사시장춘’(四時長春)이라는 그림이다. 

신윤복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사시장춘’.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화면 왼쪽을 차지한 건물의 굳게 닫힌 방문 앞에 남녀의 신발이 약간 흐트러져 놓여 있다. 문 앞에 선 소녀의 뒷모습은 들고온 술을 방으로 들여야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기색이 완연하다. 방안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면 화면 오른쪽 상단의 숲과 계곡의 형태가 예사롭지 않다. 물이 흐르는 계곡 주변을 거뭇하게 표현했고, 계곡 상류에는 나무숲을 소담하게 그려놓았다. 여성의 성기를 떠올리게 무리가 아니다.

‘사시장춘’의 맞은편에는 단원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이 전시되어 있다. 도첩에 실린 그림 중 ‘우물가’에는 ‘사시장춘’ 만큼 역력하지는 않지만 남녀간의 묘한 감정이 읽힌다. 우락부락한 인상의 남자가 우물 바가지를 들고 물을 마시고 있는데 상의를 풀어헤쳐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재밌는 건 남자 주변 세 여성의 표정이다. 짐짓 외면하고는 있지만 싫지 않은 기색임은 분명하다.

김홍도의 풍속화첩에 실려 있는 작품 중 하나인 ‘우물가’.
단원과 혜원의 그림이 보여주는 이런 정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두 사람이 활동한 18, 19세기 조선의 한양에는 경제의 발달과 함께 본격적인 상업적 유흥이 등장했다. 기생과 가객, 악사를 불러다 즐기는 잔치가 베풀어졌고, 기방과 색주가가 ‘왈자’가 이끄는 향락의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향락적 유흥은 자유분방한 성풍속을 동반했고, 평범한 여염의 남녀들까지 그런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소설 ‘절화기담’, ‘포의교집’ 등을 보면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연애관과 성풍속을 만나게 된다.

시대상을 절묘하게 포착했던 풍속화가였던 단원과 혜원이 이런 분위기를 간과할 리 없다. 특히 혜원은 시정의 문화가 유흥, 향락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양상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그는 대표작인 ‘혜원전신첩’에서 도시의 흥청대는 뒷골목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박물관은 두 화가의 작품이 “상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배경이나 주변 소품을 통해 에로티시즘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단원과 혜원의 작풍은 조선후기 춘화(春畵)의 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후기 춘정류 풍속화와 성풍속화의 양식은 이들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 춘화의 백미’라고도 하는 ‘운우도첩’(雲雨圖帖)과 ‘건곤일회첩’(乾坤一會帖)이다. 성기와 성행위의 직접적 묘사, 남녀노소·신분고하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 혼교·동성애 등 파격적인 설정 등을 보여주는 여러 점의 그림이 실려 있다. 계곡의 개울가에서 서로의 성기를 희롱하는 남녀, 두 명의 여성과 성행위를 벌이고 있는 양반, 성관계를 훔쳐보고 있는 여인 등을 묘사한 그림들은 지금의 포르노그래피와 맞먹는 수위다.

재밌는 점은 ‘운우도첩’에는 단원의 인장이, ‘건곤일회첩’에는 혜원의 그것이 찍혀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한때 두 그림집이 단원, 혜원의 작품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그림을 비싸게 팔기 위해 누군가 조작한 것 아니겠냐”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림들은 두 사람의 솜씨와 닮아있다 점은 분명하다.

정확한 인체묘사나 행위의 진솔한 재현은 높은 기량을 증명한다. 특히 이 작품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주변을 뛰어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빼어난 자연풍경 속에서 진탕하게 벌이는 춘정의 현장을 묘사한 광경은 조선 춘화가 중국, 일본의 그것에 비해 더 서정적인 양상을 띠게 하는 요인이다. 

춘화집 ‘운우도첩’에 실린 그림. 자연 속에서의 성행위를 묘사하고 있다.
명지대 이태호 교수는 ‘운우도첩’에 실린 한 그림에 대해 “짧은 붓질의 반복으로 묘사한 언덕과 진달래 나뭇가지의 표현은 전형적인 단원식 산수화풍”이라며 “자연과 더불어 벌이는 야외의 성행위 장면포착은 우리 춘화가 지닌 매력”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조선후기 춘화의 파격적인 묘사는 심하게 결핍된 성적 요구를 분출해 보고 즐기는 것의 정도를 더욱 강도높게 표현하고자 했던 당대의 새로운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한편으로 양반을 성행위의 당사자로 출연시키고, 승려나 양반 부인을 설정한 것은 유교적 엄숙주의에 금이 가면서 생긴 당시의 성문란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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