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에서 미국 대선후보 2차 TV토론이 열리기 전 한 대학생이 중계차량의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 얼굴 사진을 향해 발길질을 하고 있다. 세인트루이스=AFP연합뉴스 |

미국 국토안보부와 국가정보국(DNI)은 DNC 해킹에 러시아 해커와 정부 당국이 개입했다고 7일(현지 시간) 공식 발표했다. 미국 당국은 “러시아의 절도와 폭로는 미 대선 과정에 개입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밝혔다. 미 당국은 “이들 행위의 범위와 민감성을 고려할 때 러시아의 최고위 관리만 이러한 행동을 승인할 수 있었을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미국 대통령 선거를 관리하는 각 주의 선거구 또는 투표구의 컴퓨터망에 침투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최근 프린스턴대의 앤드루 아펠 교수는 82달러(약 9만1400원)의 장비를 구입하고, 대학원생의 도움을 받아 미국의 일부 주가 사용하고 있는 전자투표기기인 ‘세쿼이아 AVC 어드밴티지’에 침투해 투표 결과를 조작하는 것을 시연해 보였다고 정치전문지 폴리티코가 최근 보도했다.

미국은 지난 2000년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와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가 맞붙은 대선에서 플로리다주 투·개표 논란으로 투표일 이후 1개월가량 당선자를 발표하지 못하는 사태를 겪었다. 플로리다주는 당시에 펀치 카드 방식의 투표용지를 사용했고, 이때 투표용지에 구멍이 제대로 뚫리지 않아 엄청난 혼란을 겪었다. 당시 대법원의 판결로 부시가 대통령이 됐지만 펀치 카드로 드러난 투표자의 투표 의도를 고려하면 고어가 이긴 선거였다는 게 미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 |
미국 대선을 앞두고 지난 5일(현지시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시내에 설치된 조기투표장 앞을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 미니애폴리스=AFP연합뉴스 |
미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브레넌센터는 지난달에 ‘위기 맞은 투표기기’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미국 대선 투·개표 관련 기기의 치명적인 결함을 공개했다. 이 기관은 올해 현재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 43개 주가 10년이 넘은 투표기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중에서 31개 주는 당장 새로운 투표기기를 도입하지 않으면 투·개표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고 경고했다. 플로리다, 매사추세츠, 뉴햄프셔, 텍사스, 버지니아 주의 투표기기는 최소한 15년 이상 된 고물이라고 브레넌센터가 밝혔다. 이들 투표기기가 소프트웨어 지원, 부품 교체, 스크린 조작 등의 분야에서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고 이 보고서 작성 책임자인 래리 노던이 강조했다. 로던은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통해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투표기기 터치 스크린에 특정 후보 지지 표시를 하면 그의 앞이나 뒤에 있는 다른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한 것처럼 투표 결과가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국 PBS방송은 미국의 각 주정부가 투표 결과를 전송하는 모뎀이 낡고 중앙처리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메모리 카드 지원이 잘 안 되는 사례를 속속 보고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유권자가 특정 후보에 기표를 해도 기기가 잘 작동하지 않아 투표 결과에 반영되지 않는 사례를 각 주가 신고하고 있다고 PBS가 전했다. 이 방송은 “현재 컴퓨터 해킹에 관심이 집중돼 있으나 이보다 심각한 문제가 고물 투표기기”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1960대 민권운동으로 ‘투표권한법’(VRA)이 시행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소수인종이나 일부 빈민층은 투표권 행사를 제약받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공화당이 주의회를 장악한 일부 주는 투표할 때 신분증 제시를 의무화하는 법을 속속 제정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이후 투표장에서 신분증 확인을 요구하는 등의 투표 절차를 까다롭게 한 주가 22개 주에 달한다고 미국의 진보 언론매체 ‘아메리칸 프로스펙트’가 최근 보도했다.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이나 빈민층 유권자 중에서는 신분증으로 사용하는 운전면허증이 없는 사람이 많다. 미국에는 한국과 같은 주민등록증이 없어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자신의 신분을 입증하기가 어렵다. 현재 투표권 행사 제한 문제를 놓고 버지니아, 앨라배마, 애리조나, 조지아, 캔자스, 오하이오 주 등에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투표자 신분증 확인 절차 등이 투표권을 제한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 측은 부정 투표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며 투표자의 신분 확인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 회계감사국(GAO)이 지난 2014년에 캔자스와 테네시 주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투표에 앞서 신분증 확인 절차를 도입하면 투표율이 2∼3%가량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인 등이 거주하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에는 투표장이 거주지 인근에 많이 있는 데 반해 흑인 등 소수 인종 거주지에는 투표소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미국의 진보 진영이 줄곧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흑인 등 소수인종 유권자가 투표소를 찾기도 어렵고, 투표하려면 줄을 길게 서서 장시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투표를 포기하고 있다고 진보 단체들이 강조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