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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아들 보직변경 안돼요”…김영란법에 軍 청탁 ‘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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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김영란법(부정청탁, 금품수수금지법) 시행되면서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이어지던 청탁 등 관행과의 작별을 위한 대장정에 올랐다.

공공기관과 교육 현장, 언론인 등 김영란법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분야는 물론이고 ‘3, 5, 10 조항’과 직결된 요식업계 등도 김영란법이 몰고 올 변화에 적응하느라 몸살을 앓았다. 애매한 법조항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경우 의심받을까봐 무조건 ‘더치페이’를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첫 날인 28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국민권익위원회 정부 합동 부정부패, 공익침해 신고센터에서 직원들이 전화 상담을 받고 있다. 남정탁 기자
이같은 풍경은 군도 마찬가지다. 다른 정부부처나 기업 관계자를 자주 만나는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김영란법을 국방 분야에 적용했을 때 허용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설명한 자료들을 배포하고 교육을 실시하는 등 김영란법 ‘시범 케이스’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데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관행들 중 상당수가 위법 소지가 있는 것으로 바뀌면서 현역 군인들과 군 당국에서 근무하는 민간 공무원들은 몸을 낮추는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군대 간 내 아들 보직을 행정병으로 바꾸어달라”는 등의 민원과 청탁은 완전히 사라질 분위기다.

◆ “일단 몸낮추고 보자” 바짝 긴장한 軍

김영란법이 28일 본격 시행되면서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등 군 당국도 긴장하고 있다. 보직이동이나 부대배치 등 인사 분야와 골프장 예약과 같은 복지시설 이용 청탁이 많은 만큼 김영란법을 위반하는 행위가 다른 정부부처보다 더 빨리 적발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법 위반으로 과태료를 내는 것도 문제지만 군 조직이나 언론에 ‘부도덕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경우 진급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것을 우려하는 기류도 있다.

김영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3만원 규정을 지키기 위한 ‘더치페이’가 정서상 어색하면서도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 전인) 27일까지 외부인사와의 점심 식사 비용은 내가 모두 냈지만, 28일부터 만나는 사람들과는 식사비를 각자 계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이 점심시간임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제현기자
국방부 청사가 위치한 삼각지 주변 고기집이나 술집에서 자주 열리던 술자리도 27일까지는 김영란법 시행 전에 술자리를 미리 가지려는 사람들로 제법 붐볐지만 28일부터는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 또다른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을 감안해 27일 저녁까지 술자리 약속이 계속 이어졌지만 28일서부터는 김영란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니 약속도 뜸해졌다”고 전했다.

김영란법 위반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기준인 ‘직무관련성’의 개념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군 관계자들도 눈에 띤다. 직무관련성은 향응이나 선물을 제공한 경우 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개념이다. 문제는 직무관련성이 애매모호하다는 점이다. 나의 직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을 어디까지로 산정해야 할지 알 수 없다보니 “일단 엎드리고 보자”식의 ‘복지부동’ 조짐도 보인다. 한 군 관계자는 “당분간은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김영란법 위반행위를 피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러워했다.

김영란법 시행을 놓고 군 관계자들의 생각은 “앞으로 어떻게 업무를 진행해야 하나”는 우려와 “저녁 모임이 줄어들어 잘됐다”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한 현역 군인은 “일주일에 3~4회 정도 술자리 약속이 있었는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당분간은 저녁에도 여유가 있을 것 같다. 업무 관련 청탁도 김영란법을 근거로 거절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반면 또다른 군인은 “외부에 부탁을 하는 것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김영란법으로는 애매한 부분이 있고 식사비를 각자 계산하는 게 어색해 외부 미팅 등 업무 수행에 지장이 있을까봐 우려된다”고 밝혔다.

◆ 국방부, 방사청 “부정청탁이나 접대 절대 불가”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법리적 해석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국방부는 27일 ‘김영란법 국방분야해설 및 사례집’을 발간했다.

국방부 감사관실이 제작한 사례집에 따르면, 김영란법 적용 대상 기관은 국방부와 소속기관, 합동참모본부, 육해공군, 국방부 직할부대 및 기관과 군인공제회, 전쟁기념사업회, 한국국방연구원,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국방전직교육원 등이다. 하사 이상의 계급을 가진 간부는 적용대상에 포함되지만 병사와 무기계약 근로자, 기간제 근로자 등은 제외된다.

사례집은 김영란법에 저촉될 사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면서 관계자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업무와 관련된 청탁은 받지도, 하지도 말고 외부의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행동도 미리 숙지해 위법 행위로 인한 사회적 물의를 예방하자는 차원에서다. 

각개전투훈련중인 육군 신병들. 육군 제공
부모가 군에 보낸 아들을 운전병이나 행정병 등으로 보직시켜달라고 현역 장교에게 부탁하면 과태료 등의 처벌을 받는다. 부탁을 받은 장교가 다른 군인에게 부탁하면 양측 모두 처벌 대상이다. 현역 장교가 과거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장교에게 원하는 보직을 부탁해도 안 된다. 국군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자녀의 순서를 바꿔 달라고 부탁하거나 여행장병안내소(TMO)에서 기차표를 정상적으로 발권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발권될 표를 자신에게 달라고 해도 법 위반이다.

부대장이 사업하는 친구에게서 부대원 격려 명목으로 100만원을 초과하는 돈을 받으면 처벌받는다. 다만 부대 지휘관이 부하 격려 명목으로 음식물이나 선물을 제공하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부대 공식 행사에 참석한 공직자 등에게 교통, 숙박, 음식물은 제공할 수 있다. 부대 개방 행사 때 지역 주민들을 초청해 음식, 선물을 제공하는 것도 김영란법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속지주의, 속인주의가 모두 적용되는 김영란법 특성상 국방 분야에 종사하는 군인과 공무원, 군무원들은 해외 공무출장, 여행 중에 발생한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외국군과의 군사외교, 국방정책회의 등에서 오가는 10만원 이상의 선물은 받을 수 있지만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신고해야 한다.

수류탄 투척훈련중인 육군 훈련소 신병. 육군 제공
통영함 음파탐지기 등 방위사업 비리로 몸살을 앓은 방위사업청도 김영란법 시행에 맞춰 국방부와 별도로 ‘방위사업 분야 청탁금지법 사례집’을 발간했다. 군수품 계약 등에서 부정청탁이나 향응 제공이 언제든 일어날 위험이 있으므로 사례집을 통해 김영란법 위반 가능성을 차단하자는 의미다.

일례로 국방과학연구소(ADD)연구원 A씨가 건설업을 하는 친구의 청탁을 받고 공사금액을 쪼개 수의계약 당사자로 선정되도록 할 경우는 부정청탁으로 간주되어 과태료 부과와 내부 징계, 형사처벌 등이 가능하다. 방위사업청 국장급 인사가 산하 기관 채용시험에 응시한 자녀 몰래 면접위원에게 합격 청탁을 하는 경우 양측 모두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와 내부 징계를 받게 된다. 방위사업청 직원이 골프 회원권을 가진 사업자와 함께 골프를 치면서 동반자에게 주어지는 회원 우대를 받아 그린피 할인을 받은 경우 차액을 전액 지불해야 한다.

반면 방위사업청 직원이 국회의원에게 조세 감면 관련 법률의 개정을 요청하는 것은 선출직 공무원이 공익을 위해 법령을 개정하는 과정에서의 건의로 간주되어 부정청탁에 해당되지 않는다.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는 사촌이 부친상을 당했을 때 조의금으로 50만원을 내는 것도 민법상 사촌을 친족의 범위에 해당돼 김영란법 제재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만 11촌 아저씨로부터 110만원 상당의 양복을 받았을 경우 민법상 11촌이 친족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제재대상에 들어간다.

김영란법 시행 첫 날인 2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공무원들이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남정탁 기자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이 사례집을 발간하며 내부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김영란법에서 금지하는 부정청탁이 완전히 사라질 것인지는 미지수다. 개인적 친분이나 인맥을 바탕으로 은밀히 진행되는 청탁은 조직 내부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려워 적발이 쉽지 않다. 김영란법이 군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내부고발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부고발을 일종의 ‘배신행위’로 보는 군의 풍토 속에서 내부고발이 제대로 이뤄지기는 어렵다. 극소수만이 아는 위법행위의 특성상 내부고발자의 신원이 노출되는 것도 문제다.

김영란법의 모호성도 부정청탁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다. 사례집에도 “상황에 따라 법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언급한 경우가 제법 있어 일선에서는 “일을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법적 모호성에 편승해 위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청탁을 할 경우 김영란법이 무력화될 수 있어서 “부정청탁은 하지도, 받지도 말자”는 군 차원의 의지가 없으면 김영란법 위반 사례가 줄을 이을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어 군 당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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