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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길] ‘모래시계 검사’ 실제 모델 함승희 강원랜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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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30 21:18:21 수정 : 2016-09-30 22: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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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임용된 후 시골촌놈 근성 나와… 돈·권력 있다고 으스대는 것 못 참아… 공직 노하우 활용 CEO 도전해볼 만”
지난해 12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강원랜드 호텔 앞에는 딸을 안고 활짝 웃는 모습의 ‘광부상(像)’이 세워졌다. 이 동상 앞에는 광부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김남주 시인의 시 ‘검은 눈물’을 새긴 시비가 설치됐다. 광부는 아내에게 ‘오늘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어 조금만 더 참자’고 말한다. 아빠 품에 안긴 딸이 ‘탄자루 자욱한 아빠 얼굴을 문지르면 검은 눈물이 아빠의 뺨을 타고 내린다’는 가슴 뭉클한 내용이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산 광부의 눈물겨운 삶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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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부상은 함승희(65) 강원랜드 대표이사가 우리나라 산업화의 원동력인 광부를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설치했다. 함 대표는 “방문객 가운데 강원랜드의 설립 배경을 잘 모르거나 광부의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있어 광부상을 제작해 세웠다”고 말했다.

에너지원이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면서 시행된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인해 탄광지역은 급격히 쇠퇴했다. 합리화정책 시행 전에는 정선과 태백 등 폐광지역 4개 시·군의 인구는 40만명이 넘었지만 2005년에는 21만여명으로 반토막났다. 당연히 탄광지역은 쇠락했으며, 일자리를 잃은 광부의 삶도 덩달아 피폐해졌다. 벼랑끝으로 내몰려 추락하는 폐광지역의 경제활성화를 위해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1998년 강원랜드가 설립됐다.


드라마 ‘모래시계’와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조직폭력배를 소탕하는 검사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함 대표는 강원랜드를 가족형 관광휴양지로 만드는 데 전념하고 있다.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공직 경험을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 같은 존재인 강원랜드의 건전한 성장에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함 대표를 지난 21일 강원랜드 본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함 대표는 강원도 양양이 고향이다. 중학생 때까지 공부보다는 농사일을 더 많이 했다. 6·25전쟁 때 집안 남자들이 대부분 숨지면서 일손이 부족했다. 공직에 있던 아버지는 외지에 나가 있었다. 증조할머니와 할머니, 고모 등 여자가 더 많은 집에서 장손은 농사를 거들 수밖에 없었다. 봄이면 들에 나가 논밭을 갈았으며, 겨울에는 가마니 짜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그래서 요즘도 웬만한 농기구는 다룰 줄 알며 이름도 줄줄 왼다. 이런 그에게 기회가 왔다. 중학교 3학년 때 강원도교육청이 주최한 국영수 경시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시험 결과 전체 2등을 했다. 인솔 선생님은 물론 집안 어른들도 모두 놀랐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자 부모님은 서울로 유학을 권유했다. 그래서 학교 이름도 모른 채 서울에 있는 양정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용돈이 넉넉하지 못해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집안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다.

중학교 때는 동네로 훈련나오는 탱크부대장이 멋있어 보여 육군사관학교를 진학할 생각을 가졌다. 학비부담을 더는 것은 물론 리더십이 있고 목소리가 우렁차 군인이 성격에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1등을 차지하면서부터 선생님들이 법대를 권유해 큰 고민 없이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사법시험 합격 후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 시절 1년간 조직폭력배 280명을 구속하며 이름을 날렸다. 대학과 사업연수원 시절에는 큰 사건을 수사해 유명한 검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검사 임용 후 시골촌놈 근성이 나왔다. 함 대표는 “돈 있고 권력 있다고 으스대며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보면 참지를 못했다”면서 “거악(巨惡)을 잠 못 들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수사에 몰입했다.

수사 초기에는 별것 아닌 것 같던 사건도 물고 들어가면 사건이 커졌다. 말단 공무원을 대상으로 수사를 시작했는데 일을 하다 보면 세무서장, 경찰서장이 걸려드는 식이었다. 새마을사건 비리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경환씨를 구속하면서 세상에 죄가 있다면 못 잡아 넣을 사람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함승희 강원랜드 대표가 지난달 21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강원랜드 호텔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원랜드는 2014년 11월 함 대표 취임 후 고강도 내부 개혁으로 부패방지 시책 평가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정선=남정탁 기자
검찰 조직에서 인정받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힘있는 자와의 대결이 마치 소명처럼 느껴졌다. 밀리면 바보이고, 정의와 검찰이 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년검사 시절 성실성과 탁월한 수사능력 때문에 ‘생각이 바른 검사’, ‘천생 검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고집이 세고 다루기 어려운 검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함 대표는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3년 동화은행장 비자금 수사를 했다. 노태우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으로 월계수회를 만든 박철언 전 의원을 타깃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안영모 동화은행장은 월계수회 회원이고 간사인 데다 돈줄이었다. 한참 수사를 진행하던 중 당시 홍준표 검사가 맡은 슬롯머신사건으로 박철언 전 의원이 구속되면서 타깃을 놓쳤다. 힘이 빠졌다.

함 대표는 이왕 시작한 거니까 끝을 보자는 각오로 동화은행장 비자금사건 수사를 계속하자 재벌기업 비자금으로 연결되고 이원조 의원이 관련된 정황을 포착했다. 이 의원의 계좌를 추적하면서 정치자금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 의원은 금융위원장 등으로 근무하면서 자금을 모으고 국회에 입성해 재경위원장을 맡으면서 선거 때마다 정치자금을 조달하고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선거자금도 알려졌다. 현직 대통령의 선거자금이 나오면서 사건이 유야무야됐다. 그 전 단계로 노태우 비자금이 나왔다. 노태우 전두환에 대한 수사는 함 대표가 검찰을 떠난 6개월 후쯤 시작됐지만 비자금 단초를 찾아내 제공하는 성과를 거뒀다. 함 대표는 “정치인과 기업비자금 수사를 두 달 정도 벌이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사 100명을 구속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사 확대를 버거워한 정권에 의해 해외연수를 떠나야만 했다. 홍준표 검사의 슬롯머신 수사에도 많은 조언을 했다. 홍 검사는 자신이 쓴 책에 유일하게 검찰에서 존경하는 선배로 함 대표를 거론했다.

검찰을 떠난 함 대표는 김대중정부 때 정치에 입문했다. 보수적이고 권력에 맞서는 정의로운 검사 출신으로 정권 홍보에 도움을 줬다. 여소야대 시절 각종 청문회의 여당 간사를 맡으면서 야당의원보다 더 날카로운 질문으로 유명했다. 당리당략보다는 소신으로 정치를 하자 당에서도 부담스러워했다.

화려한 검사 경력을 자랑하는 함 대표는 요즘 세상을 흔들고 있는 법조비리에 쓴웃음을 지었다. 함 대표는 “검사장까지 했으면 바르게,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인데도 비리로 무너지는 것을 보면 안타깝고 개인적으로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돈이 필요했으면 검찰을 떠나면 된다는 쿨한 대답을 내놨다. 함 대표는 “검사장 자리가 예전 같으면 가문의 영광이어서 가족이 사표내는 것을 말렸지만, 요즘은 검사장이라고 해서 껌뻑 죽을 만큼 위상이 높은 것도 아니어서 하룻밤만 고민하면 쉽게 그만둘 수 있는 자리다”고 했다.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을 비난할 수만은 없지만 책을 쓴다거나 제2의 직업을 선택하는 것에서 삶의 보람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

판검사를 하면서 쌓은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고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하면 기업CEO에 도전할 만하다고 했다. 그는 “관피아, 정피아라고 욕하지만 이게 나쁜 것은 끼리끼리 뭉쳐 다니면서 안 되는 것 봐주고 멋대로 인사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했다. 공직을 경험한 사람이 노하우를 살려 몇년 동안 풀지 못한 숙제를 해결하고 기업의 위상을 바로잡으면 멋지게 CEO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함 대표는 “강원랜드를 맡고 있지만 더 이상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 허가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대표이사가 되고 나서도 내국인 출입 카지노가 국가사업으로 허가되는 것은 더 이상 안 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함 대표는 “마카오나 라스베이거스는 그 시설의 역사적 배경이 있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또 그 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이 카지노를 그저 하나의 오락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지 일확천금을 벌겠다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돈을 따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국가 허가사업으로 해 국가재정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은 옳은 접근 방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매년 수십조원씩 도박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본토에 카지노를 허가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도박과 마약이 나라를 망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국인 출입 카지노 허가는 마약을 심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폐광지역에 강원랜드가 들어선 것은 그 당시 더 이상 대안이 없는 절박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현재는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됐는데도 카지노를 하나의 재정충당과 지역발전의 밑거름이라고 생각하면 정상적인 사고가 아니라고 했다.

자칫하다가는 외국 카지노재벌에 휘둘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샌즈그룹 관계자가 지난해 강원랜드에 찾아와 인천에 공동투자 형식으로 카지노를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중국인을 유치하면 강원랜드 배당몫이 돌아오니까 재정적으로 이득이 아니냐고 권했지만 함 대표는 인천에 카지노가 들어서면 서울과 수도권이 모두 망가진다며 거부의사를 확실하게 전했다. 외국 카지노업체는 궁극적으로 내국인 출입 카지노 설치가 목적이라는 뻔한 수법을 알기에 단호하게 반대했다.

요즘 강원랜드 관광객은 아이를 둔 30∼40대 젊은 부부가 대부분이다. 지난 여름 3개월 동안 젊은 부부가 내장객 중 80%를 차지했다. 예전에는 중장년층이 골프나 카지노를 위해 찾았던 것과 비교된다. 젊은 부부들을 위한 가족형 종합리조트로 만들기 위해 트레킹 코스를 만들고 음악회 등 다양한 즐길 거리를 마련했다.

3대 가족이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도 변해 가고 있다. 리조트 내에 워터파크를 만들고 호텔 앞 잔디밭을 산책길로 만들고 있다. 겨울에는 피겨스케이팅을 즐길 수 있다. 호텔과 콘도 사이의 숲속에는 아이와 부모가 즐겨 찾을 수 있는 북카페를 조성 중이다. 자연탐구 중심의 북카페를 만들고 있다. 스키장 꼭대기인 마운틴 탑에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와 콘도광장에서 내린 뒤 걸어서 북카페를 가고, 여기서 센트럴 가든과 워터파크, 역사체험시설인 동원탄좌 교육장까지 하나로 연결되는 관광코스를 만들고 있다.

함 대표는 청년들이 꿈과 희망을 말하는 것을 주저한다는 것은 그들이 나약해지고 위축되고 소심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안 되더라도 치고 나가는 것이 젊음이라고 했다.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정규직 100명을 신입사원으로 뽑는다.

함 대표는 현재 강원랜드 매출 비중은 카지노가 95%이고, 비카지노 부문이 5%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궁극적으로는 70대30으로 가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임기 동안 90대10을 이뤄 4계절 가족형 종합리조트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함 대표는 “검사, 국회의원은 곧잘 했는데 CEO는 과연 잘할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의외로 잘했다. 역시 한가지를 잘하면 모든 것을 잘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주어진 업무를 성실히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정선=박연직 선임기자 repo21@segye.com

◆ 함승희 강원랜드 대표는…?


△1951년 강원도 양양 출생 △서울 양정고, 서울대 법대 졸업 △사법시험 22회, 사법연수원 12기 △서울지검 형사부, 특수부 검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 △대전지검 서산지청장 △법무법인 대륙 대표 변호사 △16대 국회의원 △제17대 박근혜 대통령후보 클린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친박연대 공천심사위원장 △강원랜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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