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퍼닉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레비스타디움에서 열린 그린베이 패커스와 경기에 앞서 진행된 국가 연주 도중 기립을 거부했다. 캐퍼닉은 성조기가 펄럭이고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국가가 연주될 때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캐퍼닉은 경기가 끝난 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생각을 담아 기립을 거부했다”며 “흑인과 유색인종을 억압하는 나라의 국기에 자부심을 보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캐퍼닉은 이전부터 트위터에서 부당하게 억압받는 흑인과 유색인종을 옹호하는 발언을 지속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대해 지지의사를 표명하며 인종차별을 비판했다.
1931년 미국 국가가 된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영·미 전쟁이 한창이던 1814년 볼티모어 인근 매킨리 요새 전투에서 미국이 승리한 데 영감을 얻은 프랜시스 스콧 키가 쓴 시에 곡을 붙인 노래다. 문제는 키가 노예제 폐지에 반대했고, 흑인에 대해 “열등한 인종”이라고 주장했던 당사자라는 점이다.
캐퍼닉은 지난 1일 샌디에이고 차저스와의 시범경기에서도 국민의례를 하지 않았다. 이때는 팀 동료 에릭 리드도 동참했다. 시애틀 시혹스의 코너백 제러미 레인도 오클랜드 레이더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이들과 함께 보조를 맞췄다.
언론과 SNS에서는 그의 행동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표현의 자유’와 ‘애국심’이라는 2개의 가치를 두고 빚어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캐퍼닉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조금 더 강하다. NFL과 그의 소속 구단은 국민의례에 기립하는 게 선수의 의무는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NFL의 커미셔너인 로저 구델은 캐퍼닉의 행위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저항할 권리 자체는 인정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면서 주요 정치인들까지 가세했다. 트럼프는 “끔찍하다”며 “그(캐퍼닉)는 자신에게 잘 맞는 나라를 찾아야 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이라고 주장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그의 입장에 동의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가 원하는 환경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 있는 권리를 정부는 인정하고 보호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별다른 발언을 내놓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열린 중국 항저우에서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의사를 정당하게 표현하는 캐퍼닉의 행동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라며 “그가 헌법의 기본권을 행사했다”고 옹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캐퍼닉이 한 일은 논의가 필요한 주제에 더 많은 토론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그렇게 해 온 역사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 국가에 거부감을 표시한 스타들은 그 이전에도 존재했다.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은 1972년 자서전에서 “나는 일어서 국가를 부를 수도, 국기에 인사할 수도 없었다”며 “나는 백인 나라에서 일개 흑인이었을 뿐”이라고 고백했다. 미국프로농구(NBA) 덴버 너기 소속 선수였던 마무드 압둘 라우프는 1996년 3월 올랜도 매직과의 경기에서 국가 연주 당시 기립을 거부해 한 경기 출장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이번 논란을 부른 캐퍼닉은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의 혼혈아로 1987년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태어났다. 캐퍼닉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가족을 떠났고, 캐퍼닉은 아들 2명을 둔 백인 가정에 막내로 입양돼 자랐다. 풋볼은 8살 때부터 시작했다. 극우 매체들을 중심으로 캐퍼닉이 여자친구 영향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그는 이를 음모라며 부인했다.
워싱턴=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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