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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인형극 보는 듯…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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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05 20:34:07 수정 : 2016-09-05 20: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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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자 정금형 작가 10월 23일까지 전시회 사물과 사랑에 빠진 여자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정금형(36)작가. 그는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자연스럽게 자신과 사랑의 장면을 만들어 낸다. 사물이 주인공인 공연을 하고 싶어 여러 방면으로 연구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젠 미술계에서는 미술로 보고 연극계에서는 공연으로 대접을 해주고 있다.

정금형 작가가 그동안 함께 연기했던‘사물 배우’들 앞에 서 있다. 그는 기계와 같은 사물을 ‘조련’시켜 상대 배역으로 삼아 작업을 한다.
그는 2009년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오르가즘에 집착하는 6가지 방법’이란 부제 아래 기계 등 사물과 성애를 나누는 공연을 선보이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남성의 가면을 쓴 진공청소기가 작가의 몸을 핥거나 남자의 두상이 달린 허리 마사지 헬스머신과 야릇한 행위를 반복하는 특유의 관능적 작업들은 객석의 관객들을 불편한 유희적 상황으로 내몰았다. 지난해에는 남성성이 깃든 사물들을 부각시키는 작품을 서울시립미술관의 ‘동아시아 페미니즘’전에서 보여주기도 했다.

“사물자체의 특성을 부각시켜 상대역으로 삼으면 자연스럽게 서로 사랑하는 장면이 만들어져요.”

그러나 이런 야릇한 공연 앞에서 작가보다 관객이 오히려 더 멋쩍음을 느낀다. 관음의 대상인 은밀한 행위를 다른 이들과 같이 지켜봐야 하는 당혹스러움 때문이다. 

작가가 함께 부대끼며 작업했던 ‘사물 배우’들.
“물건들이 무대 위에서 상대배우처럼 살아 움직이도록 하려면 물건들을 직접 개조하거나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방법을 터득할 때까지 연습을 반복해야 해요.”

움직일 수 없는 인형이 작가의 옷을 벗기려면 손가락 움직이는 연습, 물건 집는 연습 등을 순서대로 해야 비로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학부(호서대)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무용을 전공했다. 모두 다 몸의 움직임과 관련된 학문이다.

“제가 좋아하는 인형극도 무생물인 사물을 실제 사람처럼 여기고 연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제가 사물과 연기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봐요.”

심폐소생술 연습 인형과 사랑에 빠진 작가.
그는 제16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자로 10월 23일까지 강남구 신사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전시를 갖는다. 그동안 쓰였던 도구들을 작품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제가 어떤 사물들을 선택했는지 종류별로 보여주니 재미가 있네요. 저의 상대 배우들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자리라 할 수 있어요.”

사실상 그의 소장품 같은 것이다. 몸과 사물에 대한 그의 탐구는 미술과 연극계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다.

전시장엔 사물이나 인형들을 움직이게 하는 테크닉이 실린 책자들도 보인다. 생명을 불어넣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재활훈련 책자, 기계와 인체구조 책들이다.

“재활훈련은 움직임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작품 ‘휘트니스 가이드’에서 재활동작을 연습하고 있는 작가.
전시장 진열대에는 성인용품점에서 파는 마네킹부터 재활치료용 도구까지 즐비하다. 드론과 헬스머신도 보인다. 이런 도구들을 가지고 벌인 공연 영상물들도 함께 볼 수 있다.

“제가 왜 이런 작업을 하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몸을 움직이는 연극과 무용을 했으니 늘 몸으로 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앞으로 나갈 뿐이에요.”

그에겐 연극을 한다는 생각도 미술을 해야지 하는 관념조차도 없다.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다.

“저는 더 이상 이런 걸 왜 하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왜 살지와 같은 물음이니까요. 계속 무언가 하는 것이 제겐 화두죠.”

그래도 사람들은 왜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그에게 쏟아낸다.

“운동기구, 의료기구, 성인용품 등 사물을 상대역으로 삼아 뭘 표현할지가 저의 주된 관심사입니다. 기계움직임을 리듬 삼아 안무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진공청소기나 사다리, 굴착기나 의료용 인체 모형, 운동 기구와 의료 도구, 재활 기구 등과 같이 일상 삶의 맥락에서 특정한 용도에 따라 각자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사물들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움직여보고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면서 엉뚱한 상상을 펼쳐간다.

작품 ‘휘트니스 가이드’는 운동기구와 작가의 야릇한 성애 동작을 연상시켜준다. 의료용 뇌모형이나 얼굴모형을 접합해 의인화된 운동 기구는 이 상상의 기괴함과 발칙함을 더욱 증폭시킨다.

작품 ‘재활훈련’에서도 작가는 의료용 인체 모형을 상대로 지난한 재활훈련을 실시한다. 종국에는 인체 모형과 작가가 사랑의 행위를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른다. 그는 사물들을 보다 특별하게 사용하기 위해 전문적인 사용법을 습득하거나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사물을 교감하는 배우로 위치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호흡 등 살아 있는 게 뭔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심폐소생술도 배우게 된 동기죠. 움직이게 하면 결국엔 사랑에 이르지요. 생명은 그래서 사랑인 것 같아요.”

그는 공연이 끝나고 마네킹 등 사물들을 싸서 움직일 때면 장례식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생명(움직임), 사람, 죽음이라는 ‘인간 대서사시’에 다름 아니다.

“어릴 적 여자아이들이 그렇듯 인형놀이를 즐겼어요.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내 호흡과 몸짓으로 다양한 사물들을 찾아내어 생명의 몸짓을 불어넣는 작업에 애정을 갖게 됐다고 할 수 있지요.”

그는 인형 등 사물을 가지고 역할극을 하고 있는 셈이다.‘사물 배우’에 대한 관찰과 탐구를 계속해온 여정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기계를 작동하고 조종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연극 연출이자 무용의 안무나 다를 게 없다.

“기계의 움직임 자체가 매력적이에요. 반복되는 동작과 리듬이 재미있지요. 안무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는 자신의 작업을 “큰 맥락에서 사물하고 관계 맺기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사이보그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자신이 빚은 여인상 갈라테이아와 사랑에 빠졌던 조각가 피그말리온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제 움직임으로 이 사물도 움직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이렇게 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무엇인가 탐구하게 돼요. 난 왜 얘를 움직이게 하고 싶어 하나. 얘가 나를 만졌으면 좋겠고, 그렇게 할 때 명확한 (작업의) 목적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의 작업은 어쩌면 인간 몸과 몸에 대한 욕망의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김윤경 큐레이터는 “정금형은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이며 혼자서 훔쳐볼 때 쾌감이 발생하는 관음증을 기반으로 한다”며 “그러나 관람객이 공개된 장소인 전시장에서 작품을 관람하면서 관음증이 증발된다”고 평했다. 연극과 현대무용을 전공한 덕에 시각예술로까지 분야를 확장해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정금형 작가는 이제 미술계에서 당당히 한 지점을 점유하고 있다.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은 이를 확인해주고 있다. 지난 2000년 외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미술을 지원하기 위해 제정된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은 올해로 16회를 맞이했다. 첫 회에 장영혜가 수상한 데 이어 2001년 김범, 2002년 박이소, 2003년 서도호, 2004년 박찬경, 2005년 구정아, 2006년 임민욱, 2007년 김성환, 2008년 송상희, 2009년 박윤영, 2010년 양아치, 2011년 김상돈, 2012년 구동희, 2013년 정은영, 그리고 2014년 장민승이 선정된 바 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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