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사가 거칠다. 빌린 책에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상스럽다고만 여기지 말고 달리 생각해보자. 책을 빌린 사람은 열혈독자였고, 자신의 독서가 허접한 책 때문에 방해 받은 것에 분개하고 있다고 보면 어떨까. 18세기 조선에 책을 빌려주는 ‘세책점’(貰冊店)이 성업하면서 이런 사례가 많아졌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세책과 방각본’ 전시회에 가면 더 노골적인 불만을 여러 건 접할 수 있다. 지배층이 독점하던 책이 대중화되면서 벌어진 재밌는(?) 풍경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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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책점에서 빌린 책에 대한 불만을 적은 낙서는 18세기 조선의 독서열기를 보여주는 한 풍경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
독서열풍을 이끈 건 소설이었다. 18∼19세기에 이르러 상품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부유층이 생겼고, 이들은 양반 중심의 문학을 서민층으로 넓혔다. 문학의 상품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소설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던지 정조는 소설금지령을 내릴 정도였다. 소설에 너무 몰입해 영웅이 실의하는 대목을 접하고 칼로 사람을 찌르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책을 빌려주는 세책점의 등장은 이런 상황에서 가능했다. 전시회에는 실제 모습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을 바탕으로 세책점을 재현했다. 목판을 이용해 대량으로 찍어낸 책인 방각본의 여러 양상도 살펴볼 수 있다. 소설 대중화의 주역이었던 방각본은 한양뿐만 아니라 전주, 안성 등 지방에서도 나왔다.
국립중앙도서관 관계자는 “젊은이들이 인터넷,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책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것 같다”며 “200여년의 세책과 방각본을 통해 옛사람들의 독서열풍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회는 11월 30일까지 진행된다.
강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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