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시범운영으로 시작된 중학교 자유학기제가 올해 전국 중학교에서 전면시행됐다. 자유학기제는 학생들이 중학교 한 학기 동안 중간·기말고사를 보지 않는 대신 적성과 진로를 탐색하도록 수업을 토론과 실습 등으로 진행한다. 아직은 시행 초기이지만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인 문제해결력 향상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보완해야 할 점도 많다. 자유학기제의 연착륙을 위해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교육시설재난공제회 회의실에서 본지 지원선 부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자유학기제, 성과와 발전방안’ 특별좌담에는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권오현 서울대 교수(전 입학본부장), 부산 명지중 조우성 교사, 서울 청운중 김은아 교사, 학부모 김지은씨가 패널리스트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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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교육시설재난공제회 회의실에서 열린 ‘자유학기제, 성과와 발전방안’ 특별좌담에서 패널리스트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오른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조우성 부산 명지중 교사, 김지은 학부모(세종시 종촌중), 김은아 서울청운중 교사, 신익현 교육부 학교정책관, 권오현 서울대 교수,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세계일보 지원선 부국장. 남제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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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
그동안 우리 교육은 지식전달 위주로 진행돼 왔다. 이것이 우리나라 성장과정에서는 유용한 교육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가 급변하면서 창의성과 인성, 도전정신과 같은 가치를 키워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와 함께 4차 산업혁명이 이미 도래한 현재 교육은 어떻게 돼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새로운 분야의 선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 방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미래의 변화를 이끌어가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서 도입된 게 자유학기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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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지원선 부국장 |
조우성 교사: 학생들이 자기 삶의 주체가 돼 간다는 느낌이다. 기존의 교육은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정답을 받아 적는 주입식이었다. 일방적으로 받는 수업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자유학기제 실시 이후에는 왜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와 같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기 삶의 주인으로 들어서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면서 더 적극적으로 학업에 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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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서울청운중 교사 |
지 부국장: 자유학기제의 긍정적인 면과 달리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학력저하를 우려하는 경우도 적잖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학부모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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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학부모 |
사실 학력저하는 조금 있을 수 있다. 영어단어나 수학 공식을 좀 덜 외울 것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저축을 할 때 ‘집을 사겠다’와 같은 목표가 있을 때는 돈을 벌면서도 재미가 있다. 마찬가지로 꿈이 있고, 이로 인해 공부를 하는 목표가 있다면 공부가 재미있을 것 같다. 일시적인 학력저하는 있을 수 있지만 앞으로 학생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지 부국장: 학력저하에 대한 우려는 결국 대학 진학과 관계된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까지 서울대 입학본부장을 했던 권 교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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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 서울대 교수 |
최상위권 일반고 학생들을 추출해 면담을 한 적이 있다. 수학을 예로 들면 문제를 풀고 듣기만 한 게 아니라 친구와 말로 서로 설명을 해보고, 교사와도 대화를 많이 나누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준비를 하고 있다는 학생들이 많았다. 다시 말해 교사가 말하는 것을 받아적고 문제를 푸는 수업, 이러한 교육이 학력인 것처럼 보이지만 말로 표현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돼야 진정한 지식이라 생각한다. 이런 것을 ‘말문 리더십’이라고도 얘기한다. 따라서 자유학기제 토론식 수업 등을 통해 이런 것들이 누적되면 절대 학력저하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유학기제 취지와 대학의 인재상이 일치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대입 학생부종합전형을 고등학교만이 아닌 중학교 1학년 자유학기제부터 적용하고, 두 제도의 정책적 가치가 호응한다면 미래사회 요구에 부응하는 학교 교육 개선에 큰 동력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 부국장: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향후 5년간(202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대신 21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으로 봤다. 자유학기제가 4차 산업혁명 등 향후 진행되는 산업구조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더 다져져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2학기에 중학교 98%가 자유학기제를 시행하는데, 교육부의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이 부총리: 자유학기제 정착에는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공공기관, 민간기업 등 기관들이 모두 나서야겠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현장 교사들이다. 교사 입장에서는 자유학기제로 업무부담이 늘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를 가르치는 보람으로 극복하고 있지만. 업무부담을 최소화하려는 것은 물론 사례공유 및 연수와 같이 교사들의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적극 지원을 하고 있다.
체험처가 부족한 농산어촌과 도서벽지의 경우 대학에서 1박 2일로 초청을 해 진로체험을 돕거나 진로체험 버스를 운영해 학생들에게 도시 못지않은 좋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안전문제 역시 지자체 및 경찰과 협력해 지원을 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 부국장: 어떤 정책이든 현장에 착근하기 위해서는 원년이 중요하다. 자유학기제도 올해 잘 진행되면 이후에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1976년에 도입했다 학습능력 저하로 2007년 폐지한 유토리 교육(餘裕敎育, 여유교육)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자유학기제가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고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한 제언을 부탁드린다.
권 교수: 2009년 입학사정관제 도입 당시에도 교육적인 취지에는 동의를 하면서도 성취도 저하로 내려갈 수 있다는 우려를 많은 분들이 유토리 교육의 사례를 들며 말씀을 해주셨다.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진정한 의미의 성취도, 학력이 뭔가라고 생각해보면 우리가 잘못된 성취도를 표준화해 거기에 너무 매달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 입학본부장을 하며 서울대에 지원하는 학생들을 지켜보니 아무리 우수한 학생이라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중심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자기가 배운 것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창의적인 형태의 면접과 구술고사에서는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 자유학기제에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이어지는 이 구도를 통해 능력기반의 학력이 아닌 열정과 자기주도, 신중함, 소통능력과 같은 역량 기반의 학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이 뭔지를 중점적으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 교사: 교사 1명이 학급당 학생수가 30명인 상황에서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제대로 알기는 물리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6명 정도의 모둠을 만들어 각자 분담하고, 모둠에서 정리해 발표하는 과정을 만들었다. 이렇게하다 보니 학생들이 서로의 멘토가 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발생했다. 그런데 서로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유학기제에서는 가능하지만 자유학기제가 아닌 일반학기에서는 어렵다. 학급당 학생수를 25명까지는 줄어야 한다. 교사가 마음껏 수업을 할 수 있는 학습공간도 부족하다.
김지은 학부모: 자유학기제가 끝나고 2학년에 올라가면 시험이 갑자기 늘어나고 수업 분위기도 많이 바뀐다. 이에 따른 부담이 학부모나 학생 모두에게 있을 것 같다. 학생들이 변화한 분위기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 아직 대부분 학부모들은 자유학기제 기간을 사교육의 기회이며, 선행학습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저도 마찬가지였다. 학부모들이 이런 인식을 깨야 하지만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다. 학부모들에게 충분히 홍보를 해 이런 인식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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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 부산 명지중 교사 |
대담 지원선 부국장·정리 이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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