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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삶 나의길] “고시는 거들떠보지도 않아… 다시 태어나도 교수 될 것”

입력 : 2016-06-25 16:00:00 수정 : 2016-06-24 21: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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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꿈은 교수
중학생 시절부터 헌법에 끌려
법대 갔지만 판검사엔 무관심
하루 대여섯 시간 잠 자며 연구 몰두
‘헌법학의 대가’, ‘영원한 헌법학자’. 여든세 살의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와 헌법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의 삶 자체가 헌법이라 할 수 있다. 중학생 시절 제헌국회가 헌법을 만드는 과정을 보고 헌법에 관심을 가졌고, 대학 다닐 땐 발췌개헌 등 정치파동에 충격을 받고 헌법학자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시대상황이 그를 헌법에 눈을 뜨게 하고, 헌법학자로 몰아넣었을까. 법대에 진학했지만 고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평생 연구실에 틀어박혀 헌법 공부만 했다. 공부가 적성에 맞아 다시 태어나도 교수가 되겠다고 했다.


요즘도 하루 대여섯 시간 잠을 자며 연구에 집중한다. 1년에 1권 정도 책을 냈고, 지금껏 펴낸 책만 해도 50∼60권이다. 팔순 때는 3권을 한꺼번에 내기도 했다.

헌법학자로서의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유신헌법은 그에게 시련을 주었고, 잠시 강의를 중단까지 해야만 했다.

1973년 1월 헌법책을 발간했는데 책 나오는 날 몽땅 몰수당했다. 유신헌법은 독재주의적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유신 당국은 프랑스 정부 형태를 모방한 선진국형 헌법이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유신헌법은 행정권이 대통령과 총리로 나뉘어져 있는 프랑스식 이원정부제가 아니라 독재요소가 있는 이원집정부제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헌법학 대가인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17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제일 큰 문제점은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는 것”이라며 “초등학생도 대통령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자기 집 강아지처럼 생각하는 이런 나라가 어디 있냐”고 개탄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중앙정보부장과 법무부장관을 지낸 신직수씨가 나서 책을 내지 말라고 만류했으나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중앙정보부에 자진출두 형식으로 나가 1주일간 ‘억류’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대학 동기인 최석원 치안국장에게 “김철수가 당신 친구라며. 잘 타일러 보라”고 당부까지 했다. 그는 헌법학자로서의 양심과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헌법책 초판 3000부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7000∼8000부를 빼앗겼다. 우여곡절 끝에 책이 나왔으나 대신 강단에 설 수 없게 돼 한국을 떠나 미국에 가야 했다.

‘진보주의자’냐는 물음에 그는 “유신 전에는 정부를 그렇게 비판하지 않았다. 헌법에 나쁜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1963년부터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 할 때의 일화를 보면 그의 성향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은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매일 하다시피 했다. 정대철(전 국회의원) 법대 학생이 자기 아버지(정일형씨)가 제2공화국에서 외무부장관을 할 때 일본과 협상하며 8억불 받기로 했는데 (박정희정부가) 3억불을 받는 게 말이 되느냐는 식으로 주변 학생들한테 말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큰일 나겠다’ 싶어 그를 학장실에 ‘연금’시킨 일도 있었다. 그러면서 정부보다는 학생 편에 섰다. 김 교수는 유신 정부가 시위학생 명단을 만들어 제명하라고 통보했을 때 교수회의에 참석해 “제적하면 복학이 안 되므로 무기정학을 시키자”고 제안했다. 무기정학은 내일이라도 풀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10명을 제적하라고 했는데, 40명을 무기정학시키자, 언론과 학부형, 동창회는 “무기정학이 말이 되느냐”며 발칵 뒤집혀졌다. 며칠 후 유기천 서울대 법대학장이 총장이 되자 언론은 속사정도 모르고 40명 학생을 희생시켜 총장으로 올라갔다고 기사를 썼다. 유 총장 취임 후 얼마 안 돼 40명을 모두 다 풀어줬다고 한다. 

김 교수 중학생때 사진
‘외골수 기질’은 스승에 대한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우리 시대에는 한자리 하고 싶어 날뛰는 선생이 많아 별로 존경하는 분이 없다. 그래도 자기 뜻대로 열심히 하신 분은 유 총장이 아닌가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서울대 총장까지 했지만 학생들을 그렇게 못살게 굴지 않았다. 서울대에 사법대학원을 만들어 미국식 법관 양성제도를 해보려고 노력도 했고, 유신 때 박정희가 대만식 총통제로 독재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분은 종강을 한 뒤 복직도 못한 상태에서 중앙정보부가 자신을 잡으러 온다는 정보를 사전에 듣고 망명 비슷하게 미국에 갔다. 정부는 학교에 출근 안 했다는 이유로 그를 면직처리했다. 이에 행정소송을 했고, 박 대통령이 돌아가신 후 승소해 서울대 교수로 복직했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 집권 후 잡혀 들어가 정년퇴임도 못했다. 미국에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헌법책으로 유신에 저항한 김 교수와 유 총장의 처지가 닮아 보였다.

그의 손을 거쳐 간 제자는 부지기수다. 박사 22명, 석사 67명이 김 교수의 논문 지도를 받았다. 정년퇴임 후 50여명의 제자들이 돈을 모아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서울대에 연구실을 하나 만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17일 오후 김 교수의 개인사무실인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진행됐다. 그는 사진기자 요청으로 5분여 동안 잠시 포즈를 취한 후 쉼 없이 말을 이어갔다. 2시간이 지나서야 테이블에 놓여 있는 물로 한 차례 목을 축였다. 대학에서 학생을 상대로 강의하듯 열변을 토했고, 등장인물, 날짜, 당시 상황과 배경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옛날에는 밤을 새우며 원고지 20∼30장을 썼는데 지금은 그게 잘 안 된다. 요새 눈이 어두워 글자가 잘 안 보여 연구하는 데 힘이 든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헌법 연구는 한시도 놓지 않는다. 그는 곧 ‘한국통일의 정치와 헌법’이라는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내년엔 ‘인권의 본질과 체계’에 관한 책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언제까지 연구를 할 것인지 궁금했다.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앞으로 계속 연구를 할 것”이라는 게 그의 각오다.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개헌문제를 꺼냈다. ‘헌법학의 태두’답게 ‘김철수 헌법론’을 일목요연하게 말했다. 책에서만 본 그의 헌법론이 육성을 통해 귀에 쏙쏙 들어왔다. 한국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해야 하는 필요성과 당위성을 역설했다.

―개헌에 대한 입장은.

“현재 대통령제는 총리 임명권 등 모든 권한을 갖고 있다. 대통령제가 책임정치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무책임제다. 임기 5년 가운데 1,2년은 배우고 임기 말 1,2년은 레임덕(권력누수현상)으로, 실제로 일할 시간은 기껏 2,3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대통령은 직선, 총리는 국회에서 선출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가야 한다. 대통령 임기는 6년이면 좋다. 대통령 4년 중임은 결국 임기 8년을 하자는 얘기다. 첫번째 임기 4년은 다음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재선 운동을 해야 하고, 두번째 4년 임기 취임 첫날부터는 레임덕이 일어나는 문제점이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 임기는 있지만 총리 임기가 없는 것이 장점이다. 대통령과 총리가 다른 당에서 나올 수 있어 대연정을 통해 총리는 잘하면 10년을 할 수 있다. 또 총리가 책임지고 1년 만에 물러날 수도 있다.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절충형으로 국회해산권과 내각불신임권을 대통령과 국회에 각각 부여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재작년 국회의장 위촉으로 헌법개정안을 만들었다. 작년에는 개인적으로 통일헌법을 만들었다.”

―문제의 핵심은.

“지금 대통령제에서는 양대 정당만이 육성될 수밖에 없는 등 좋지 않은 점이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1%만 이겨도 당선되기 때문에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선거를 한다. 나라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 정치가 상생이 아니라 골육상쟁이다. 적어도 몇개 정당은 있어야 하고, 다당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면 상생정치가 가능하고 연정, 연대 등을 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 ‘협치’라고 말하는데 시중에서는 ‘협박정치’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만큼 정치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좋지 않다는 의미다. 사생결단식 정치를 지양하고 정당 간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개헌 시기는.

“내년 4월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국민투표를 하면 통과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 일정 등을 고려하면 올해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해 정기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

―헌법 개정이 쉽지 않을 텐데.

“어렵지도 않다. 의원들이 그동안 권력구조 개편 등을 포함해 개헌을 연구하며 여러 방안을 마련했다. 그중에서 채택하면 된다. 대통령이 반대하지만 여당 내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찬성하고 있다. 대선 후보 몇사람이 반대해도 장관과 총리를 하고 싶어하는 국회의원들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더 지지할 것이다. 현재 거론되는 대선 후보 가운데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 않으냐.”

―헌법 개정에 참여한 적이 있나.

“참여한 적은 없고 안을 만들어 제출한 적이 있다. 1980년 1월, 최규하 대통령 시절 최 대통령과 김영삼, 김대중 양측을 다 아는 강원룡 목사가 헌법개정안을 만들어 달라고 해 나를 포함해 ‘6인 교수’들이 양김이 동시에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이원정부제안을 제출했으나 전두환 대통령의 등장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통일헌법은 통일을 대비해 만든 것인가.

“몇십년 전에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때는 여러 사람이 했고 이번에는 혼자 하게 됐다. 통일이 되면 헌법을 만들려고 했는데 기다릴 수가 없게 되었다. 외국의 예를 조사·비교했고, 세계의 자유민주주의 헌법에서 가장 앞선 것을 조문으로 만들었다. 북한은 민주법치주의 나라가 아니어서 헌법을 참조할 것이 없었다.”

김 교수는 “언론이 이원정부제를 이원집정부제로 쓰는데, 유신 때 내가 헌법에 독재요소가 있어 이원집정부제라고 책에 처음으로 사용했다. 정부에서 신대통령제, 독재제로 하면 안 된다고 해서 그렇게 붙인 것이다. 나폴레옹 시대도 집정부였다. 일종의 독재제라는 의미”라며 “유신 후에는 이원집정부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집’자를 빼야 옳다”고 강조했다.

●김철수(83)는

△1933년 대구 출생 △서울대 법대 졸, 서독 뮌헨대 수료, 미국 하버드대 법학대학원 수료, 법학박사 

△서울대 법대 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교수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울대 명예교수 △탐라대 총장 

△명지대 석좌교수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원회 위원장 △세계헌법학회 부회장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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