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나이보다 몸이 먼저 자라는 ‘애어른’이 점점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성조숙증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은 2006년 6400명에서 2010년 2만8000명으로 5년간 약 4.4배 늘었다. 진료비 역시 2006년 23억원에서 2010년 179억원으로 7.8배 증가했다.
성조숙증은 남아보다 여아에게 흔하다. 2010년 전체 진료인원 중 여아가 92.5%였고, 약물치료를 받은 전체 인원 중 여아가 97.9%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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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숙증을 겪는 아이들의 상당수는 또래보다 커버린 몸 등으로 인해 함께 어울리기 힘든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세계일보 자료사진 |
자녀가 또래들에 비해 사춘기 징후가 1∼2년 정도 일찍 나타난다고 해서 이를 무조건 ‘병’으로 치부하는 태도도 좋지 않다. 과거에 비해 영양상태가 좋아 체격이 커지고 발육까지 빨라지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활습관, 환경오염, 식습관 등에서 비롯된 ‘조기성숙’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의 진단이다. 정혜림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아이들의 2차 성징이 빨리 나타나는 현상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볼 수 있다”며 “과거에 비해 아이들의 성장이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성조숙증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많은 경우는 ‘중추성 성조숙증’으로 특별한 기저질환 없이 시상하부 뇌하수체에서 난소, 고환을 자극하는 성선 자극 호르몬 분비가 일찍 시작돼 정상보다 빠른 변화를 보이는 것이다. 이 경우 남들에 비해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시기만 빠를 뿐 진행 속도는 늦어 별다른 치료 없이도 자연적으로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여아의 경우 유방이 발달하다가 저절로 없어지기도 한다. 원인 질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뇌의 특정 부분에 양성종양이 생겨 성호르몬 분비를 자극하거나 어릴 때 겪은 뇌손상·뇌수막염·뇌출혈 등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성선 자극 호르몬의 자극 없이 난소나 부신의 이상으로 나타나는 ‘말초성 성조숙증’도 있다. 여아의 경우 난소에 양성종양이 생겼거나 남아는 고환에서 남성호르몬이 과하게 분비되는 질환과 관련됐을 수 있다.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복부 초음파검사나 뇌 MRI 촬영이 필요하다. 또 호르몬 검사를 통해 성호르몬 농도가 매우 높거나, 뼈 나이가 본인 연령에 비해 약 2세 이상 빨라 사춘기 징후가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에는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중추성 성조숙증일 경우 성호르몬자극호르몬 방출호르몬 유도체(GnRH agonist)를 주사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치료법이다. 성선 자극 호르몬을 일시적으로 억제해주는 원리로 사춘기를 늦춰주는 것이다. 과거에는 약제의 작용 시간이 짧아 자주 주사를 맞아야 했지만 기술이 발달해 3∼4주에 한번 정도만 내원해 주사를 맞으면 된다. 보통 여아의 경우 만 11세, 남아의 경우 만 12∼13세까지 주사치료를 계속하게 된다.
성조숙증의 예방 방법은 사실상 없다. 환경호르몬에 지나치게 노출되거나 드라마, 영화 등 연령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시청했을 때 받는 정서적 자극이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있긴 하다. 전문가는 “일회용품, 플라스틱 용품의 과도한 사용을 피하는 것이 좋다”면서도 “전문의의 진단 없이 건강보조식품제 등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좋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치료를 앞둔 부모의 태도도 중요하다. 성조숙증 자녀를 둔 부모의 상당수는 호르몬 치료의 부작용 등을 걱정해 적극적인 치료를 망설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부작용을 우려해 호르몬 치료를 꺼리는 부모가 많은데 많이 쓰이고 있는 약제의 안전성이 확인됐기 때문에 치료를 피할 이유는 없다”며 “적절한 치료로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일찍 찾아온 사춘기로 혼란스러워하는 자녀에게 부모와의 돈독한 관계는 불안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아버지와의 대화’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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