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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샤토 무통 로칠드와 붉은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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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11 06:01:00 수정 : 2016-06-10 20: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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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쿠도 로호 2009는 그레이트 빈티지

로스차일드(로칠드·Rothschild) . 18세기 까지 소규모 상인에 불과하던 가문입니다. 독일계 유대인 마이어 암셸 로칠드가 가문을 부흥시켰고 1800년대에 그의 다섯 아들 암셸, 잘로몬, 나탄, 카를, 야콥이 각각 프랑크푸르트, 빈, 런던, 나폴리, 파리에 은행을 설립하면서 유럽의 정치·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금융재벌로 성장합니다. 19세기에는 유럽의 철도 사업을 독점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는데 한때 자산이 50조달러였다고 합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친족내 결혼으로 결속을 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을 부흥시킨 유대인 마이어 암셸 로칠드와 다섯 아들
로스차일드 가문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독일 히틀러 정권이 들어서면서 부터. 유대인 국제조직이 세계지배를 꾸미고 있다는 음모설이 번졌고 유럽을 장악한 나치 정권은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로스차일드 재산을 몰수합니다. 하지만, 로스차일드가는 아직도 프랑스, 영국, 스위스 등 곳곳에서 여전히 금융재벌로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1922년 본격적인 와인 사업을 시작한 바론 필립 드 로칠드
 전세계 와인산업에서도 로스차일드 가문의 힘은 엄청납니다. 바로 프랑스 최고급 와인 크랑크뤼 1등급 샤토 무통 로칠드로 대변되는 바론 필립 드 로칠드(Baron Philippe de Rothschild)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샤토 무통 로칠드는 매년 당대의 유명 작가 작품을 레이블로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지난 1월 한국 작가 최초로 이우환 화백의 작품이 채택돼 큰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1853년 사토 무통 로칠드를 처음으로 만든 바론 나다니엘 로칠드
샤토 무통 로칠드의 역사는 바론 나다니엘 로칠드가 1853년 샤토 브란느 무통을 매입해 샤토 무통 로칠드로 명명하면서 시작됩니다. 이후 바론 필립 드 로칠드가 1922년에 보르도에서 본격적인 와인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는 1924년 빈티지가 첫 출시된 1926년 유명한 그래피스트인 쟝 카를뤼에게 의뢰하여 자신만의 레이블을 만듭니다. ‘모든 수확을 샤토에서 병입하였다’라는 문구와 함께 무통을 상징하는 양머리와 로칠드의 5형제를 상징하는 5개의 화살을 넣은 레이블입니다. 하지만 이 레이블은 당시로서는 너무나 혁신적이이서 보르도에서 엄청난 반대에 부딪히게 되지요. 필립은 결국  업계 최초로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레이블을 와인 보틀에 부착하겠다는 꿈을 접고 맙니다. 당시만 해도 와인에 특정 샤토의 독창적인 레이블을 부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로칠드의 이런 혁신은 와인업계를 발칵 뒤집었다고 합니다. 

 
바론 필립 드 로칠드 최초로 자신만의 레이블을 그려 넣은 샤토 무통 로칠드 1924 빈티지
1945년 2차 대전이 끝나고서야 보르도에 돌아온 로칠드의 꿈은 비로소 이뤄지지요. 피카소, 샤갈, 달리, 워홀 등 수많은 대가들의 작품이 샤토 무통 로칠드의 아트 레이블을 매년 장식하게 됩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고합니다. “레이블을 매년 바꾸는 거야, 와인은 매해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알맞은 예술가들을 선정하고 그들에게 디자인을 맡길거야. 그리고 레이블 디자인에 대한 대가로 와인을 주어야지. 예술을 위한 와인, 와인을 위한 예술이 아닌가”. 실제로 작가들은 금전적인 보상대신 자신의 작품이 실린 빈티지의 샤토 무통 로칠드를 받는데 그동안 어느 누두고 이를 불평하고 거부한 작가는 없다고 하네요.

 
미국 명품 와인 오퍼스 원을 탄생시킨 바론 필립 드 로칠드(오른쪽)와 로버트 몬다비
1930년에는 프랑스 최초의 브랜드 와인으로 기록된 ‘무통 까데(Mouton Cadet) ’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당시만 해도 와인에는 샤토 이름이나 지역 이름을 붙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고급 샤토에서 왜 저런 쓸데없는 브랜드를 만드는지 와인업계는 의아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오늘날 엄청난 성공을 가져오게 됐지요.
 세계로 뻗어나가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사업 DNA는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진 것 같습니다. 바론 필립 드 로칠드는 어느 누구도 미국에서는 고급와인을 만들 수 없다고 여기던 시절인 1979년 ‘미국 와인의 아버지’ 로버트 몬다비와 합작해 최고급 와인 오퍼스 원(Opus One)을 탄생시킵니다. 레이블의 두 얼굴은 바로 필립 남작과 몬다비입니다.

 
바론 필립 드 로칠드가 칠레 비나 콘차 이 토로와 합작해서 만든 알마비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바론 필립 드 로칠드는 1997년 칠레 비나 콘차 이 토로 (Vina Concha y Toro) 와 합작해 명작 알마비바(Almaviva)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고급 와인에만 매진한 것은 아닙니다. 로칠드는 그해 칠레에 자회사인 ‘바론 필립 드 로칠드 마이포 칠레’를 설립하고 2003년 초 현대적 시설을 구비한 와이너리를 준공합니다. 이곳에서 소비자들이 부담없는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하는데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테이블 와인 에스쿠도 로호(Escudo Rojo) 랍니다. 에스쿠도 로호는 ‘붉은 방패’라는 뜻으로 레이블에도 정열적인 붉은 방패가 그려져 있지요. 사실 로스차일드도 붉은 방패(Roten Schild)라는 뜻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살던 집의 문에 그려진 것으로 가문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샤토 무통 로칠드를 만드는 세계 최고의 와인 역사와 전통, 양조 기술이 에스쿠도 로호 한병에 그대로 대로 담겨 있는 셈이랍니다. 

바론 필립 드 로칠드 마이포 칠레가 생산하는 에스쿠도 로호
◆에스쿠도 로호 버티칼 테이스팅
 바론 필립 드 로칠드 마이포 칠레를 이끄는 엠마누엘 리포(Emmauel Riffaud) 대표가 5월 19일 방한, 수입사 아영이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와인나라 아카데미에서 빈티지별로 비교 시음하는 버티컬 테이스팅이 진행됐다. 빈티지는 2007, 2008, 2009,  2010,  2013,  2014다. 처음에는 고급 와인도 아니고 작황이 매년 비슷한 테이블급 칠레 와인을 버티칼 테이스팅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의아하게 여겨졌다. 칠레는 유럽과 달리 고른 기후때문에 포도 품질이 고르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포씨는 칠레도 매년 기후가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빈티지마다 조금씩 다른 와인이 탄생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여러 빈티지를 동시에 테이스팅하니 약간씩 다른 점이 느껴졌다. 하지만 많은 차이는 없었다.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칠레 특유의 떼루아를 확실하게 잘 담고 있는 와인이다. 

에스쿠도 로호의 여러 빈티지
에스쿠도 로호 버티칼 테이스팅 현장.
바론 필립 드 로칠드 마이포 칠레 대표 엠마누엘 리포.
 에스쿠도 로호는 카베르네 소비용, 카르미네르, 시라, 카베르네 프랑을 블렌딩한다. 2007년은 여름 초기부터 수확이 끝날 때까지 날씨가 매우 뛰어나 특출나게 뛰어난 빈티지가 탄생했다. 매우 깊고 농축된 와인이 빚어졌다. 2008년 최근 40년 동안 가장 춥고 건조한 겨울과 여름이 매우 덥고 건조해 수확량 감소했다. 대신 우아하고 신선하며 과일향이 풍부한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이 빚어졌다. 2006 빈티지와 유사하지만 숙성 잠재력이 더 높은 빈티지다. 2009년은 더운 봄과 여름으로 수확이 빨랐던 해이다. 비가 한번도 오지 않아 지난 10년 동안 가장 좋은 빈티지로 평가된다. 볼륨감이 매우 풍부하다. 에스쿠도 로호의 그레이트 빈티지라 할 만하다. 2010년은  포도나무 생장기간 동안 매우 드문 선선한 날씨가 이어져 신선한 과일향이 돋보이는  와인이 탄생했다. 파워풀 하면서도 신선하고 우아하다. 밸런스가 잘 잡혀있다. 2013년은 신선한 과일향이 풍부하고 파워풀한 탄닌이 특징이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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