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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 동안 깨지지 않은 올림픽 금메달 4관왕 기록, 45분 만에 세계신기록 3개 수립, 25년간 유지된 멀리뛰기 기록 8.13m, 최초로 기업 후원을 받은 흑인, 처음으로 미국 TV에 등장한 흑인.
가난한 흑인 노예에서 올림픽의 전설이 된 남자 제시 오언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레이스’는 자유를 향한 10초의 질주를 담아낸다.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난 제시 오언스의 유년기는 그 시절 대부분의 흑인과 마찬가지로 불우했다. 노예 출신으로 6세 때부터 하루 45kg의 목화를 따야 했고, 태생적으로 몸이 약해 의사로부터 살아남기 어렵다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달리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던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공부와 운동에 매달렸다. 누구보다 빠른 발로 고교 시절 각종 육상대회를 휩쓸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오하이오대학에 진학할 무렵 미 전역 28개 대학에서 장학금을 지원해 주겠다는 제의를 받을 만큼 흑인에 대한 ‘무지’의 편견을 깼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차별과 억압을 받았지만 결코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법 없이 절차탁마하던 그는 마침내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출전의 기회를 잡는다. 그리고 100m, 200m, 400m 계주, 멀리뛰기 등 4개의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한다. 미국의 흑인 영웅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심기가 불편해진 히틀러가 그와 악수마저 피했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인종차별에 맞선 그의 기록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칼 루이스가 신기록을 달성하기까지 무려 48년 동안 유지됐다. 그는 미국 육상경기연맹 명예의 전당과 올림픽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며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육상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피부색에 대한 편견을 제쳐버린 그의 활약과 업적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흑인들의 지위 상승에 기여한다. 미국 올림픽 팀은 그를 자문위원으로 추대했다. 1973년 그는 보수주의 백인들로 구성된 미국올림픽위원회에서 위원으로 당당히 활약했다.
“달릴 때는 자유가 느껴져요. 색깔이 없고 빠르냐, 느리냐만 있을 뿐이죠. 적어도 10초 동안은 자유로워요.”
김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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