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됐나
국내 각 분야 석학들 강연 엮어
우주는 138억살·지구는 45억살
그리고 인간 역사는 고작 25만년
우리 스스로의 기원 과학적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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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 등 지음/휴머니스트/2만2000원 |
우주는 138억년 전 태어났다. 아주 작았던 우주는 점점 팽창해 지금은 100억 광년, 그러니까 빛의 속도로 100억년이 걸려야 횡단할 수 있는 크기가 되었다. 지구가 생긴 것은 약 45억년 전이다. 이미 5000만∼6000만년 전에 형성된 태양계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현재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암석은 40억년 전 것이고, 생명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지구에 처음 등장한 것은 36억년 전이었다. 인간의 역사는 ‘불과’(!) 25만년 전에 시작됐다.
책이 다루는 시간은 어마어마하다. 길어야 100년을 살고, 당장 1시간 앞의 일을 두고도 안절부절 살아가야 하는 인생인지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런 시간을 추적해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아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약 45억년 전 태양계에 존재하던 지금 지구 크기의 90% 정도인 원시행성과 화성 크기의 다른 원시행성 ‘테이아’(theia·그리스 신화에서 달의 어머니를 지칭)가 충돌했다. 충돌로 생겨난 물질 중 일부가 달이 되어 지금의 지구-달이 형성됐다. 충돌 후 지구는 수백만 년 동안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다. 44억∼40억년 전 바다가 만들어지고 대륙은 조그만 섬처럼 존재했다. 40억∼38억년 전에는 작은 운석부터 수십㎞ 크기의 미행성이 끊임없이 지구와 충돌하는 ‘후기 대폭격기’를 거치고 지구는 안정적인 진화기를 맞는다.
지구에 생명이 탄생한 것은 “확률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자신과 똑같은 것을 복제하는 능력이 있는 어느 화학물질이 생명의 시작이었다. 이 물질이 “자신을 복제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진화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지구가 탄생하고 10억년이 지난 36억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다시 20억년이 지나 최초의 세포가 등장했다. 자기 복제가 가능한 RNA 혹은 DNA가 있었고, 어쩌다 그 안에서 더욱 효과적인 복제를 할 수 있는 최초의 세포가 생겨난 뒤 그 세포들이 모이고 모여 세포들 간의 기능 분화가 이뤄지면서 결국 인류와 같은 복잡한 생명체까지 나온 것이다.
이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이다. 그는 “현존하는 모든 생명체를 보면서 이것들이 결국은 그 옛날 하나로부터 왔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유추해 냈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생명의 기원을 설명한 이 이론을 따르면 인간은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인간은 은행나무, 구더기와 같은 집안이었던 지점을 만나기 때문이다. 저자 중 한 명인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은 “모든 생명은 하나로부터 왔고, 인간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설명은 다윈이 인류에게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일 것”이라고 적었다.
책을 읽다 보면 길고 긴 시간의 고리 속에 인간이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138억년의 시간 중 25만년에 불과한 역사, 근원을 따져가다 보면 구더기와도 유전자를 공유한 존재라는 점 등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그런 인간이 지구를 망쳐놓은 주범이라는 사실에 이르면 비루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동시에 인간이 짧은 시간에 저지른 온갖 오류에도 생태계의 정점에 서 있는 게 사실이고, 끊임없이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라는 확신을 갖게 되기도 한다. 물론 어느 쪽인가는 독자의 몫이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강의를 모아 역은 책이기 때문에 저자들의 태도는 무척 친절하다. 시종일관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김희준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는 “이 강의를 듣는 여러분은 한 시간 뒤쯤에는 1955년 세상을 떠나 빅뱅우주론을 들어보지 못했던 아인슈타인보다 우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러나 다루는 주제 자체가 어렵다. 곳곳에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개념을 만나게 된다. 어느 정도 각오를 다진 후 도전해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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