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인의 백치미는 예능프로그램의 재미를 더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동시에 연예인 본인에게도 완벽해 보이는 겉모습에 감춰진 빈틈 혹은 허점을 드러내며 호감 이미지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역사를 다룰 때 만큼은 재미보다 진지한 접근과 성찰이 우선시되는 분위기다.
tvN '신서유기2'로 예능 신고식을 치른 안재현은 사자성어 게임에서 '춘하추동'을 몰라 멤버들의 핀잔을 들었다. 안재현은 "'춘하' 뒤에 나올 말이 뭐냐"는 질문에 "춘하신년"이라고 답했다. '춘하추동'이라는 답을 들은 안재현은 제작진에 "춘하추동? 처음 듣는다. 쉬운 것 좀 달라"고 해맑게 말했다.
모델 출신 꽃미남 배우의 백치미는 의외의 재미를 이끌었다. 큰 키와 잘생긴 얼굴, 여기에 똑똑하기까지 했다면 '엄친아'로 불렸겠지만 무지를 드러냈다고 훈남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안재현이 보여준 무지는 예능 다크호스로 주목하게 한 재미 포인트가 됐다.
하지만 인기 상종가를 달리던 AOA 멤버설현은 역사적 무지를 드러내 이미지 치명상을 입었다. 대세 아이돌로 불리던 설현은 역사 속 위인 안중근을 알지 못해 비난의 중심에 서야 했다. 수많은 CF에 출연하며 높은 인기를 누렸던 설현의 가치는 순식간에 추락했고, 밝은 미소로 투표 참여를 독려해 얻은 '개념스타' 타이틀은 순식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설현의 역사적 무지는 씻을 수 없는 이미지 오점으로 돌아왔다.
설현의 역사지식 논란은 지난 3일 방송된 온스타일 '채널 AOA'에서 시작됐다. 이날 방송에서 AOA 멤버 지민은 안중근의 사진을 보고 "안창호 선생님 맞냐"고 자신없어 했고, '이토 히로부미'라는 힌트에 "긴또깡(김두한의 일본식 발음)?"이라고 엉뚱한 답을 내놨다. 지민의 곁에 있던 설현은 스마트폰 검색으로 뒤늦게 안중근 의사의 이름을 적었다.
지민과 설현이 역사를 대하는 태도도 문제였다. 역사적 인물을 알지 못하는 무지와 함께 장난스런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한 실망의 목소리도 높다. 최근 알파고와의 바둑대진으로 화제가 됐던 이세돌 역시 '노세돌'로 적으며 역사뿐 아니라 다른 분야 상식도 갖추지 못한 '무식'이라는 비판까지 얻었다.
논란 이후 설현과 지민은 역사에 대해 진중한 태도를 보이지 못한 점, 장난스러운 자세로 불쾌감을 준 행동을 사과했다. 하지만 오는 16일 AOA 컴백을 앞둔 시점, 부정적인 이슈로 오르내리면서 큰 부담을 지게 됐다.
연예인의 무지는 예능의 단골 소재로 쓰이며 친근한 매력을 부각시키는 장치로 활용되어 왔다. 하지만 무지를 드러낸 분야가 정규 교육을 받았다면 누구나 알 법한 기본 역사지식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또 재미를 위해 분위기를 띄우려는 장난스런 행동으로 역사적 위인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자초하고 말았다.

그런 측면에서 대표적 백치미 연예인으로 정평난 코요테 김종민이 보인 역사 지식은 설현·지민 논란과 대비되고 있다. 김종민은 지난 3월 방송된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에서 안중근 의사의 아명, 거사 당시 안중근의 나이(만 30세)와 생년월일(1879년 9월2일)을 정확히 맞추며 해박한 역사 지식을 자랑했다.
김종민은 이완용의 사진을 몰라보는 김준호에게 "너무 유명한 사진 아니냐"며 이완용이 사실은 애국자였다 변심한 변절자라고 설명, 역사적 이해까지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다. '역사 알파고'라는 별명을 얻은 김종민은 곧은 역사관을 가진 개념 연예인으로 재발견을 일궜다.
연예인에게 무지는 양날의 칼이다. 연출되지 않은 무지가 예능의 재미로 의도치 않은 웃음을 줄 수 있지만, 우리의 뿌리이자 바탕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는 '무개념'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줄 뿐이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 온스타일 '채널AOA'·KBS2 '1박2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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