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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서 찾은 그들의 ‘특별한 책’

입력 : 2016-05-14 02:00:00 수정 : 2016-05-13 20: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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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1980년대 의미있는 ‘절판본’ 추적
막장극 같은 박완서 ‘욕망의…’ 고은 ‘일식’ 등
속속 숨겨둔 과거 작품들 세상 밖으로
작가의 다른 모습 발견 ‘깨알같은 즐거움’
윤성근 지음/모요사/1만5000원
探書(탐서)의 즐거움/윤성근 지음/모요사/1만5000원


누구에게나 꽁꽁 숨기고 싶은 과거는 있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옛날의 모습을 간직한 이들도 많다. 그런 옛날을 파헤치는 것, 당사자야 황망한 일이겠지만 적잖이 재미난 일이다. 이름 석자만으로 독자를 황홀케 하는 작가라면 탐색의 즐거움이 더하겠다.

‘探書(탐서)의 즐거움’의 즐거움은 헌책방을 운영하는 저자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책 중에 의미가 깊은 절판본들을 소개한 책이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절판본이기에 작가의 숨기고 싶은 과거, 지금과는 많이 다른 이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① 박완서는 자신의 전집을 기획하는 출판사에 1979년 작인 ‘욕망의 응달’을 빼 달라고 요구했다. 박완서의 평소 모습과 달리 막장의 줄거리에 스릴러, 추리소설을 섞어 놓은 듯한 작품이다.
② 1980년대 학생운동을 무협지 형식으로 소설화한 김영하의 ‘무협 학생운동’. 이제는 희귀한 책이 된 이 소설이 김영하의 첫 번째 작품이다.
③ ‘뜬 세상에 살기에’는 ‘무진기행’의 소설가 김승옥이 절필 선언을 하기 전에 쓴 유일한 수필집이다.
이유진 제공
주인공 ‘자명’은 미혼모다.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자명 앞에 나타난 남자 ‘민우’. 상당한 재력을 갖춘 민우에게 아이와 자신의 운명을 맡긴 자명은 민우의 집으로 들어가면서 “멀미조차 허용하지 않는 기괴한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경험하게 된다. 암에 걸린 아버지, 어머니가 다른 9명의 식구, 아버지를 수발하는 자명보다 두 살 어린 후처가 저마다의 욕망을 감추고 민우의 집에서 살아간다. 어느 날 사망사건이 발생하고 진상을 파헤치려는 자명은 커다란 위협에 직면한다. 막장의 줄거리에다 스릴러와 추리소설을 섞어 놓은 듯한 책의 제목은 ‘욕망의 응달’. 1979년 수문서관에서 초판을 낸 소설의 작가는 무려 박완서다. 세상을 떠나기 전 한 출판사에서 전집을 기획했는데 박완서는 자신의 수많은 작품 중 유독 이 작품 하나만 찍어 빼 달라고 요구했다.

고은의 1974년 작인 ‘일식’도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주인공 ‘최현식’은 정신분열증에 걸린 15살 소녀 ‘세희’와 세희의 어머니 ‘한신옥’ 사이를 오가며 위태로운 사랑을 나눈다. “두 사람 모두를 거부할 수도, 그렇다고 받아들이기도 힘든 고뇌”에 시달리던 중 세희는 임신을 하고 최현식은 자살로 생을 마무리한다. 한신옥도 어느 날 바닷가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고은의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부분의 자료에서 제목이 빠져 있고 “어디에서도 참고할 만한 (비평) 자료를 만날 수 없었다”는 이 작품을 저자는 ‘(고은의) 대표적인 망작(亡作·망한 작품)’으로 꼽았다.

소설가 김영하는 ‘무협 학생운동’을 등단하기 전인 석사과정 중에 썼다. 소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 후 1987년 6·29선언까지의 학생운동을 무협물의 형식으로 그려냈다. ‘박통’의 죽음 이후 중원 권력을 잡으려는 야심을 뽐내는 ‘독두마왕 전두’(전두환)와 ‘노갈’(노태우), 이들을 뒤에서 조정하는 ‘아메대왕’(아메리카)이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린다. 젊은 무사(대학생) ‘류’와 ‘초아’는 중원의 평화를 위해 힘쓰지만 나중에는 이들 역시 문파가 갈려 등을 돌린다. 소설은 1992년 ‘아침’이라는 사회과학도서 전문 출판사에서 1992년에 딱 한번 출판했고, 지금은 출판사도 사라진 터라 다시 펴낼 수 없게 된 희귀한 이 책이 김영하의 “진정한 첫 번째 소설”이다.

작가의 과거를 책을 통해 추적해 가는 ‘탐서’는 흥미로운 일인 동시에 독자들이 작가를 좀 더 깊게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절판본은 그래서 더욱 가치를 가진다. 저자는 ‘망작’인 ‘일식’ 초판이 고은의 열렬한 팬인 아버지의 생일선물로 한 여성에게 적지 않은 가격에 팔렸던 일화를 소개하고, “김영하 작가를 좋아하고 그가 쓴 책을 수집하는 사람이라면 ‘무협 학생운동’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독서를 즐기는 이들에게 책이라는 소재 자체는 항상 흥미롭다. 저자는 앞서도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책이 좀 많습니다’ 등을 써 독자들의 이런 욕구를 영리하게 충족시켜 왔다. 오래된 책은 여러가지 매력과 사연을 소개한 ‘探書(탐서)의 즐거움’은 ‘책을 다룬 책’이 재미를 담보하는 글감임을 다시 증명한다. ‘무진기행’의 소설가 김승옥이 절필을 선언하기 전 쓴 유일한 수필집 ‘뜬 세상에 살기에’는 황석영, 최인호, 김현 등이 문단에 이름을 알린 1960년대 ‘천재들의 전성시대’를 반추하게 한다.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의 첫 시집이 출고 전 인쇄소 화재로 모두 불타버린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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