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명의 여배우들이 눈앞에 있네요. 테크(tech) 저널리스트로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해야 하는데…. 오 이런, 집중이 어렵네요. 그녀들이 다가오고 있어요.”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아스테크니카의 세바스찬 앤서니 기자는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2명의 포르노 배우들과 공공장소에서 가상의 성관계를 나누는 곤혹스러움을 경험했다. 그는 전시장에서 가상현실(VR) 고글을 쓰고 포르노 콘텐츠를 이용했다. 앤서니 기자는 “손을 뻗어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많은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에 어쩔 줄 몰랐다”며 “놀라운 경험”이라고 평가했다.

성에 대한 인간의 욕망, 그 뿌리 깊은 본능은 영상산업의 구원투수였다. 기술사업자 간 경합이 있거나 특정기술이 도입단계에서 고전하고 있을 때 성패를 가른 건 포르노산업이었다. 1980년대 베타맥스와 비디오홈시스템(VHS) 비디오테이프 기술은 시장의 표준을 놓고 전쟁을 벌였다. 2000년대 HD영상 때는 블루레이와 HD-DVD가 경합했다. 최종 승자는 포르노업계의 간택을 받은 VHS와 블루레이였다. 야한 영상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최고의 미끼였다.
이제 막 태동하고 있는 VR 시장의 기폭제로도 포르노 콘텐츠가 떠오르고 있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성인영화 제작업체 비비드엔터테인먼트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0%가 “포르노 콘텐츠 여부가 VR기기 구입에 영향을 준다”고 대답했다. 18%는 “그것(포르노 콘텐츠 구입)이 내가 VR기기를 사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성인물 산업의 간판급 회사들이 잇따라 VR 시장에 진출하면서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세계 최대 성인사이트 폰 허브는 지난 3월 ‘VR포르노’ 카테고리를 개설하고 무료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부사장 코레이 프라이스는 “VR는 성인 엔터테인먼트의 차세대 지향점”이라며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넋이 나갈 만한 콘텐츠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성인물 업계의 또 다른 대형 기업인 노티 아메리카도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CES 2016에서 VR 포르노 콘텐츠를 선보였다. VR 포르노는 컴퓨터 이미지로 구현한 가상의 인물이나 영상을 촬영한 포르노 배우와 실제로 관계를 맺는 것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게임업계도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신생 벤처기업 빅센(Vixen) VR는 지난달 스트립 클럽 게임에 대한 오픈 베타(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 게임 속 클럽에는 현실에서처럼 가상화폐를 인출하는 자동화기기(ATM)가 있고 로비, 스테이지, VIP 구역 등이 똑같이 설계돼 있다. 빅센VR는 실제 스트립 클럽과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이용자들은 게임을 통해 전 세계 유명 클럽을 체험하고 클럽 주인은 가상의 종업원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구조다.
현재 스마트폰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연애 애플리케이션(앱)도 VR 시장에서 한층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된다. 게임 캐릭터의 레벨이 올라가면 가상의 미소녀와 맺는 관계도 더 깊어지는 게임은 VR 기술을 만나면 더욱 생생하게 구현될 수 있다. 집에서도 미풍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분위기를 즐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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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마스크 Feelreal |
체험을 극대화해 주는 기기들도 출시되고 있다. 가상현실 속의 향기와 온도, 바람, 진동 등을 느낄 수 있는 VR 마스크가 지난해 시중에 나왔고, 온몸에 촉감을 전달해 주는 VR 슈트도 출시됐다.
이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도 가까운 미래에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너무나 실감나는’ 성관계 체험이 청소년에게 미칠 영향과 가상세계로 도피하는 은둔형 외톨이의 확산, 적을 죽이는 게임에서 비롯될 윤리적 문제 등이다. VR 기술의 발달로 몰입도가 높아지면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어려워질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유해 검색어 지정을 피해 VR 포르노를 의미하는 신조어 ‘VR 우동’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가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다렐 웨스트 수석연구원은 “디지털 기술은 단순히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향후 가상현실과 관련된 법적, 윤리적 문제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포르노, 게임 등을 미끼로 사람들이 모여들면 사업이 확장돼 시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며 “시장 안착 이후에는 양질의 콘텐츠도 잇따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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